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곡미술관에 근무한 인사 2명 릴레이 인터뷰

신정아씨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연기되면서 검찰 수사결과를 둘러싼 각종 추측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기업들의 성곡미술관 지원 배경과 신씨의 성곡미술관 후원금 횡령에 관한 내용이다. 검찰은 지난 9월 27일 신씨와 박문순 성곡미술관장을 소환해 대질신문를 벌이는 과정에서 신씨가 횡령금을 박 관장에게 상납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사실관계를 추적하고 있다. <일요서울>은 최근 성곡미술관에서 신씨와 함께 근무한 적 있다는 한 미술계인사로부터 신씨가 박 관장에게 절대적인 총애를 받았으며, 그 내막에는 신씨의 거액 상납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증언을 확보했다. 이 인사는 약 20여분간 진행된 <일요서울>과의 전화통화에서 성곡미술관 시절 신씨의 출세 과정, 그리고 박관장과 신씨의 관계 등을 비교적 소상히 털어 놓았다. 이와 더불어 본지는 수년전 신씨와 함께 미술전시회 작업을 함께 한적 있다는 작가 A씨와 미술계의 한 인사를 통해 신씨에 대한 주변인들의 평가와 큐레이터의 실체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보았다.



전 성곡미술관 인사
“법조인과 사귄 다는 소문 자자”


성곡미술관에서 수년간 근무했다는 A씨는 한사코 본지와의 전화통화를 피하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을 전재로 힘겹게 대화에 응했다.

이 인사는 먼저 “신정아 때문에 요즘 너무 힘들고 지쳤다”는 말로 자신의 심정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신정아는 사실 큐레이터 세계에선 능력있는 사람으로 통했다”며 “우리 입장에서 볼 때 허위학력 외에 신정아가 문제될 것은 거의 없다. 기업후원금 유치나 전시회 성공 등 은 큐레이터라는 업무에 충실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위층 인사와의 인맥을 통해 후원금을 유치하거나 그림 판매를 촉진하고 각종 전시회를 성공으로 이끄는 것이야 말로 미술계에서 말하는 큐레이터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역할 수행을 위해 어떤 대외활동을 했는가는 2차적인 문제라는 게 A씨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그것은 큐레이터 개인의 사생활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미술관 입장에서 보면 실적 외에 다른 부분은 신경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큐레이터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공금이라 할 수 있는 후원금을 횡령하고 그 돈을 다시 오너인 미술관장에게 상납했다면 이야기가 틀려진다. 이 부분에 관해 이 인사가 전하는 일문일답을 정리해 보았다.

- 성곡미술관을 왜 그만두게 됐나. 혹시 신정아씨 때문인가.
▲ 아니다. 내가 성곡미술관을 나가게 된 것은 신정아와 전혀 관계없는 일이다. 신정아 때문에 그만두었다면 그 응어리를 풀기 위해 벌써 다른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을 것이다. 그와는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직업관이 바뀌어 성곡미술관 일을 그만두었다.

- 미술관 내에서 신씨에 대한 평가는 어땠나.
▲ 대체로 좋은 편이었다. 특히 윗사람들은 신정아씨를 매우 좋게 보는 편이었다. 일을 잘하기 때문이었는데, 그림 판매와 미술관 홍보, 그리고 후원금 유치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전시회에 대한 기획력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사람마다 평가는 다르겠지만 기획력이 뛰어나다고 보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 미술계에선 개인 사생활이 좋지 않았다는 소문도 있던데.
▲ 사생활이라면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성관계가 복잡하다는 소문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아니 복잡하다기 보다 남자친구가 많았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그런데 그런 내용은 본인 스스로도 공공연히 인정했던 부분으로 알고 있다. 쉬는 날에도 남자친구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쉴 틈이 없다고 주위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다.

- 남자친구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바는 없는가. 최근에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이 후배를 소개시켜 줬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는데.
▲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남자친구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 나경원 대변인의 소개로 만난 사람인지는 몰라도 고위 법조인과 가까운 사이라는 말은 했었다. 미술계에 떠도는 소문에는 그 법조인과 신정아씨가 매우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지만 나는 그것까진 잘 모르겠다.

- 박문순 관장은 신정아씨를 매우 총애했다는데 일을 잘해서인가.
▲ 그것 외에 다른 이유가 뭐 있겠나. 무엇보다 박 관장은 미술관 수익에 관한한 신정아씨에게 거의 절대적으로 의지했던 것은 사실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심지어 어느날에는 박 관장이 미술관의 한 인사에게 “당신은 왜 신정아 처럼 못하냐”고 채근하기도 했는데, 알고보니 신정아씨가 그날 모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받아냈었다. 한마디로 돈을 벌어오란 얘기다. 사실 신정아씨가 박 관장의 절대적인 총애를 받으면서 이상한 소문이 가끔 들리곤 했는데, 신정아씨가 후원금 외에 기업으로부터 따로 받은 돈까지 박 관장에게 상납했기 때문에 박 관장이 더 신뢰한다는 말도 있었다. 그 이상은 나도 모르니 묻지 말라.

