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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기관 ‘비공개’ ‘보안’이라며 자료 제출 거부도

[일요서울 | 홍준철 기자] 20일간의 국정감사가 끝났다. 입법기관인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정 감사지만 역대 국감중 이번만큼 ‘무용론’이 자주 지적된 적이 없었다. 외형상 ‘세월호법 처리’를 두고 여야간 정쟁이 길어진 점이 한몫했고 국감 중간에 여당 대표의 ‘개헌발언’과 ‘판교 환풍구 참사’ 그리고 일부 의원들의 비상식적인 돌발 행위가 ‘국감 무용론’을 자초한 성격도 있다. 또한 늘어난 피감기관에 비해 국감 일정이 20일에 불과한 물리적 한계 역시 ‘국감 무용론’을 부채질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예전에 비해 교묘해진 피감기관과 기업들의 대국회 전략이 한몫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 혈세를 받아쓰는 정부와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대기업들의 ‘갑’(甲)인 국회에 대한 ‘을’(乙)의 반란이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감 무용론’이 나오는 이유는 일면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자초한 성격도 있다. 지난 7일 국감이 시작된 초기부터 상임위별 피감기관에 대한 국정감사가 증인채택 논란과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의 ‘비키니 사진 검색’논란이 그 시작을 알렸다. 이후 새정치연합 보건복지위 홍종학 의원의 피감기관장에게 “한글도 모르세요”부터 같은당 국회 보건복지위소속 김용익 의원의 “규정있어” 발언까지 언론에 알려지면서 ‘호통국감’, ‘막말국감’이라는 지적이 일기 시작했다.

‘국감무용론’ 화룡점정 김성주 총재 불참

국감 시작전부터 늘어난 국정감사 대상기관(630개->647개)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준비에다 고작 20일간의 국정감사는 ‘부실국감’라는 뜨거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여기에 국회 정무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해외 국감 첫 일정으로 뮤지컬 관람 사실이 알려지면서 ‘외유국감’이라는 지적마저 일었다. 여기에 새누리당 국방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필담(서면으로 대화)을 통해 상대방 동료 국회의원을 두고 “재는 뭐든지 삐딱해!”, “이상하게 XX애들은 다 그래요!” 등 모욕적인 언사가 알려지면서 해당 상임위 국감일정이 중단돼 ‘정쟁 국감’이라는 비판마저 들어야 했다.

여기에 국정감사 특성상 ‘야당의 놀이터’라 불리고 집권 여당은 정부기관에 대해 ‘방패막이’ 역할에 치중하면서 ‘반쪽 국감’이라는 비판까지 가세해 ‘국감 무용론’은 정치 불신과 맞물려 더 탄력을 받았다. 이는 국감 중 11명의 현역 국회의원들을 이끌고 3박4일간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고 온 김무성 여당 대표의 행보를 보면 여실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급기야 민간기업의 수장도 아닌 당연히 국감 출석을 해야할 정부 기관의 장이 휴대폰도 끈 채 해외 일정을 핑계로 불참하면서 ‘국감 무용론’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주인공은 바로 김성주 대한적십자 총재로 23일 국감 출석이 예고됐지만 해외 출장을 이유로 불참했고 이에 여야 보건복지위 국회의원들은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 피감기관으로부터 수모를 겪어야 했다. 김 총재는 마지못해 23일 아닌 27일 국감에 출석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의 권위와 위상은 땅에 떨어진 후였다. 여기에 중국을 방문한 김무성 여당대표발 ‘개헌발언’과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에 따른 여파로 국정감사를 더욱더 김빠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국정감사를 한달전부터 준비해온 국회 보좌진들의 입장은 ‘국감 무용론’은 피감기관들의 ‘힘빼기 전략’이자 국정감사에 증인 채택에 부정적인 정부 인사들과 일부 문제 있는 기업 수장들의 ‘김빼기 전략’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부실국감’은 당초 지난 1월 여야 국회의원들이 ‘분리국감’ 실시를 합의해 야당의 경우 몇 달 전부터 준비해왔고 세월호 특별법 논란 역시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공방일뿐 국감을 실질적으로 준비하고 질의서를 작성하는 보좌진과는 별개라는 지적이다.

