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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대표 경선 이어 내년 전당대회가 갈등의 분출구
계파전쟁 정전 위해 ‘김부겸 구원 등판론’ 솔솔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휘청거린다. 세월호특별법안에 발목이 잡혀 있다가 가까스로 여당과 합의했지만 후폭풍이 만만찮다. 내부에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었다는 불만이 분출되자 협상을 주도한 박영선 의원은 원내대표직을 내던졌다.

이 와중에 당 소속 김현 의원이 세월호 유가족들과 술을 마시고 대리운전기사 폭행 사건에 연루됐다. 김 의원 사건은 단순 음주폭행 사건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당 지도부와 김 의원 본인이 어정쩡한 대응을 하는 바람에 새정치연합의 이미지에 큰 먹칠을 했다. 그 사이에 정당 지지도는 20% 대에도 못 미치는 최악의 결과를 낳고 있다.

박영선 전 대표도 희생자

이 모든 파문의 중심에 계파패권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박영선 의원은 원내대표직을 던지면서 자신을 흔든 각 계파 수장을 겨냥해 “흔들리는 배 위에서 활을 들고 협상이란 씨름을 벌인 시간이었다”고 토로했다. 또 “직업적 당 대표를 위해서라면 그 배의 평형수라도 빼버릴 것 같은 움직임이 있었다”고도 했다. 계파패권주의자들이 ‘새정치민주연합호(號)’는 침몰하든 말든 선장 자리만 놓고 다퉜다는 의미다.

김현 의원은 금배지를 달고 을(乙) 중의 을인 대리운전기사에게 ‘갑(甲)질’을 하고도 공개사과를 하지 않았다. 경찰청을 국정감사 피감기관으로 하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위원직을 내놓아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당 지도부는 오히려 김현 의원을 감쌌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지난 6일 비대위 회의에서 ‘억지사과’를 하기는 했다. 그러나 사과 이후 여론은 더 들끓었다. 김 의원을 잔뜩 치켜세운 뒤 마지못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죄송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당장 “잘못한 일이 없다면서 뭘 사과한다는 건가...”라는 비판이 나왔다.

문 위원장은 그날 자신이 외교통일위를 떠나 안행위로 가고 김 의원을 외교통일위에 배치시켰다. 이 역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미 경찰조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안행위에서 배제시킨 건 별 의미가 없다. 또 국정감사를 시작하기 전날 김 의원을 외교통일위로 보내 재외공관 국감을 위해 출국할 수 있도록 조치한 건 ‘꼼수’라는 지적을 받았다.

문 위원장은 취임 직후 “초·재선 중에 너무 막 나가는 의원이 많다.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했다. 또 “해당(害黨) 행위자는 포청천처럼 개작두로 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신이 지적한 일탈행위의 첫 사례인 김 의원에게 적용하지 못했다. 5선의 ‘포청천 문희상’이 왜 비례대표 초선인 김 의원 앞에서 작아졌을까. 이 역시 해답은 당내 계파 구도에서 찾을 수 있다.

김현 스승은 이해찬 의원

김 의원은 학생운동권 출신이다. 졸업 후 재야운동을 하다 정치권에 진입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춘추관장(보도지원비서관)을 지내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문재인 의원이었다. 김 의원의 정치적 스승은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의원이다. 이 의원은 친노 세력의 막후 실세로 통한다. 지금 김 의원은 친노 소장파 중에서도 강경파다.

이번 사건이 났을 때 친노 세력은 침묵하거나 적극 보호했다. 강경파는 마치 부당하게 여론몰이,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는 인식을 내비치기도 했다. 친노 좌장인 문재인 의원은 김 의원에 대한 당 차원의 조치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입을 다물었다. 친노 강경파인 정청래 의원은 비노계인 조경태 의원이 ‘김현 출당론’을 피력하자 ‘조경태 출당론’으로 맞불을 놓았다.

결국 당내에 뚜렷한 소속 계파가 없이 모래알 정당의 ‘바지 사장’ 격인 문희상 위원장이 당내 최대 주주인 친노계의 눈치를 살펴 김 의원에 대한 강경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 박지원 의원을 비롯한 비노계 중진들이 김 의원을 비판하지 못한 건 친노계의 반발에 계파갈등으로 번질 소지가 있었던 까닭이다.

새정치연합의 계파 패권주의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당내에서 계파색체가 없는 ‘합리적 진보주의자’로 꼽히는 김부겸 전 의원의 다음과 같은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부끄럽지만 당내 파벌싸움이 존재한다. 차라리 드러내놓고 싸우면 좋겠다. 정책대결이라도 되도록... 은밀히 존재하고 작동하니 더 큰 문제가 된다. 대부분의 정치행위가 (각 계파의) 이해관철 수단으로 변질됐다. 우리 당은 ‘아무리 잘 못해도 늘 2등이 보장되는 정당’으로 지내왔다. 정부와 여당에 대한 정치적 반대 자원을 독점하는 특권에 안주해 온 거다. 당내 파벌싸움의 본질도 사실 여기에 있다. 정권교체보다는 2등 정당의 기득권을 자기 계파 몫으로 만드는 일에 더 큰 관심을 둔다.”

