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혜씨! 나와 결혼해주오” vs “정신이상자의 쇼”

허씨가 박 전 대표와 가까운 사이라며 홈페이지에 올린 사진들.

대선이 끝나고 해가 바뀌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기호 8번’ 허경영의 인기는 여전히 뜨겁다. 시사와 예능을 가리지 않고 공중파 방송 섭외순위 으뜸을 달리며 ‘인터넷대통령’에 취임(?)한 허경영(58) 경제공화당 총재. 그의 지지자를 자처하는 누리꾼들은 특히 허 총재의 ‘남다른

로맨스’에 열광한다.
허 총재는 선거유세 내내 대통령이 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청와대에서 결혼식을 올리겠다는 야심찬 ‘공약’까지 내세웠다. 하지만 박 전 대표 쪽은 지난해 11월 허경영 총재를 명예훼손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상태다. 세기의 로맨스가 ‘사건’으로 비화한 내막을 입체 추적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 살아계실 때 박근혜 전 대표와 저하고 혼담이 있었습니다.”

지난 12월 13일 평화방송 시사프로그램 <열린 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한 허 총재는 거침없는 입담을 발휘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박 전 대표와 자신이 “서로 좋게 보고 있는 사이” “2001년 워싱턴 방문을 함께 했으며” “(박 전 대표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발언으로 눈길을 모았다. 허 총재가 소속된 경제공화당 및 박 전 대표 개인홈페이지엔 “두 분의 아름다운 사랑이 꼭 결실을 이루길 바란다”는 지지자들의 글이 빗발쳤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허 총재 발언이 방송을 탄 그날, 박 전 대표 쪽은 바로 보도자료를 내고 정면으로 맞섰다. 허경영씨를 한 달 전 허위사실 유포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고 밝힌 것.


“박근혜와 결혼은 박 전 대통령의 유언”

‘황혼의 로맨스’를 꿈꾸는 허 총재의 주장은 한결 같다. 1970년부터 9년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밀정책보좌관을 지내며 박 전 대표와 두터운 친분을 쌓아 자연히 혼담이 오갔다는 것. 허 총재 보좌관인 김종호 씨는 한 인터넷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이 두 분의 결혼을 승낙하셨다. 하지만 육영수 여사와 박 전 대통령이 별세하시고, 박 전 대표가 프랑스유학을 떠나면서 혼사가 미뤄졌다”고 말했다.

허 총재 역시 지난 대선기간 두 사람의 결혼설을 부각시키며 적잖은 홍보효과를 누렸다. 그는 “박 전 대표와 나의 결혼설은 이번 대선의 최대이슈가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인바 있다.


“새빨간 거짓말. 정신병자 같다”

반면 박 전 대표 쪽은 “대꾸하는 것 자체가 품격 문제”라며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 12월 13일 내놓은 보도자료에 따르면 “허경영씨가 박근혜 전 대표와 관련한 내용을 언급하고 제시한 모두가 터무니없고 허무맹랑한 거짓말”이라는 것. 허 총재가 “그분은 항상 말이 없는 분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결혼이야기에 크게 반발한 적 없다.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성사될 것”이라고 말한 것과는 정반대 결과다.

박 전 대표 측근인 김재원 한나라당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지난 11월 초 보좌관을 소송대리인으로 세워 서울남부지검에 허씨를 초상권침해 및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허씨 주장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 이런 내용이 자꾸 퍼지는 것 자체가 우습고 부끄럽다”고 잘라 말했다.


2002년엔 “결혼? 사실 아니야”

두 사람의 결혼설은 수년 전부터 이어져왔다. 다만 시기에 따라 수위가 조금씩 달라졌을 뿐이다. 2002년 모 인터넷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의원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허 총재는 “언론에서 말을 만든다. 박 의원의 정책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내가 필요한 거다. 박 대통령의 혈육이므로 예의차원에서 가까이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2003년엔 경제공화당(당시 민주공화당) 홈페이지를 통해 “행사나 여러 곳에서 자주 만나 가깝게 지내는 사이다. 결혼설이 돌기도 하지만 사실은 아니다”라며 남매처럼 의견을 주고받는 사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17대 대선을 앞두고 허 총재 태도는 저돌적으로 바뀌었다. 경제공화당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고운 한복을 입은 허 총재와 박 전 대표의 캐리커처를 띄우고 (지금은 허 총재의 캐릭터만 남아 있음) 언론을 통한 여론몰이에 나선 것. 박 전 대표 쪽이 고소장 접수사실을 밝히자 홈페이지운영자는 “이번 사건으로 허경영 총재 인지도가 더 높아질 것”이란 공지를 올리기도 했다. 전형적인 ‘노이즈 마케팅’이다.


“몰래 접근해 사진 찍고 애인행세”

김재원 의원 주장은 더 노골적이다. 김 의원에 따르면 “허씨가 박 전 대표 주변에 몰래 접근해 찍은 사진을 경제공화당 홈페이지에 올리고 광고를 했다. 지난 10월 26일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추도식에도 나타나 경호원으로부터 쫓겨난 적도 있다”는 것. 그는 덧붙여 “(허경영 씨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경제공화당 쪽은 이에 대해 명확한 변을 하지 않았다.

고소장 접수와 관련해 묻자 전화를 받은 총무국장은 “담당자가 회의 중이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며 사실확인을 거부했다.

한편 이번 대선에서 10만여 표를 얻은 허 총재는 “인터넷 인기투표 1위를 달렸는데 예상보다 1천만표 이상 적게 나왔다. 부정선거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오는 4월 총선에서 서울 은평을 후보로 출마할 그가 ‘여의도 정치’의 새 주인공이 될지 관심이 쏠린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