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 공격으로 개헌론 불 지피다

김무성대표 취임 100일 잔칫날 재뿌려 ‘확전’
비박계 연말연초 개각설 흘리며 정권 압박

[일요서울 | 홍준철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 블랙홀’ 발언으로 부메랑을 맞고 있다.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의원까지 가세해 공격하고 있다. ‘개헌은 블랙홀과 같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이 오히려 자충수가 된 형국이다. 하일라이트는 한 배를 타고 있는 집권 여당 당 대표로부터 나온 개헌 발언이다.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논의가 봇물을 이룰 것’이라는 발언에 청와대는 발끈했다. 김무성 당 대표가 ‘실언이다’며 바로 사과했지만 청와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취임 100일에 맞춰 ‘실언이 아닌 작심 발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오히려 청와대가 개헌 논의에 기름을 붓고 있는 격이다. 박 대통령의 ‘개헌 블랙홀’ 발언으로 ‘불통’이미지가 더 강해졌고 ‘제왕적 대통령’에 ‘원칙과 약속을 지키는 이미지’마저 훼손되는 등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개헌 블랙홀 발언이 박근혜 정권을 블랙홀로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

“어머니가 30년 된 세탁기 바꾸자는데...”
집권 여당 당 대표와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 공방’을 두고 부부로 가정해 예를 든 국회 관계자가 던진 말이다. 집권 여당 당 대표가 국정 운영의 어머니격이라면 청와대 대통령은 아버지격으로 비유해 어머니가 ‘불편하다’며 30년 된 세탁기를 바꾸자는 데 아버지인 대통령은 ‘안된다’고 하면서 부부 싸움하는 모양새가 대통령의 잘못이 더 크다는 평이다.

이미 박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 당선(결혼)되기 전부터 ‘4년 중임제’(세탁기 사주겠다)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평소 원칙과 약속을 소중히 하는 대통령의 이미지에 국민 과반수 이상은 신뢰를 보내며 대통령에 당선시켜줬다.

대통령 개헌 발언 ‘부메랑’

하지만 박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개헌 반대’ 입장을 내놓더니 급기야 지난 10월6일 국회에서 개헌논의가 활발해지자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 “개헌이라는 것이 워낙 큰 이슈이기 때문에 이게 한번 시작이 되면 블랙홀 같이 모두 빠져들어 이것저것 성과를 내지 못하게 된다”고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집권 3년차를 준비해야 하는 대통령으로선 개헌논의가 조기 레임덕을 부추키고 향후 추진할 국정과제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감이 깔려 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개헌 블랙홀’ 발언은 역으로 정치권의 반발과 함께 국정 지지도마저 떨어지게 만드는 자충수로 변하고 있다.

당장 야당으로부터 ‘삼권 분립 훼손’이니, ‘독재적 발상’이라며 융단 폭격을 받았다. 근거는 국회가 개헌을 추진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법적 근거에 바탕을 둔 사안이기 때문이다. 헌법 128조에 따르면 헌법 개정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돼 최종적으로 국민투표에 붙이게 돼 있다. 최근 개헌 찬반 여론조사에는 국회의원 231명(CBS 전수조사)과 국민들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고 있다. 이를 잘 아는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4년 중임제 개헌’을 대통령 공약으로 내세운 배경이다.

압권은 야당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집권 여당 김무성 대표까지 나서 개헌론에 불을 댕겼다는 점이다. 김 대표는 16일 중국 사절단으로 상하이를 방문한 자리에서 “개헌 논의는 정기국회가 끝나면 봇물 터지듯 나올 것이고 봇물을 막을 길이 없다”며 박 대통령의 개헌 블랙홀 발언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한마디로 아버지가 집 떠난 사이 어머니마저 밖에 나가 ‘더 이상 30년 된(정확히 27년) 세탁기로는 불편해서 살 수 없다’며 이웃들에게 불평불만을 토로한 셈이다. 이에 대해 국회 관계자는 “김 대표가 ‘집안 일을 집 밖에서 얘기하느냐’는 핀잔을 받을 순 있지만 주민 대다수가 ‘드럼 세탁기’를 사용하고 있는데 혼자만 구형 세탁기를 돌리는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어쩌면 어머니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평했다.

비박계 아버지 대신 자식들 ‘공격’ 급선회

문제는 해외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남아 있던 자식들(김기춘 비서실장, 조윤선 정무수석 등)의 말을 듣고 바로 어머니를 공격해 두 번째 무리수를 뒀다. 21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 고위관계자(윤두현 홍보수석)를 통해 “김무성 대표가 '제 불찰이었다'고 말했는데, 당 대표 되시는 분이 실수로 한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을 안 한다”며 “기자들이 노트북 가져다 놓은 상황에서 개헌 관련 언급을 한 것은 기사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으로 생각하는 게 정상 아니냐”고 정면 반박했다.

이를 두고 국회 관계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움을 하면 말려야 하는 자식들이 오히려 나서서 싸움을 부추킨 꼴”이라며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의 대응 역시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날은 김 대표가 당 대표로 취임한 지 100일이 되는 날로 사실상 아버지가 ‘어머니 생일날 잔칫상을 엎은 격’”이라며 “집안 꼴이 얼마나 엉망인지를 만천하에 드러냈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로 인해 김 대표는 ‘더 이상 개헌얘기는 하지 않겠다’고 다시 한 번 한껏 꼬리를 내려야만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은 ‘제왕적 아버지’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고 김 대표는 바로 사과까지 했음에도 ‘구박받는 어머니’로 역으로 동정을 받는 상황이 연출됐다. 하지만 김 대표를 비롯한 비박계의 보이지 않는 공격은 계속됐다. 그 칼날은 아버지격인 박 대통령이 아닌 측근 그룹인 자식들을 향했다.

개헌 공방이 한창인 동안에 박 대통령의 큰 아들격인 ‘김기춘 사퇴론’이 SNS를 타고 구체적으로 여의도를 휩쓸었다. 그 내용을 보면 ‘김 실장이 자신의 퇴임을 청와대 수석들에게 16일과 17일 밝혔다’, ‘전립선이 안 좋아 치료를 받을 계획이다’는 등 SNS를 통해 ‘카더라식 소문’이 돌았다. 또한 후임으로 홍사덕 전 의원을 비롯해 안병훈 전 조선일보 편집인, 김병호 언론재단 이사장이 물망에 올랐다고 그럴듯하게 정치권에 퍼졌다. 특히 안 전 편집인의 경우 검증이 다 끝난 상황이라고 전했다.

개헌공방 후유증 김기춘 사퇴론 또 나와

이뿐만 아니라 세월호 정국에서 책임지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대안부재로 남은 정홍원 총리 역시 연말연초 개각에서 물러나고 이완구 원내대표가 후임 총리로 갈 것이라는 소문까지 더해져 개각설이 그럴듯하게 나돌았다. 또한 이주영 해수부 장관 역시 개각 대상으로 김영석 해수부 차관과 유기준 친박계 의원이 그 뒤를 이를 것이라며 실명까지 더해져 신빙성을 높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김무성 개헌 발언’에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자리에서 “구체적인 것이 진실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소문의) 내용을 보면 비서실장 업무 스타일과도 맞지 않는 이야기들”이라고 반박했다. 청와대를 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 아니냐’며 불쾌한 모습을 보였다. 개헌론 공방이 인사 공방으로 급기야 연말연초 개각설로 이어지면서 청와대를 부담스럽게 만들고 있는 형국이다.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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