지금 벌어지는 새정치연합의 계파 패권다툼은 ‘미니 총선’으로 치러진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하는 바람에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동반퇴진하면서 불이 붙었다. 계파색이 엷은 박영선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겸하면서 힘겹게 당을 이끌었으나 차기 당권을 겨냥한 각 계파의 ‘박영선 흔들기’가 극심했다. 그러자 박 원내대표는 중도보수 논객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와 진보진영의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를 ‘투톱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했다. 하지만 이 카드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각 계파의 반대로 무산됐다. 결국 비대위는 관리형인 문희상 위원장이 이끌면서 각 계파의 수장이 모이는 형태로 꾸려졌다. 이후 계파 패권경쟁의 마지막 희생자가 박영선 전 원내대표였다.

새 지도부가 공천권 행사

지금까지의 계파 갈등은 서막에 불과하다. 내년 초로 예정된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실제로 총성이 오가는 전쟁터가 된다. 각 계파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전초전도 치렀다. 9일 실시된 원내대표 경선이었다. 당초 박영선 전 원내대표의 잔여 임기를 채우는 7개월짜리 원내사령탑을 합의추대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각 계파가 서로 양보하지 않는 바람에 표 대결로 갔다.

결국 각 계파의 대리전으로 치러진 경선에선 문재인계인 우윤근 의원이 범친노 민평련계인 이목희, 비노 중도계인 이종걸 후보를 꺾고 승리를 거뒀다. 당 소속 의원들의 투표로 진행된 경선이었던 만큼 문재인계가 최대 계파임이 다시 입증된 셈이다.

당권 전쟁의 전초전을 치룬 각 계파는 이제 전당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 새로 선출될 당 대표 자리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우선 임기 2년이 보장될 가능성이 높다. 2016년 4월에 실시될 20대 총선까지는 전국 규모의 선거가 없기 때문에 의외의 대형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중간에 퇴진할 위험성이 적은 까닭이다.

따라서 새 지도부는 20대 총선 공천권을 행사하게 된다. 나아가 2017년 대통령선거에 당의 간판으로 출마할 수 있는 교두보를 놓는다는 의미도 있다.

이 때문에 각 계파의 수장들이 직접 당권 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당장 문재인 의원이 ‘당권 장악→대선 재출마’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는 세월호특별법 제정과 ‘이상돈 파동’ 과정에서 리더십에 타격을 받았지만 여전히 ‘당 대표 0순위’로 꼽힌다. 최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의 당 대표 적합도 조사에서 39%라는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그 뒤를 안철수(15.7%), 김부겸(7.1%), 박지원(5.2%), 정동영(3.8%), 추미애(2.8%), 정세균(2.0%), 박주선(1.8%), 이인영(0.7%) 등 전·현직 의원들이 이었다. 이 중 정세균 의원은 범친노로 분류되지만 독자적인 계파를 보유하고 있다. 박지원 의원은 DJ(김대중 전 대통령) 계열의 맥을 잇고 있다.

물론, 전당대회까지 남은 3~4개월 동안 새로운 흐름이 일어날 수 있다.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중도, 온건 성향의 비노 진영의 결집 움직임이다. 친노계의 사당화(私黨化)에 반발하는 전·현직 의원 20여명은 최근 ‘친노 패권주의 배격’을 내걸고 가칭 ‘구당구국(救黨救國) 모임’을 결성했다.

이 모임엔 정대철·이부영·정동영·천정배 전 의원 등 원로와 중진을 비롯해 추미애·강창일·이종걸·주승용·이상민·노웅래·문병호 의원 등이 참여했다. 구당구국 모임은 향후 초·재선 의원들을 추가로 끌어들여 세력을 확대한 뒤 전당대회에 독자후보를 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 안팎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거론하는 ‘김부겸 구원등판론’도 현실화될 수 있다. 당내 계파 경쟁에서 자유로운 김부겸 전 의원이 대표를 맡아 계파패권주의를 근절해야 한다는 논리다. 2012년 대선 패배를 놓고 문재인 의원과 친노계를 향해 쓴소리를 했던 한상진 서울대 교수가 “삼고초려가 아니라 십고초려를 해서라도 김부겸에게 역할을 맡겨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6·3 대구시장 선거에서 석패한 뒤 대구에 머물고 있는 김 전 의원은 “지금은 지역주의 극복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당권을 말할 때가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선 야당에도 TK 출신의 강력한 당권주자가 등장할 수도 있다. 만일 김부겸의 새로운 도전이 성공한다면 새정치연합의 계파패권주의는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된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야당은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민주통합당이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당명을 바꾸고 거듭 나고자 노력은 하고 있으나, 고질적인 계파주의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며 “내년 초 전당대회가 야당의 앞날을 결정짓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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