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억대 부동산 사기극
한 사람이 1인 4역을 하며 부동산 사기행각을 벌인 황당한 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3월 28일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에 따르면 김모(31)씨는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실무지식을 이용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조사결과 김씨는 뛰어난 음성변조 능력으로 공인중개사, 감정평가원 직원 및 사장, 재력 있는 건물 매수자 등 ‘1인 4역’을 소화하며 종횡무진 활약(?)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검찰은 이 범행에 가담한 공범 2명도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전화번호부에서 피해자들을 물색하는 역할을 했던 또 다른 공범 김모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이처럼 철저한 역할 분담을 통해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다고.
한편의 코미디 영화를 연상케 하는 이들의 기상천외한 범행 수법과 사건의 내막을 들여다 보자.



강북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광고 영업을 담당하고 있던 김씨.
자신이 알고 있는 부동산 지식을 활용해 큰돈을 마련할 수 없을까 고민하던 그는 어느날 기막힌 계획을 생각해 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장기인 목소리 변조를 통해 사기 행각을 벌이는 것이었다.


자세한 범행내용 일절 함구

김씨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뒤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동료들에게 이 계획을 털어 놓으며 동참할 것을 종용했다. 그의 계획을 들은 동료들은 처음에는 망설였으나 자신감을 내 비치는 김씨를 믿어 보기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 일당은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모두 회사를 그만두고 나올 정도로 적극적이었다”며 “김씨의 업무 능력이 좋은 편인데다 그의 범행 계획도 그럴 듯해 동료들이 모두 그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고 전했다.

또 검찰에 따르면 현재 이들은 범행의 준비과정 등 자세한 범행공모 과정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검찰 관계자는 “김씨 등은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 사안에 대해서만 범행사실을 인정하고 있을 뿐 언제부터 모의했는지, 사전준비는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며 “추가 범행여부에 대해서도 일절 부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먼저 사건을 수사했던 수서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범행모의 기간과 범행 시작 시점을 구체적으로 밝히게 되면 자신들의 추가범행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함구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며 “현재 확인된 사건은 5건 정도지만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경찰 측의 설명에 따르면 부동산 중개사무소에서 광고영업을 했기 때문에 공인중개사 업무 내용을 꿰뚫고 있었고 따라서 특별한 사전준비는 없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매물 정보가 가득한 인터넷 사이트를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고 검찰은 밝혔다.

김씨 일당은 서울 강북의 한 아파트에 사무실을 차린 뒤 여러 대의 `대포폰’을 개설했다. 이어 전호번호부와 부동산 관련 사이트 등을 통해 범행대상을 물색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이렇게 확보된 자료를 바탕으로 피해자들의 매물 건에 대한 정보를 모두 확보한 뒤 피해자들에게 일일이 확인전화를 했다
고.

검찰조사에서 드러난 김씨의 수법을 살펴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먼저 김씨는 자신을 강남의 OO부동산 업자라고 속인 뒤 부동산을 팔겠다는 이들에게 접근했다.

이어 김씨는 피해자들에게 “땅을 비싼 값에 팔아주겠다. 그러기 위해선 감정평가액이 높게 나와야 한다”며 감정평가원 전화번호를 소개했다.


완벽한 음성변조 능력

그러나 이 감정평가원 전화번호는 김씨의 또 다른 대포폰 전화번호. 피해자가 이 번호로 전화를 걸어오면 김씨는 목소리를 바꿔 감정액을 높게 책정해 줄테니 비용을 송금하라며 공범이 개설한 대포통장 번호를 알려줬다.

이런 식으로 작년 2월부터 올해 6월까지 김씨가 갈취한 돈은 무려 1억 6,000만원.

아울러 검찰은 추가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러 사람을 감쪽같이 속인 김씨의 목소리 변조 능력은 어떤 수준일까.

검찰 관계자는 “김씨의 목소리 변조는 정말 놀라울 정도다”라며 “직접 들어본 수사관들은 하나같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전했다.

또 김씨는 목소리 변조 능력 이외에도 피해자들의 상황을 적절히 활용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김씨에게 당한 피해자들은 대부분 땅을 급매물로 내놓은 사람들이었던 것.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들의 중개로 실제 거래된 땅은 없었기 때문에 개인당 피해액수가 억대에 이를 정도로 크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경찰은 감정가를 빌미로 돈을 받아 챙긴 것 외에 다른 범죄 사실은 아직 드러난 바 없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주부, 자영업자, 전문직 종사자 등 다양했다. 다만 거액의 매물을 중심으로 사기행각이 이뤄진 것으로 보아 대부분 부유층이 피해자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검찰은 밝혔다.


집안형편 어려워 범행

한편 검찰은 김씨가 범행을 저지르게 된 동기에 대해 “김씨는 진술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몸이 불편해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며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몸이 불편해 생활이 어려웠다고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 측 관계자는 “나머지 3명의 공범들이 아무런 이유나 대가없이 김씨 부친의 병원비를 마련키 위해 범행을 도왔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아마 유흥비 마련 등 다른 목적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 일당 검거 위해 1년 6개월 추적

김씨 사건은 검찰에 앞서 수서경찰서 경제 3팀에서 수사했던 사건이었다.

수서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이 사건을 수사하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1년 6개월.

경찰은 당초 부동산 사기 사건에 대한 피해사건을 접수한 뒤 이를 단일 사건으로 보고 관련 내용을 수사했다.

하지만 수사가 계속되면서 수법이 비슷한 다른 사건이 여러 건 더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보다 집중적으로 수사하기 시작했다.

이어 몇 개의 사건이 특정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는 것을 발견, 용의자 파악 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용의자를 파악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경찰은 그러나 집요한 추적 끝에 용의자들의 신원을 확보하고 거주지 파악 후 잠복해 있다가 일당을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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