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깜짝 후보론 불구 이회창에게 넘겨 DJ는 “노무현이 배신 안할 것” 막후 지원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박근혜 대통령은 정권을 잡기 전 ‘미래 권력’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MB)과 몇 차례 충돌했다. 이 때문에 MB가 박 대통령의 대선 행보를 돕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무성했다. 나아가 대항마를 내세우기 위해 여러 인물들을 물색 중이란 소문도 나돌았다.

실제로 18대 대선을 2년 여 남겨 둔 2010년 8월 MB가 당시 48세의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를 국무총리로 지명하자 후계자로 키우려는 포석이란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김 전 지사는 인사청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낙마하는 바람에 대권주자군에서 제외됐다.

이 시점에 MB는 ‘박근혜 대선 후보’ 카드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진다. 김 전 지사의 총리후보직 자진사퇴가 거론되던 8월 21일 MB-박근혜 단독 회동이 있었다. 이 때 차기 대선 얘기가 오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특히 대선을 3개월여 앞둔 2012년 9월 2일 MB와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의 청와대 오찬 독대에 정가는 주목했다. 두 사람은 그날 무려 100여분에 걸쳐 만났다. 그러자 대선과 관련한 모종의 밀약이 있었을 것이란 말이 나돌았다.

앞서 노무현 대통령 시절엔 임기가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실력자들 사이에 암투가 벌어졌다. 당시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여성 대통령을 꿈꾸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차기 주자로 떠올랐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중 자신과 정치 스타일이 비슷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같은 ‘PK’인 김혁규 전 경남도지사를 후계자로 염두에 두고 있다는 추측이 많았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이강철 전 대통령 정치특보는 그 시점에 “노심(盧心)은 없다”고 못박았다. 이 전 특보는 “노 대통령의 성격상 누구를 밀어주고 하지 않는다. 자신이 그랬듯이 오픈 프라이머리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후보가 곧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선 정동영 전 의장이 승리를 거뒀지만 본선에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이명박 후보에게 크게 패배하면서 정권연장에 실패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도 재임 당시 후계구도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자신은 중립이며, 경선에 의해 대선후보가 선출될 것이란 말만 되풀이 했다. 그러나 DJ의 속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복심(腹心)이었던 박지원 대통령 비서실장이 ‘김심’(金心)을 꿰뚫고 후계구도를 정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탄생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한 관계자의 증언이다.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 과정에서 ‘김심’을 읽은 박지원 실장이 노무현 경선후보를 막후 지원한 정황이 있다. 청와대의 ‘작업’ 없이 경선판도를 단숨에 뒤바꾼 광주 경선 승리가 가능했겠느냐. 아마 DJ나 박 실장은 ‘노무현만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경선 이후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가 급격히 떨어지자 청와대가 나서서 후보 교체를 시도한 흔적도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은 재임 때 후계구도를 밝히면서 ‘깜짝놀랄 젊은 후보’를 언급해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문민정부 임기가 반환점을 돌아 후반기에 접어든 1995년 10월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다. YS는 후계자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활기차고 젊은 사람, 깜짝 놀랄 만한 세대교체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자 재선 국회의원과 노동부 장관을 거친 이인제 당시 경기도지사(당시 46세)가 급부상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깜짝 놀랄 젊은 후보’가 이인제 지사를 염두에 둔 것 같다는 사족을 달았던 까닭이다. 이 지사 스스로도 언론을 상대로 은근히 자신을 지칭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이후 오락가락하는 정치 행보로 여당의 대선후보 자리를 이회창 전 총리에게 내줬다. 이회창 후보는 본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졌다.

YS 전임자인 노태우 대통령은 정국안정을 위해 3당 합당을 단행하는 바람에 스스로 후계자를 정하지 못했다. 민정계를 몰락시키고 당을 장악한 YS가 대선후보직을 ‘쟁취’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2·12 사태를 함께 일으킨 친구 노태우 민정당 대표를 일찌감치 후계자로 점찍었다.

‘2인자’를 용인하지 않고 철저하게 분할통치를 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결과적으론 청년장교 시절부터 아꼈던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권좌를 넘겼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이 후계자로 키운 확실한 2인자가 있었다면 그의 사후 신군부가 정권을 잡지 못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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