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기생 장은실 30

2025-11-21     이상우 작가

"비양구(비행기)장 만든다고 남의 논밭 다 갈아엎고 이 집도 빼앗아 갈라칸다며?"
은실은 할머니가 왜 화가 났는지를 알았다. 은실이나 현식의 차림새를 보고 토지 수용하는 관청에서 나온 사람들로 오해했기 때문이었다.
                                                         
36. 은실의 새 출발, 그러나...

"할머니, 우리는 면사무소에서 나온 사람이 아닙니다. 이 집을 살려고 온 사람입니다."
은실이 진지한 표정으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이 집을 산다고? 내 참 별꼴을 다 보겠네. 인지 비양구가 날라댕기며 벼락치는 소리가 날낀데, 여기서 우찌 살라고 이집을 산단 말인교? 뭘 한참 모르는구만."
"하하하. 비행기 뜨고 내리는 것 할머니는 보셨어요?"
현식이 툇마루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안 봐도 뻔하제. 참말로 이 집 살라카는교?"
"예. 파신다면 살 생각이 있어요. 이집 평수가 어떻게 되요?"
"명색이야 백평도 넘지. 근데 참말로 살라카는교?"
"그럼요. 살 생각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지요. 얼마면 파시겠습니까?"
할머니는 한참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조금만 앉아 계시이소. 내 이장님 모시고 올게요.'
그날 은실은 이장이 중계를 서는 형식으로 할머니 집을 아주 싼 값에 샀다. 3분의 1정도 수용 당한다 해도 장차 요지가 될 땅이었다.

헐값으로 집을 산 은실은 그날 밤도 잠이 오지 않았다. 비행장이 들어서고 가게들이 어울리려면 한두 해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그동안 돈만 까먹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은실은 팔을 걷고 나섰다.
"현식씨, 나하고 무슨 사업이든 한다고 했지요?'
"물론입니다. 무엇부터 하려고요?"
"우리가 사놓은 초가집 할머니가 내일 이사를 간다고 했어요. 모래부터 그 집이 빌 텐데, 우리가 우선 들어가는 거예요."
"거기 가서 살게요?"

"사는 게 아니라 장사를 시작하는 겁니다."
"장사요? 그 황토먼지 풀풀 나는 곳에서 무슨 장사를 한단 말입니까?"
"공사판 인부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를 하지요. 함바 같은... 거기 공사하는 인부들은 많은데 근방에 새참 하는 식당은 없어요. 일부러 멀리까지 가는 인부들을 보았어요."
"예? 은실씨가 함바 장사를 한다고요? 거친 인부 틈에서..."
현식이 혀를 내둘렀다.

함바란 공사판 인부들을 위해 간이 음식 공급 하는 일을 말한다.
"맞아요. 어디 세상에 쉬운 일이 있어요?"
"하지만, 은실씨가 그런 험한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거친 노가다 판에서 장사를 한다는 것이.... 더구나 처녀의 몸으로..."
"걱정 마세요. 내가 처녀라는 것을 알면 남자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많이 팔아 주지 않을까요?"

"은실씨도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세요... 잘 하면 몸도 좀 팔겠네요."
못 말리는 처녀 다 보았다는 듯이 현식이도 따라 웃었다.
"내가 권번 출신이라고 놀리시는 거죠? 하지만 그런 소리 수 없이 들을 테니 연습해 두는 것도 괜찮겠네요."
은실이 웃지ㅤㅇㅏㅎ고 말하자. 머쓱해진 현식이 당황했다.
"그냥 농담으로 한 말리예요. 너무 고깝게 생각지 말아요."
"그만 일에 삐칠 장은실이 아닙니다."

