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전투기 추락 후폭풍
지난 2월 13일 충남 서해 앞바다에서 발생한 KF-16 전투기 추락사고의 원인이 ‘엔진 정비불량’이었던 것으로 조사돼 파문이 일면서 이 기종이 다시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공군의 주력전투기종인 KF-16기는 그동안 수차례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기종 도입 과정에서 리베이트 등 각종 비리의혹이 불거지는가 하면 성능에 대한 불확실성이 문제가 됐다. 그리고 도입 후에는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고가 이어졌다.
KF-16기종의 추락 사고는 1997년 8월과 9월, 2002년 2월 그리고 지난 2월 13일 발생한 사고까지 모두 4건에 이른다.
이 기종의 추락 사고가 유독 자주 발생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97년과 02년에 발생한 3건은 모두 기체결함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달 발생한 사건은 정비 불량이 그 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까지 전투기 추락사고 가운데 이처럼 원인이 명확히 드러난 적은 거의 없었다. 공중 충돌 등과 같이 사고원인이 분명한 추락 사고를 제외한 나머지 사고는 모두 기체결함 또는 조종사의 실수로 추정될 뿐이었다.
이에 일각에서는 지난 3월 5일 공군 사고조사위원회가 발표한 ‘엔진 정비 불량’ 발표에 대해 의혹에 찬 시선을 던지고 있다. 차기 전투기 도입 2차 사업을 앞두고 어떤 정치적 노림수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공군 사고조사위원회는 지난 2월 13일 충남 서해 앞바다에서 발생한 KF-16 전투기 추락사고의 원인은 `엔진 정비불량’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고 지난 3월 5일 밝혔다.

이날 위원회는 “해상에 추락한 전투기의 엔진을 수거해 분해해본 결과, 엔진 정비 불량에 의해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결론 났다”고 밝혔다.

사고조사위는 엔진 정비시 미 공군에서 발행한 ‘시한성 기술지시서(TCTO)’에 따라 내구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난 사고기 엔진의 터빈 블레이드 지지대(cover plate)를 교체해야 하는데 2004년 6월 정비사들이 엔진을 정비하면서 교체작업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사고기의 블레이드 지지대 한 개가 파손되면서 파편이 엔진에 손상을 가해 엔진이 정지, 추락사고로 이어졌다는 게 위원회의 설명이다.

사고조사위에 따르면 엔진 제작사인 미국 플랫&휘트니사(社)는 1993∼1994년 사이에 제작된 엔진의 블레이드 지지대 가운데 일부가 열처리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2000년도에 발견했다. 이에 TCTO를 통해 2004년까지 엔진 정비 시 이를 교체토록 했다. 사고기도 이때 제조된 엔진을 부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비불량이 추락 원인?
교체 대상인 문제의 블레이드 지지대는 모두 `Z코드’로 표기돼 있다. 엔진에는 총 34개의 블레이드 지지대가 들어가 있는데 사고기는 34개의 블레이드 지지대 모두가 교체 대상인 `Z코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2004년 6월29일 사고기에 대한 정비기록을 담은 서류에는 “분해를 해본 결과 엔진에는 `Z코드’가 없어 이상이 없다”고 기록돼 있었다고 공군은 전했다. 즉, 사고기 엔진을 아예 분해도 하지 않았거나 분해를 했더라도 부실 검사를 했다는 결론이다.

사고조사 요원인 박준홍 공군작전사령부 안전과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비 서류에는 사고기에 대한 확인을 했다고 돼 있으며 작업자들은 당시 이상이 없다고 보고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TCTO를 통해 블레이드 지지대를 교체토록 한 기간이 너무 길뿐만 아니라 다른 전투기는 다 고쳤는데 유독 이 엔진만 Z코드라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 이 부분의 결함으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단정 짓는 것 역시 무리가 따른다. 90년대 초중반에 생산된 엔진에 대해 2004년까지 교체토록 했다면 이것이 사고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만약 사고 위험이 크다면 비행사의 목숨과 직결되는 만큼 플랫&휘트니사가 이를 당장 교체토록하고 비행 운항 정지 조치를 내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군은 이번 사고가 나자 그때서야 모든 KF-16기종의 운항을 중단하고 블레이드 지지대 교체확인 작업을 벌였다.