- 현재 신정아씨와 박문순 관장이 후원금 횡령에 대해 엇갈린 진술을 하고 있다. 이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내가 보기에 박 관장은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격이다. 사실 신정아씨가 성곡에 재직할 당시 우리는 모두 그가 부잣집 딸인 줄 알았다. 성곡에서 나오는 급여로는 그렇게 고가의 명품을 두를 형편이 안되기 때문이다. 큐레이터의 월급은 그야말로 비참하다. 적게는 30만원에서 많아야 100만원 선이다. 그런데 무슨 여유가 있겠나. 지금 돌이켜 보건데, 횡령이 아니면 그 돈이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만약 신정아씨가 그 돈을 횡령하지 않았다면 그 돈은 박 관장이 보너스 명목으로 신정아씨에게 줬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본다. 후원금 횡령의혹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신정아가 단독으로 횡령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미술관 후원금과 그 사용처라는 게 뻔하기 때문에 이 모든 내역은 박 관장이 꿰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신정아씨가 혼자 단독으로 횡령하겠나.


신정아 채용한 인사
“일 척척 해 내 관장이 좋아해”


이와 함께 성곡미술관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하다 돌연 미술관을 그만둔 또 다른 인사와 전화 접촉을 시도해 보았다. 이 인사 역시 앞선 인사와 마찬가지로 전화통화를 한사코 거부하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수차례 요청 끝에 어렵게 통화에 응한
이 인사는 언론 보도에 대한 불만부터 터뜨렸다.

이 인사는 “지금까지 나를 대상으로 취재한 언론들이 모두 제멋대로 기사를 지어서 냈다”며 “내가 한 말에 온갖 상상력을 붙여 쓴 바람에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이 인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거대 언론사에서 이렇게 막무가내로 거짓 기사를 써대는 줄 처음 알았다”며 “지금까지 언론은 내가 아는 200%를 기사화 했다. 이게 다 신정아에 대해 취재가 안되고 있다는 증거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 인사와의 일문일답이다.

- 성곡미술관에 재직 중 신정아에 밀려났다는 소문이 있던데.
▲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일부 언론사 기자들이 나를 위한답시고 그런 기사를 보도했다는 소린 들었지만 다 거짓말이다. 신정아는 내가 뽑은 사람이다. 한 2년 정도 같이 일했는데, 누가 보더라도 윗사람이 만족할 정도로 일을 잘 했다. 그리고 나는 원래 그림을 그리는 미술가다. 당시 독일 전시회를 비롯해 각종 개인적인 작품 활동이 많아 부득이하게 일을 그만 뒀다.

- 박문순 관장이 돈 봉투를 주며 당신에게 그만 둘 것을 강요했다고 들었다.
▲ 나도 그 소문 듣고 어이가 없었다. 듣자하니 박 관장이 나에게 돈 봉투를 건네며 신정아와 비교하면서 나에게 핀잔을 줬다고 하는데 사실무근이다. 왜 그런 소문이 나오는지 나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나는 신정아 때문에 성곡에서 쫓겨난 게 아니란 것이다.

- 신정아에 대한 박 관장의 평가는 어땠나.
▲ (신정아가) 일을 잘 했으니까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큐레이터로서 할 일 척척 다 해내는데 누가 싫어하겠나. 지금 신정아가 유치한 후원금 때문에 말이 많지만 원래 미술관에서 큐레이터가 하는 일이 그것이다. 자기 인맥으로 미술관 먹여 살리는 게 큐레이터의 능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문제가 된다면 이런 미술계의 현실이 문제인 것이지 신정아 한사람만 족친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남자친구가 명품 선물”

신정아씨가 성곡미술관 재직 당시 전시회 관련 일 때문에 함께 작업한 적 있다는 작가 A씨는 신씨에 대해 ‘유능하고 차가운 느낌’이라고 전했다.

A씨는 “신씨는 말도 딱 부러지게 잘하고 항상 자신만만했다”며 “말 수가 많지 않아 먼저 신씨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신씨의 시계나 구두, 가방 등이 모두 명품이라 그에게 돈을 많이 버시냐고 물어보니 남자친구들이 선물해 준 것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며 “남자친구가 부자시냐고 다시 물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A씨는 이어 “신씨에 대한 주변인들의 평가는 대체로 좋은 편이다. 성곡미술관에 취업하기 전부터 학력위조에 관한 소문이 돌긴 했지만 성곡에서 일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건 몰라도 능력은 좋다’는 평가 때문이었다”며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뒷배경이 좋아도 성곡에서 오래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큐레이터 생활 비참하다

“큐레이터는 우리나라 미술계의 최고 엘리트이면서도 최악의 대우를 받은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나라에서 이름이 알려진 미술관의 큐레이터가 되려면 적어도 석사이상 학력은 돼야 하고 출신학교도 대부분 명문대 출신자들이 많다. 그런 이들이 한달에 받는 월급은 백만원이 채 안된다. 미술계에선 엘리트들에 대한 대우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월간 퍼블릭아트의 홍경한 편집장은 이렇게 말하며 우리나라 미술계의 실태를 개탄했다.

그는 큐레이터에 대해 “큐레이터 지망생들을 대부분 그들의 외향적인 부분만 보고 환상을 품는다. 하지만 현실을 알면 곧 꿈을 접는다”며 “큐레이터는 말이 좋아 미술전시기획전문가지 실상을 들여다보면 미술관 하인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대형 미술관에서 능력발휘하며 떵떵거리는 큐레이터도 있지만 그건 정말 대한민국 1%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잔심부름과 청소 등에 시달리면서 30~40만원 받고 생활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사정이 이렇다보니 삶에 쪼들린 큐레이터들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1% 안에 들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청탁과 뇌물이 오가는 비리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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