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이앤씨 진해신항 사망사고’… 안전관리 체계 실효성 논란

2025-11-24     이지훈 기자
DL이앤씨 돈의문 디타워 본사 전경. [제공 = DL이앤씨]

[일요서울 l 이지훈 기자] 부산 진해신항 건설 현장에서 DL이앤씨 하청 근로자가 해상으로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안전 조직을 확대하고 CSO를 교체하는 등 ‘안전 혁신’을 추진해온 DL이앤씨에서 두 달 만에 사망사고가 다시 일어나면서, 강화된 안전관리 체계가 실제 현장에서 기능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최근 연이어 대형 건설사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 조사 대상에 오르는 가운데, 업계 전반의 안전관리 실효성을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대재해 전력 업체 하도급 참여 문제... DL이앤씨 적격 심사 미흡 지적
-DL이앤씨 수천억 안전예산에도 협력사 재해율 개선 한계


지난 17일 오전 부산 진해신항 남측 방파안 공사 현장에서 방파제 구조물 설치 작업 중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 60대 선원 A 씨가 작업선 인근 해상으로 추락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조사당국에 따르면 A씨는 바지선이 떠밀리지 않도록 결박하는 작업을 마친 직후 갑작스럽게 추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경과 119 구조대가 즉시 구조에 나섰지만, 구조대가 도착했을 당시 A씨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사고 직후 DL이앤씨는 해당 현장의 모든 작업을 즉각 중단하고 긴급 안전 점검에 들어갔다.

아직 정확한 사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며, 창원해양경찰서와 노동부는 정확한 사고 원인과 안전조치 위반 여부 등을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하도급 관리의 적정성을 둘러싼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18일 성명을 통해, 이번에 사망사고가 발생한 하도급업체 초석HD가 지난해에도 사망사고를 낸 사업장이라고 밝혔다. 초석HD에서는 지난해 4월 거제시 사업장에서 선박 엔진룸 세척 중 폭발과 화재가 발생해 3명이 숨지고 11명의 사상자가 난 바 있다.

-지난해와 같은 하도급 업체... 사망자만 4명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중대재해를 일으킨 전력이 있는 업체가 공공 발주 공사에 다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원청인 DL이앤씨가 하도급 적격 심사를 제대로 했더라면 이번 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안전관리 능력이 충분치 않은 업체도 참여할 수 있는 현행 구조가 중대재해를 반복시키는 원인”이라며 “고용노동부는 해당 업체가 어떤 절차로 다시 하도급에 참여하게 됐는지, 현장에서 위험 관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상신 DL이앤씨 대표이사는 이날 사과문을 통해 “오늘 오전 DL이앤씨 부산 진해신항 현장에서 선원 한 분께서 돌아가시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라며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시공사로서 무한한 책임을 느끼며 진심을 다해 고인에 대한 명복을, 그리고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 속에 계실 유가족 여러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어 박 대표는 “DL이앤씨는 무거운 마음으로 해당 현장의 모든 작업을 중단했으며, 유사 공종 작업이 진행 중인 현장의 작업도 중단했다”라며 “전 현장을 대상으로 긴급 안전 점검을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사고 수습과 유가족 지원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즉시 시행하고, 관계기관의 조사에 성실히 협조해 사고 원인을 명확히 규명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망사고 이후 DL이앤씨는 근본적인 원인 분석을 통해 현장의 안전관리 체계를 재점검하고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전문가 지적 “법적 면책·형식적 체계 구축 중심”

업계에서는 이번 DL이앤씨 하청 노동자 사망사고를 두고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에 대한 구설이 많다. 법 시행 이후 처벌 위험을 피하기 위한 조직 확대·보고 체계 강화는 잇따랐지만, 정작 현장에서 사고를 줄이는 ‘실질적 안전관리’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전문가들은 산업재해가 반복되는 배경으로 기업들의 ‘대응 방향’ 자체가 잘못 설정돼 있다고 지적한다. 중대재해를 실제로 줄이기 위한 현장 중심 대책보다, 경영책임자의 형사책임을 피하기 위한 ‘리스크 관리’가 우선순위가 되면서 문제가 고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의 면책 요건을 충족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지면서, 법에 규정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 서류·매뉴얼 중심의 형식적 절차로 흐르는 경우가 많고, 이런 구조가 현장의 실질적 안전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DL이앤씨가 그간 사고 발생률을 줄이기 위해 안전 관리 투자를 대폭 확대해왔음에도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DL이앤씨가 안전 조직을 전면 개편하고, 최고안전책임자(CSO)를 교체한 지 3개월 만에 또다시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한편, DL이앤씨는 최근 발간한 2025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4년간 약 3600억 원 규모의 안전 예산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2021년 약 800억 원대에서 시작된 투자액은 2023년에 1000억 원 가까이 늘었고, 2024년에도 비슷한 수준의 재원이 안전 분야에 배정됐다.

수천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가 이어졌지만, 협력사 사고 지표는 기대만큼 개선되지 않았다. 협력업체 근로자의 근무시간 100만 시간당 발생하는 재해 건수를 의미하는 ‘재해율’은 2022년 1.48%에서 2023년 1.72%로 오히려 높아졌고, 2024년에 이르러서야 1.30%로 다소 낮아졌다.

DL이앤씨는 지난해 이 지표를 1.28% 이하로 관리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으나 실제 성과는 목표치에 미치지 못했다. 회사는 향후 관리 역량을 강화해 2027년까지 재해율을 1.03% 이하로 끌어내리겠다는 중기 목표를 제시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