이날부터 은실과 현식은 동촌의 공사장 입구 초가 수리에 정성을 쏟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식당에서 일할 솜씨 좋은 아주머니를 구하느라 시내 식당 이곳저곳을 염탐하고 다니기도 했다.
초가집은 2백여 원을 들여 제법 식당 티가 나게 만들었다. 식당 홀에서 음식을 먹을 손님은 별로 없을 것으로 생각해서 식탁과 의자는 몇  개 두지 않았다. 공사장으로 음식을 이고 가서 공급하는데 편리한 구조로 만들었다.

"자, 이제 참 만들 준비는 다 되었는데 주문 받는 것이 문제군요."
현식이 어려운 일이 남았다는 듯이 은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내가 힘써 볼게요. 우선 식당 이름이나 하나 지어야겠는데.."
"은실이네 어때요?"
현식이 웃어보였다.
"그건 아줌마 냄새가 너무 나는 것 아닌가요? 함바 장사 한다고 아주 천덕꾸러기 만들 작정이세요?"
은실이 눈을 곱게 흘겨보였다

"금호 식당 어때요? 여기가 금호강변 아니예요?"
"그거 좋아요. 모래쯤 개업식을 하도록 하지요"
"개업식이라고요?"
은실의 말에 현식은 감이 잡히지 않는 모양이다.
은실과 현식 그리고 대구 시내 식당에서 스카웃 해온 청도 댁과 이쁜이 엄마, 네 사람이 개업 준비에 바빴다.

"주 식단을 국수로 하고 돼지머리 곁들인 막걸리, 비빔밥, 콩나물밥, 이런 것을 내놓아야 할 것 같은데...'
은실은 인부들이 주로 찾는 값싼 음식을 주 식단으로 정했다. 개업을 하기 전날 국수와 비빔밥 1백인 분을 준비했다. 그리고 시루떡과 막걸리, 돼지머리, 등 안주도 푸짐하게 준비했다.
"이 많은 음식을 누가 다 먹을 거요?"

손님 섭외 한 명도 해 놓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벌리는 것 아니냐고 현식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식의 기우였다.
은실은 이튿날 점심시간에 읍내로 밥을 먹으러 가는 공사장 인부들을 길목에서 서서 모두 불러들였다.
"금호식당 개업 날입니다. 모두 공짜니 오셔서 싫건 들고 가세요."
"예? 정말 공짭니까?'

"색씨가 금호식당 차렸소? 모두 공짜라니 색씨도 공짜요?"
"말씀만 잘 하시면 모두 공짜지요. 일단 오셔서 한 번 들어 보시고 말씀 하세요."
처음에는 주저주저하던 인부들이 슬금슬금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아, 그 국수 정말 감칠맛 나네. 색씨 이거 매일 공짜요? 밤에 와도 공짜요?"
"새 참도 이 집에서 할 수 있소?"

은실이가 바라던 말이 입에서 나왔다. 은실은 사람들이 모여들자 마당에 멍석을 폈다. 밥상이 모자라 그릇 채로 가져다주어도 불평 없이 모두 잘 먹었다.
은실의 생각대로 돈은 좀 들었지만 공짜 개업식은 성공적이었다. 단번에 새 참 주문을 대 여섯 건 받았다.

그러나 사업은 순조롭게 되지는 않았다.   

37. 제가 탐나세요?

장사는 성공적인 것 같았다. 그러나 여러  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개업 닷새째 되던 날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처녀 사장님이 개업 했다고?"
성중석이 자가용차에 커다란 거울 하나를 싣고 왔다.
'축 개업 금호식당'
은실은 거울에 쓰인 글자를 보며 겸연쩍어 했다.
은실은 그러나 반가웠다. 해동원에 머리 얹으러 가서 처음 만난 성중석이 생각나서 혼자 웃었다.

"뭐가 그렇게 우스워? 사장님..."
성중석이 식당을 둘러보며 물었다.
"중석씨를 처음 만났을 때 생각이 나서요. 그때의 도련님과 지금의 성중석씨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해야 맞네요."
"허허허, 철없던 시절의 옛이야기는 부끄러우니 그만 두어요."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