이처럼 블레이드 지지대가 사고와 직결될 정도로 중대 사안이라면 이번 추락 사고가 나기 전에 취해야 했을 조치임에도 불구하고 4년이라는 긴 교체기간을 둔 점과 확인 작업 없이 운항을 계속해 왔다는 점은 의문으로 남는 대목이다. 이에 공군 내부에서는 기체 선정과 결함에 대한 국민적 비판을 정비 불량 탓으로 돌리려 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공군은 군 기강 확립을 위해 공군 전 부대에 대한 특별 직무감찰을 지난 3월 6일부터 실시해 추가로 정비 불량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국방 사업에 대해 국민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불식시키려는 ‘모종의 정치적 노림수’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차기 전투기 도입 2차 사업에서 미국의 보잉사 전투기를 선정하기 위한 일종의 ‘작업’이라는 것이다.


공군, 정비불량 인정은 처음
그 배경을 살펴보면 그동안 크고 작은 전투기 관련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공군 측은 기체결함 또는 조종미숙을 그 원인으로 들었을 뿐 여러 가지 복잡한 검사단계를 거치는 정비과정은 철저했다고 강변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정비 불량을 시인했다. 지금까지 공군이 보여 온 입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군 당국은 그 동안 밝혀지지 않은 정비 불량 문제까지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와 거의 때를 같이해 지난 3월 9일에는 오는 2009~2012년 F-15K급 전투기 20대를 도입하는 2차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 대한 공개설명회가 열렸다. 이번 사업은 무려 2조3,000억원 규모의 대형 국책 사업이다.

이날 실시한 차기전투기 2차 사업 공개설명회에 미국의 보잉과 록히드마틴, 이탈리아·영국·독일·스페인 합작사인 유로파이터 등 3개 업체가 참가, 사업제안요청서를 받아 갔다고 방위사업청은 밝혔다.

보잉은 F-15K를, 록히드마틴은 F-22를, 유로파이터는 최신예 기종인 EF-타이푼을 후보 기종으로 제안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F-15K는 우리 공군이 내년까지 40대를 도입할 예정인 기종이다.

전문가들은 F-22의 경우 미국 정부의 외부판매 인가가 나지 않은 상태고 EF-타이푼은 기술력 이전, 부품수급, 유지비용 등의 군수체계가 국내 실정과 맞지 않아 남은 기종인 F-15K가 가장 유력하다고 점치고 있다.


F-15K 선정 위한 포석 깔기
하지만 F-15K를 도입키로 결정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F-16K가 결함 등의 문제로 이미 4번의 추락 사고를 당한 것을 시작으로 F-15K가 이미 노후기종이라는 점, 그리고 이 기종을 생산하는 보잉사가 과거 군사업자 선정과정에서 정치권 로비 의혹 등에 휘말린 전적이 있어 국민적 인식이 매우 나쁘기 때문이다.

F-15K를 선정하기 위한 사전 연막작업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데는 바로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즉, 어떤 사업자가 선정될지 이미 내정돼 있는 상태에서 형식적으로 공개 사업자 선정 작업을 벌인다는 얘기다.

실제로 공군 차기전투기(F-X) 획득사업과 관련 지난 2002년 6월 5일 라팔의 제조사 프랑스의 다쏘사는 미 보잉사의 F-15K에 밀려 탈락하자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 정부 측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다쏘사의 이브 로빈슨 부사장은 “라팔은 차기전투기 수주 경쟁에서 승리했지만 사업권은 다른 업체에 넘어갔다”며 경쟁과정에서 국방부가 말하는 ‘공정성’과 ‘합리성’은 다른 나라나 한국사회와는 다른 뜻으로 미리 예정된 결과를 해명할 때 쓰이는 변명으로 쓰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국정부를 비판했다.

로빈슨 부사장의 이 같은 발언은 사업자 선정에서 제외된 패자의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당시 불거졌던 전투기 판매 로비의혹과 로비스트에 의한 리베이트 파문 등을 감안하면 전혀 근거 없는 소리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김총장 사임 둘러싼 잡음
한편 김성일(공사 20기·59) 공군참모총장의 사임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총장은 지난 3월 18일 서울 한남동 국방장관 공관에서 김장수 국방장관을 예방하고 사의를 표명했다.

김 총장의 사의표명 배경에는 ▲공군의 기강해이에 대한 책임 ▲후임 인선 배려로 좁혀지고 있다. 고(故) 윤장호 하사의 애도기간인 3·1절에 군 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된 것 등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이나 공군 관계자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공군 관계자는 “임기가 이제 5개월 정도 남았는데, 새삼 감사 문제로 사임까지 결정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모르긴 해도 뭔가 다른 속사정이 있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차기 전투기 선정 놓고 갈등

전투기종에 대한 평가는 군 관계자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견해차가 뚜렷하다.

공군 측은 효율적인 전투규모단 구성이나 즉시 전력을 보강하는데 F-15K가 우월하다는 입장이다.

