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민이 ‘LH해체’ 피켓 들고 거리로 나선 이유

1980~1990년대부터 철거민 운동에 앞장서 온 이호승 전국철거민협의회 중앙회 상임대표를 만났다. 그는 1기 신도시인 분당에서부터 판교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쫓겨나고 숱한 고소고발과 재판을 이어오면서도 철거민들의 앞에 서서 권리 회복을 위해 오늘도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창환 기자]
1980~1990년대부터 철거민 운동에 앞장서 온 이호승 전국철거민협의회 중앙회 상임대표를 만났다. 그는 1기 신도시인 분당에서부터 판교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쫓겨나고 숱한 고소고발과 재판을 이어오면서도 철거민들의 앞에 서서 권리 회복을 위해 오늘도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철거민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들을 그리도 억울하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누가 그들을 거리로 내 몰았을까. 그들은 언제, 왜 쫓겨난 것일까. 분당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들은 왜 LH(한국토지주택공사) 해체를 외치고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만 가득했다. 이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지난 1일 동대문구 장안동 북한연구소 빌딩에 위치한 전국철거민협의회 중앙회를 찾았다. 이호승 상임대표는 미지근한 물에 직접 정성스럽게 믹스 커피 한 잔을 내어주며 “제가 원래는 목회를 했어요”라고 말을 시작했다.

- 철거민협의회는 언제 생겼으며 그 역할은 무엇인가
▲ 철거민협의회는 1988년을 전후해서 전국 각 지역에서 생겼다. 정치적 이유와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에 의한 부동산 개발로 피해를 당한 철거민들의 권리 회복을 위한 단체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철거민 운동을 빈민 운동과 유사한 시각으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빈민을 구제하는 구제책을 요구하는 것과 부동산 정책에 의한 피해를 입은 철거민들의 권리 회복을 요구하는 것은 다르다.

- 부동산 개발로 피해를 입었다면 가해자는 누구인가
▲ 1989년 노태우 정권 당시 1기 신도시인 분당이 개발됐다. 당시 분당 지역에는 680만 평에 4300세대가 살고 있었는데 이중 30%인 1600여 세대가 원주민들이었고, 70%인 나머지 2700세대가 세입자들이었다. 정부와 이들의 이주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대책위원회가 있었는데 이들은 어용(御用) 위원회였다. 이에 몇몇 세입자들과 함께 나서서 이를 뒤집고 ‘분당 세입자 대책 본부’를 구성했다. 당시 토지개발공사, 현재의 LH가 개발에 나선 상황이었는데 이들은 ‘선이주 후대책’을 내걸고 세입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국내 부동산 정책과 맞물려 쫓겨난 철거민들 앞서 권리 회복 운동
“당신이 그리 잘났으면 당신이 나서서 특별공급 주택을 받아 내라”

- 선이주·후대책이 말이 안 되는데 어디로 가서 대책을 기다리란 말인가
▲ 이주를 위한 “임대아파트 공급 신청을 하라”는 LH의 공문이 날아왔는데 너무 허술했다. 특별공급은 미리 대상자를 선정하고 대상자에게 공급 내용을 알려야 하는데 이를 포함해 향후 계획이나 기간에 대한 다른 상세 내용도 전혀 없었다. 그래서 LH의 분당(개발)사업단을 찾아갔다. LH의 대책이라고 내놓은 허술한 내용에 문의하러 갔다가 오히려 황당한 답을 들었다. “당신이 그리 잘났으면 당신이 알아서 (특별공급) 받아요” 

- 상세 내용이 없다면 대체 주민들은 어떻게 하라는 건가
▲ 동네로 돌아와 LH의 불친절하고 성의 없는 답변을 전했다. 이 말을 들은 동네 주민들은 내게 “어떻게 해야 하냐”며 묻더라. 생각해보니 1기 신도시의 개발 명분은 ‘서민주거안정’이었는데 분당 주민 2700명인 세입자 이주 대책은 그 내용이 명확하지도 않았고 마냥 기다리게만 만드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잘났으면 알아서 하라’는 LH의 답변에 LH해체운동의 시초가 된 주거권 운동이 시작됐다.

