[오민지 원장의 한의학 이야기] 안면 신경 기능 회복에 초점 맞춘 침치료 보완 영역
안면마비는 어느 날 갑자기 얼굴 한쪽이 움직이지 않게 되는 질환이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았을 때 한쪽 입꼬리가 처져 있거나 눈이 잘 감기지 않으면 누구라도 큰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안면마비는 주로 안면신경(facial nerve) 의 염증이나 부종으로 인해 신경이 일시적으로 압박되고 마비가 발생하는 질환이다. 특별한 원인 없이 생기는 경우를 흔히 벨마비(Bell’s palsy) 라고 부른다. 대개 바이러스 감염, 스트레스, 혈류장애, 면역반응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환자는 수주 내 회복하지만 약 15~30%에서는 불완전한 회복이나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 회복이 느리거나 미세한 비대칭이 지속되는 경우, 시간이 지나면 근육이 굳거나 원하지 않는 움직임(연합운동)이 생기기도 한다. 따라서 초기부터 신경 기능을 회복시키는 치료가 중요하며, 이 과정에서 침치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벨마비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 논문인 Bell’s palsy: aetiology, clinical features and multidisciplinary care (Eviston et al., 2015, J Neurol Neurosurg Psychiatry)에서는 이 질환이 단순한 신경 손상이 아니라 신경-혈류-면역 반응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질환임을 강조했다. 바이러스(특히 헤르페스 바이러스)의 재활성화가 신경 내 염증을 유발하고, 그로 인해 안면신경이 붓고 좁은 뼈관 속에서 압박을 받으면서 신경전달이 차단된다. 이때 치료가 늦어지면 신경의 축삭이 손상되고, 이후 재생 과정에서 잘못된 재연결이 이루어져 후유증이 남는다. 이런 이유로 서양의학에서는 초기 스테로이드 투여로 염증을 줄이고, 필요한 경우 항바이러스제나 물리치료를 병행한다. 하지만 이런 치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신경이 회복되는 과정에서는 혈류개선, 전도 촉진, 근육 위축 예방 같은 세밀한 생리적 조절이 필요한데, 이 부분은 침치료가 보완할 수 있는 영역이다.
최근 발표된 또 다른 연구, Zhou Y. et al., 2023, PLOS ONE: “Electroacupuncture for intractable facial paralysi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에서는 난치성 안면마비 환자들을 대상으로 전침치료의 효과를 분석했다. 총 18개의 임상시험, 1119명의 참가자를 종합한 결과 전침치료를 받은 환자군은 그렇지 않은 군에 비해 유의미하게 높은 회복률과 기능점수를 보였다. 대표적으로 House-Brackmann(HB) 점수, Sunnybrook 점수, Portmann 점수 등 얼굴 근육의 대칭성과 움직임을 평가하는 지표들이 유의하게 향상되었다. 또한 완전 회복률과 종합 유효율이 높게 나타나, 전침치료가 단순한 보조요법이 아니라 신경회복을 촉진하는 치료로서 근거가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연구진은 전침이 신경 전도 개선, 혈류 증가, 신경가소성 촉진, 근육 위축 방지 등 다양한 생리적 메커니즘을 통해 회복을 돕는다고 분석했다.
이 논문에서 강조된 핵심은, 침이 단순히 ‘근육을 자극하는 물리치료’가 아니라 신경 자체의 재생을 유도하는 생물학적 치료라는 점이다. 전침 자극은 손상된 신경 부위의 탈분극을 유도하고, 신경세포의 흥분성을 회복시켜 신경전도를 개선한다. 또한 자극 부위의 혈류량을 증가시켜 산소와 영양 공급을 촉진하며, 손상된 조직의 대사를 활성화시킨다. 신경이 살아나려면 충분한 혈류와 영양, 그리고 적절한 자극이 필요하다. 침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 여기에 전기적 자극이 더해지면 신경섬유의 성장과 재생을 촉진하는 신경영양인자(NGF, BDNF) 의 발현이 증가하고, 중추신경계의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 도 강화된다. 쉽게 말해, 침은 손상된 신경을 ‘깨우고’, 전침은 그 신경이 다시 ‘길을 찾게’ 도와주는 것이다.
