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속담에 ‘나이들수록 더 현명해진다’는 대목이 있다. 또 라틴어에는 ‘노인은 지혜’라는 말도 있다. 나이들수록 더 현명해져서 그런지 95세 방송 칼럼니스트가 있었는가 하면, 103세인데도 현역 판사로 활동한 판사도 있었다.

2011년 미국의 최고령 현역 연방법원 판사는 103세의 웨슬리 브라운 씨였다. 미 연방판사는 종신직이다. 브라운 판사는 8개월 전 부터는 근무시간을 하루 6시간으로 줄였으나 여타 업무는 여느 판사와 같다고 했다. 2009년 타계한 미국의 전설적 방송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는 CBS의 ‘이브닝 뉴스’에서 65세에 은퇴했으나 2007년 91세에 다시 복귀했다.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주택과 건강 정보 등을 제공하는 케이블 방송 ‘은퇴 생활 TV’에 주 1회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헬렌 토머스는 1943년 미국 UPI통신에 입사, 백악관 최장기간 출입기자로 유명하다. 그녀는 90세 까지 50년 동안 백악관 출입기자로 취재하던 중 2010년 6월 퇴임했다. 영국의 지휘자 네빌 마리너는 1984년 영화 ‘아마데우스’의 음악 감독을 맡아 전 세계에 모차르트 열풍을 일으켰다. 마리너는 작년 90세인데도 하루 6시간 오케스트라 음반 녹음을 이끌며 “1년에 40회 정도만 지휘하면 딱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연부역강의 현역이다.

미국의 잭 맥키언 야구 감독은 2005년 플로리다 말린스 사령탑에서 물러난 지 6년 만에 81세로 다시 이 팀의 임시 감독으로 복귀했다. LA에인절스와의 대전에서 5대2로 승리했다. 그의 승리는 ‘노인은 지혜’임을 입증했다.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으로 귀화한 방송 칼럼니스트 앨리스테어 쿠크는 2004년 95세 까지 매주 1회씩 58년 동안 영국 BBC 라디오에 ‘미국의 편지’ 제하의 칼럼을 인기리에 내보냈다. 심장병이 악화되지 않았으면 더 했을 것으로 보인다.

103세의 브라운 판사로부터 95세 BBC 방송 칼럼니스트에 이르기까지 노인들의 현역 활동은 나이가 숫자에 불과함을 입증한다. 사람에 따라 50대가 80대처럼 정신·육체적으로 쇠잔할 수 있고 80대라도 50대보다 왕성할 수 있다. 그러나 설훈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8일 국정감사에서 1936년생(78세)인 윤종승(예명:자니 윤)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에게 79세니 사퇴하라고 다그쳤다. 그는 “연세가 많으면 활동과 판단력이 떨어져 공무에 적합하지 않다”며 “79세면 쉬셔야지 왜 일을 하려고 하나. 쉬는 게 상식”이라고 망언했다.

쉬어야 할 사람은 78세의 윤종승이 아니라 62세의 설훈이다. 새누리당 측에서는 즉각 설 위원장의 사과와 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했다. “어르신들을 욕보이는 패륜적 발언이자 모독”이라고 질책했다. 모독으로 그치지 않고 어르신 학대였다.

설 위원장은 100세 시대에 95-103세에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사례가 적지않은데도 전혀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만약 모르고 있었다면 무지의 소치이고 국회의원 자격이 없다. 반대로 알고 있었다면 노인들을 의도적으로 모독하고 학대한 망언으로 위원장직을 떠나야 한다. 그는 김대중 씨의 비서를 지냈다. 그는 김 대통령이 실제연령 81세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했었는데 그때 “79세면 쉬셔야지 왜 대통령을 하려고 하나 쉬는 게 상식”이라고 항의하지 않았느냐고 묻고 싶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간음”이란 천박한 이중성을 드러냈다.

2004년 3월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총선에서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며 “그분들은...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 의원도 지금 61세이다. 하지만 자신도 “60대“인데 “퇴장”하지 않고 국회의원을 하고 있다. 설 위원도 60대인데 정동영 “퇴장”주장대로라면 퇴장했어야 옳다. 그런 사람들이 대통령 후보였고 상임위 위원장을 맡았으니 정치가 4류로 쳐질 수밖에 없다. 그들이야말로 먼저 “무대에서 퇴장”해야 할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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