LH가 분당 신도시 계획과 함께 한 주택을 잘라내 구획을 정했다. 사진은 당시 구획도를 나타내는 그림. [이창환 기자]
LH가 분당 신도시 계획과 함께 한 주택을 잘라내 구획을 정했다. 사진은 당시 구획도를 나타내는 그림. 한 주택을 잘라 방 3개는 신도시에 다른 방 3개는 그렇지 않다는 것 보여주고 있다. 이호승 당시 철거민 대책 위원장이 머물던 방을 신도시 바깥으로 구획을 정해두고 LH는 이 대표가 철거민 운동에 관계없는 제3자라고 주장했다. [이창환 기자]

- 1990년대 2000년대 초반에 시작한 운동이 아직도 이어지는 이유는
▲ 짧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지만 단체를 와해시키려는 공격과 음해도 있었다. 철거민 운동 과정에서는 처음부터 고소와 고발이 이어졌다. 가장 최근에 마무리 된 일을 말하자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고소·고발이 있었고, 결국 2015년 12월24일 구속당했다. 2016년 6월9일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그로인해 ‘부동산적폐청산운동’을 시작했고, 철거민 운동과 함께 지금까지 왔다. 풀려난 뒤 언제 끝날지 모를 재판도 준비해야 했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지만 항소 당해 2심으로 갔고 역시 무죄가 선고됐다. 2018년 6월1일 서울북부지법 제2형사부가 항소심 공판에서 검찰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같은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무죄가 확정됐다. 

- 구속의 이유는 무엇이었나, 해당 사건이 LH 해체운동의 시초가 됐나
▲ 철거민 운동을 하면서 거둬들인 회비 횡령 의혹을 받았다. 철거민 운동이 와해되도록 내·외부 고소 고발이 이어진 데 따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LH해체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맞다. 부동산적폐청산 운동이 이어지는 가운데 올해 3월2일 민변과 참여연대가 LH로부터 시작된 땅투기 사건 관련 검찰고발에 나서면서 동참하게 된 셈이다. 그에 발 맞춰 공식적으로 ‘LH해체운동’을 시작했다. 

- 과거 민주당 경기도당 위원장으로 정치에도 뛰어든 것으로 안다
▲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경기도 위원장에 취임했다. 공공임대아파트, 생계대책용 상가권리, 분당세입자 주거권 쟁취 등에 나서면서 시민운동을 하는 정치인이 필요해 선택됐다. 가족공동체가 붕괴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상처를 입는 이가 없도록 하기 위해 시작한 철거민 운동이었기에, 이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집권세력과는 상당한 마찰을 겪은 바 있어 구속과 탄압을 받으면서 돌아봐도 철거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법과 정책은 생산되지 않더라. 서민과 철거민에 대한 법과 정책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싶었다. 

- 부동산 정책과 맞서면서 힘들었던 일이 많았을 텐데
▲ 경기도 위원장을 하면서도 힘든 점은 있었다. 경기도 전 지역을 두루 다니며 서민과 철거민을 위한 정책을 내놓기 위해 여론을 수렴했고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지역 정치인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유독 성남에만 가면 무시당했다. 비닐하우스에 살던, 철거민 운동하던, 구속됐던 이호승이라고 하면서 같은 당 정치인들마저도 제대로 된 시각으로 봐 주지 않더라. 비닐하우스에 산 게 죄인가. 철거민들의 권리를 주장했던 게 무슨 죄란 말인가. 지금은 힘든 것보다 LH가 해체되고 철거민의 이주 대책과 이런 사태를 만든 정치인들의 사과를 받아 내는 것이 목적이다.

- 겪은 일 가운데 가장 억울하거나 황당했던 일에 대해 묻고 싶다
▲ 다양한 이슈가 엮여 있어서 이번 한 번의 인터뷰에서 다 말할 수는 없지만 토지공사(지금의 LH)가 분당 신도시 구획을 정하면서 이주대책을 마련해 주던 당시의 계획을 보면 가장 황당하다 말할 수 있다. 1989년 정부 정책에 따라 LH가 정한 것이었는데 한 주택 안에 마당과 방이 여러 개 있었는데, 그중 분당 세입자 대책 본부(또는 대책위)에서 위원장을 맡고 있던 내 방을 잘라서 신도시 계획 밖으로 몰아냈다. 그 주택이 아니라 방 한 칸을 의미한다. (웃음)

이호승 상임대표는 인터뷰를 하는 내내 과거를 회상하며 때로는 어이없다는 듯 웃기도, 때로는 답답한 표정을 짓기도 하면서 성실하게 답했다. 마지막 질의에 관련된 분당 신도시 계획과 관련된 자료가 남아 있어 확인했다. 당시 도면에는 좁은 방이 6개, 화장실이 1개, 장독대와 마당이 있던 1개의 주택이 당시 이호승 위원장이 살던 방 옆을 기준으로 칼로 잘라내듯 신도시 바깥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이호승 상임대표는 “철거민 권리 회복을 위한 운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라고 말했다. 

이호승 대표가 LH가 정한 분당 신도시 계획에 따라 한 주택을 잘라 구획을 정한 내용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창환 기자]
이호승 대표가 LH가 정한 분당 신도시 계획에 따라 한 주택을 잘라 구획을 정한 내용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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