실제로 임상 현장에서 안면마비 환자들은 침치료 후 단순한 움직임 회복뿐 아니라 얼굴의 긴장감과 통증이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침은 국소 근육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혈류를 개선하여 염증을 줄인다. 특히 마비 부위 주변의 근육이 오래 굳으면 얼굴이 비대칭적으로 변하고, 나중에는 표정이 어색해진다. 전침은 이런 근육 경직을 방지하고, 신경의 신호가 다시 정상적으로 전달되도록 돕는다. 또한 지속적인 자극은 뇌의 운동피질과 감각피질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켜, 뇌가 다시 얼굴 근육을 조절하는 법을 학습하게 한다. 이는 단순히 외형의 회복이 아니라 기능적 회복, 즉 신경이 다시 제대로 작동하도록 돕는 과정이다.
한편, 안면마비 후유증으로 흔히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연합운동(synkinesis) 과 혀눈물과다분비(crocodile tears) 이다. 이는 신경이 재생되는 과정에서 일부 신경섬유가 잘못 연결되면서 생긴다. 예를 들어, 눈을 감을 때 입꼬리가 함께 당겨지거나, 음식을 먹을 때 눈물이 나는 현상이 그것이다. 침치료는 이런 후유증을 예방하고 완화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일정한 전침 자극은 신경의 전도 경로를 정리하고, 과긴장된 근육의 수축을 억제하여 잘못된 운동 패턴이 형성되는 것을 막는다. 또한 침은 국소 근육의 혈류를 개선해 과도한 근긴장을 완화하고, 뇌에서 해당 근육에 대한 신경신호를 정상화한다. 이런 복합 작용을 통해 침은 단순히 마비 초기 회복을 돕는 것을 넘어 후유증 예방 치료로서의 의미도 가진다.
한의학적으로 볼 때 안면마비는 바람(風)과 한기(寒氣)가 얼굴의 경락을 막고, 기혈순환이 정체되어 생긴다고 본다. 즉, 신경의 막힘을 ‘기혈의 막힘’으로 이해한 것이다. 치료의 핵심은 막힌 경락을 뚫고, 신경의 흐름을 원활히 만들어주는 것이다. 풍지(風池), 협거(頰車), 지창(地倉), 양백(陽白), 하관(下關) 등 얼굴과 목 부위의 혈자리를 중심으로 침을 시행하면, 국소 순환이 개선되고 부종이 줄어 신경 압박이 완화된다. 여기에 전침을 병행하면 근육의 미세한 수축이 유도되어, 신경과 근육의 연결을 회복시키는 훈련 효과가 생긴다.
많은 환자들이 초기 치료에서 스테로이드 복용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안면신경의 완전한 회복은 단순한 염증 억제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경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혈류, 전도, 자극이 동시에 필요하고, 침은 이 세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비약물적 치료다. 특히 약물치료만 받다가 회복이 더딘 환자들에게 전침을 병행하면 눈 감김, 입꼬리 대칭, 미소근의 움직임 등이 빠르게 개선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변화는 신경 기능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명확한 신호다.
침치료의 또 다른 강점은 안전성이다. 전침은 체내 약물 농도나 간 기능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 장기간 시행해도 부작용이 거의 없다. 서양의학적 치료와 병행해도 상호작용의 위험이 없고, 재활치료와 함께 시행하면 효과가 배가된다. 실제로 여러 국가의 임상 가이드라인에서도 안면마비 환자에게 초기 스테로이드와 함께 침 또는 전침치료를 병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결국 침치료는 안면마비의 회복기 신경 재활 과정에서 필수적인 치료이다. 침은 단순히 근육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의 길을 다시 열고 뇌의 회복 신호를 유도하는 과학적 치료다. 스테로이드가 불을 끄는 역할이라면, 침은 그 자리에 다시 생명이 자라나게 하는 자극이다. 조기에 침치료를 병행하면 후유증의 가능성을 줄이고, 얼굴의 균형과 표정, 그리고 자신감까지 되찾을 수 있다. 안면마비는 기다린다고 저절로 낫는 병이 아니다. 회복은 몸이 다시 신경의 리듬을 배워가는 과정이며, 침은 그 회복의 리듬을 되살려주는 가장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치료다.
< 수원바를정 한의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