F-22나 F-35는 2014년 이후에나 도입이 가능하므로 F-15K를 도입하는 것이 공군의 전투력을 높이고 5세대 전투기를 실전 배치할 때까지의 공백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게 공군 측의 설명이다.

반면 군사전문가들은 “실질적인 대북억제력을 위해 5세대 전투기인 F-22나 F-35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4세대 전투기는 북한의 핵을 포함한 WMD에 무기력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첨단무기로 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군 전투기 추락사고 일지

● 1994.5.20 = 전북 군산 서쪽 37㎞ 해상에서 훈련중이던
F-4E 팬텀기 1대 추락.

● 1994.6.10 = 충북 청원군 강외면 야산 정상부근에
F4-E 팬텀기 1대 추락, 조종사 2명 사망.

● 1994.10.19 = 전남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 월산마을 인근 상공에서
훈련비행중이던 제1전투비행단 소속 F-5B 전투기 2대가 충돌,
조종사 1명 사망.

● 1995.1.5 = 경남 하동군 금남면 덕천리 금호산 중턱에서 훈련비행중이
던 5718부대 소속 T-59 호크 훈련전투기 2대가 충돌, 조종사 4명 사망.

● 1997.4.9 = 제3591부대 소속 F-5E 전투기 1대가 임무 수행중
계룡산 중턱에 추락, 조종사 1명 사망.

● 1997.8.6 = 비행훈련 중이던 KF-16 전투기 1대가
경기도 여주 여주전문 대 뒤편 논에 추락. 조종사는 비상탈출.

● 1997.9.18 = 충남 서산시 음암면 도당1리 야산에 훈련 비행중이던
서산 기지 소속 KF-16 전투기 추락, 조종사 비상탈출.

● 1998.5.8 =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인근 야산에 곡예 비행팀
블랙이글 소속 A-37 전투기 2대가 서로 날개가 부딪히면서
1대가 추락, 조종사 1명 사망.

● 1999.9.14 = 경북 문경시 문경읍 형천1리 속칭 왕의산 중턱에
F-5E(국산 제공호) 전투기 1대 추락, 조종사 1명 사망.

● 2000.10.4 = 충북 진천군 초평면 진암리 상공에서 훈련비행 중이던
17전 투비행단 소속 F4-E 팬텀기 추락.

● 2001.4.18 = 충남 금산군 부리면 어재리 인근 야산에 17전투비행단
소 속 F-4E(팬텀) 전투기 1대 추락, 조종사 2명 비상탈출.

● 2001.6.8 = 경북 안동시 풍천면 어담리 뒤편 야산에 훈련 중이던
제19전 투비행단 소속 F-16 P/B(피스브릿지) 전투기 추락,
조종사 2명 비상탈출.

● 2001.10.5 = 강원도 영월 필승사격장내에서 17전투비행단 소속
F-4E(팬 텀) 전투기 1대가 공대지 전술폭격 훈련중 추락,
조종사 2명 사망.

● 2002.2.26 = 충남 서산시 고북면 정자리 A지구 농장 논에 비행훈련중
제20전투비행단 소속 KF-16 전투기 1대 추락, 조종사 1명 비상탈출.

● 2002.9.18 = 경북 상주시 사벌면 상덕가리 야산 중턱에
공군 F-16D 전투기 1 대 추락, 조종사 2명 비상탈출.

● 2002.10.4 = 전북 군산시 옥구읍 선제리 자양중학교 앞 논에
F4 팬텀기 1대 추락, 조종사 2명 비상탈출.

● 2003.5.13 = 경북 예천군 유천면 화지리에서 제16전투비행단 소속
F-5E 전투기 1대가 비닐하우스로 추락, 조종사 1명 사망.

● 2003.9.19 = 8전투비행단 소속 F-5E 전투기 2대가 훈련임무 도중
충북 영동지역 산악에 추락, 조종사 2명 사망.

● 2004.3.11 = 제10전투비행단 소속 F-5E 전투기 2대가
서해상에서 충돌, 조종사 2명 사망.

● 2005.7.13 = 제10비행단 및 제17비행단 소속 F-5F(제공호),
F-4E(팬텀) 서해와 남해에서 잇따라 추락, 조종사 4명 사망.

● 2006.1.27 = 19전투비행단 소속 F-16C 전투기 1대가 충주에서 추락,
조종사 1명 추락직전 탈출.

● 2006.5.5 = 특수비행팀 블랙이글 A-37 전투기 1대 수원비행장서
곡예비행중 추락, 조종사 1명 사망.

● 2006.6.7 = 11전투비행단 소속 F-15K 전투기 1대가 동해 앞바다에서
야간 비행훈련 중 실종. 추락한 것으로 추정. 조종사 2명 사망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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