‘막’나가는 피감기관
‘물’먹는 국회의원

또한 ‘호통 국감’, ‘막말국감’은 국회의원들의 자질이 근본적인 문제지만 피감기관들이 불성실한 자료 제출과 답변 그리고 입법기관을 무시하는 태도에 대한 지적이 다수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관련 감사원의 늦장 자료 제출은 대표적인 케이스다. 여야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성토할 정도로 근 한 달 전에 요구한 자료를 감사원 국감 당일까지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세월호 참사관련 국감이 파행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뿐만 아니라 피감기관들의 다수가 ‘비공개 자료’, ‘보안 자료’라며 자료 제출을 아예 거부해 국감이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 국감’으로 전락하게 만들기도 한다. 일부 피감기관들은 민감한 자료를 국회의원에게 건네주고 스스로 보도 자료를 작성해 국회의원이 발표하기 전 언론에 흘려 ‘김’을 빼는 등 고도의 언론플레이도 비일비재하다. 무엇보다 ‘국감 무용론’에 대표적으로 지적되는 ‘증인 채택’은 국감을 파행시키는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통상 상임위별 여야 간사가 증인 채택을 하게 되는데 공무원의 경우 정부부처의 수장은 웬만하면 참석해 질의에 응답하게 된다. 하지만 집권 여당 핵심인사로 지목되는 인사들의 경우에는 해외로 도피하거나 거부를 하면서 국감을 파행시키는 주요 원인이 된다. 야당의 경우 ‘세월호 참사 관련 대통령 행적 7시간 미스터리’를 파헤치기 위해 김기춘 비서실장과 ‘최노믹스’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증인 채택 논란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럴 경우 박근혜 정권과 일부 여당 국회의원들이 한통속이 돼 증인 채택을 막으면서 ‘국감 무용론’의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박근혜 정권의 핵심 인사가 증인채택이 될 경우 청와대와 일부 친박 주류 국회의원들의 팀워크를 통해 무산시킨다면 대기업의 경우에는 기업과 일부 여당 국회의원들, 언론이 삼위일체돼 증인 채택이 되지 않도록 협력(?)을 한다. 삼성의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 포스코 정준양, 권오준 전현직 회장의 경우 국감 증인채택이 여당 의원들의 반발로 무산된 케이스다.

결국 국정감사으로 인해 파헤칠 수 있었던 제2롯데월드 건설에 따른 싱크홀 문제나 삼성전자서비스의 다단계 하도급 인력운용에 대한 의혹 및 삼성물산의 하도급 문제, 현대 정 회장의 경우 저탄소차협력금제도 시행 연기 및 사내하청노동자들에 대한 법원 판결에도 직접고용을 꺼리고 있는 것과 관련해 질의와 답변이 이뤄지지 못했다. 포스코의 경우 페놀 유출사고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금력을 가진 대기업 총수들의 경우 친재벌 언론사와 공조해 ‘정치가 기업인의 경영활동을 저해한다’는 식으로 증인채택에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한다.

뒤바뀐 갑과을 국감
진정한 수퍼갑은

사실상 국회의원이 국감기관 중 ‘수퍼갑’이고 정부부처와 기업이 ‘을’로 알려져 있지만 내용을 보면 피감기관인 정부부처와 대기업이 친재벌, 일부 친정권 인사들을 통해 국감을 무력화시키고 국회를 갖고 노는 경우도 적잖은 형편이다. 야당 한 보좌관은 “정치권 불신에 편승한 국감 무용론의 실체를 잘 볼 필요가 있다”며 “한쪽은 국민 혈세를 쓰고 있다는 점에서 입법기관의 견제와 감시가 필요하고 한쪽은 금력을 가진 대한민국 사회의 ‘갑’으로 소수자에 대한 횡포와 담합 등 위법 여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오히려 상시 국감 체제등 국감 내실화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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