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한나라당 선거대책본부장, 재정위원장을 지낸 김영일 전의원이 불법 대선 자금을 모금한 혐의로 원심에서 3년 6월의 형을 받았다. 그러나 2심에서 ‘남다른 가정 환경’등의 사유로 2년으로 감형됐다. ‘선처 사유 남발’비난이 불거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지난 추석 직후 이 회창 전총재가 김 전의원을 방문해 위로했다는 얘기가 측근을 통해 전해졌다.이회창 한나라당 전총재가 지난 1일 오후 미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몇몇 지인의 배웅을 받으며 조용히 떠났던 출국 길과는 사뭇 달랐다. 3주만의 귀국 길은 귀국 환영 및 정계 복귀를 요구하는 지지자들이 대거 몰려 떠들썩했다.

측근에 따르면 평소 이 전총재는 대선 때 자신을 위해 열심히 일해 주고 수감생활을 하게 된 김영일 전의원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전총재는 위로차 수감중인 김 전의원을 가끔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지난 추석 연휴 즈음, 김 전의원이 입원중인 병원을 방문해 30여분간 환담을 나눴다.김 전의원은 지난 추석 연휴 직후인 9월 30일,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었다. 김 전의원은 1주일 가량 입원해 종합 검진 등을 받는 동안 측근을 동반한 이 전총재의 예고없는 방문을 받았고 오래간만에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다.이 전총재는 김 전의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몸은 좀 어떠냐”고 안부를 물었고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내가 벌을 받아야 하는데 김 총장이 대신 벌을 받고 있어 할 말이 없고 마음이 아프다”면서 김 전의원의 빠른 쾌유를 빌었다고 한다.

이 전총재의 한 측근은 “이 전총재는 김 전의원과의 대화에서 ‘불법 대선 자금에 대한 수사가 불공정했다’면서 현정권과 검찰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고 전했다. 건강을 염려하는 이 전총재에게 김 전의원은 “몸은 괜찮다.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라며 “두 번이나 대선에서 지게 돼 오히려 죄송스럽다. 본분을 못한 것 같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또한 “수감생활은 크게 어렵지 않다. 견딜 만하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는 게 측근의 말이다.김 전의원이 구속된 이후 구치소 밖으로 나온 것은 병원 방문이 처음이었고, 시기적으로 추석 연휴 직후라서 외부에 일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한나라당 박 근혜 대표를 비롯해 김덕룡 원내대표 등 주요 당직자들이 잇따라 방문해 위로를 했다는 후문이다.

이종구 전특보는 “이 회창 전총재는 그 동안 수고를 많이 해준 김 전의원에 대해 안쓰러움을 느끼고 있다. 정 때문에 가끔 방문해 위로한다. 병원을 방문했을 때도 교도관이 함께 들어갔다. 안부 정도 전할뿐이다. 대단한 내용의 대화는 없었다”고 밝혔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대선 당시 기업들로부터 700억원대의 불법 대선 자금을 모금한 김 전의원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2년에 추징금 11억 여원을 선고했다.재판부는 김 전의원이 기업체로부터 거액의 불법자금을 받아 집행하고 이후 회계 서류 폐기를 지시한 만큼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고 밝힌 바 있다.재판부는 그러나 김 전의원이 야당 선대위본부장으로서 한 일이었고 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하지 않았으며 이후 삼성에 채권 138억원을 돌려준 점 등을 감안해 1심 형량에서 감형했다고 말했다.

정가, 이 전총재 남대문 사무실 동정에 촉각

이회창 전총재는 지난해 불법 대선 자금과 관련, 두 차례에 걸쳐 기자 회견을 갖고 “다 내 잘못이다”라는 소견을 발표, 올 초 3월엔 직접 검찰에 출두하는 모습을 보인 뒤 정치에서 손을 뗐다.이 전총재는 주로 자택에서 러닝머신을 구입, 운동을 하거나 독서로 시간을 보냈다. 이 전총재의 유일한 취미였던 옥인동 자택 뒤 ‘인왕산 산책’도 그를 알아보는 행인들로 인해 4월말로 그만 뒀다는 게 측근의 말이다.이 전총재의 닫힌 생활을 보고 안타까워하던 측근들이 ‘ 외출’을 권장하기도 했지만 이 전총재는 이를 마다하고 칩거 생활을 해 왔다.그런데 서울 중구 남대문 부근에 이 전총재가 개인 사무실 내면서 ‘ 정치 재개’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이종구 전 특보는 “ 이 전총재가 옥인동 자택에 계실 땐 집이나 근처 식당에서 모임을 갖곤 했는데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고, 건강을 위해선 바깥출입을 자주 하는 게 좋다는 주변의 충고를 따라 사무실을 내게 됐다”면서 “ 정치 재개와 연결시키는 것은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강조했다.그는 “ 이 전총재가 다시 정치를 할 생각이 없고, 그렇게 하기엔 이 시대 정치적 사고와 틀이 너무 달라졌다”고 말했다여야의 대치 정국이 지속되는 11월, 남대문 사무실을 오가며 세상과 소통하는 이 전총재가 앞으로 정치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그의 행보 하나 하나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남대문에 위치한 사무실 여직원은 “입국 이후 한번 사무실 방문이 있었을 뿐이다. 오시더라도 잠깐 머무는 정도”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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