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다루기 본격 시동[靑, 출입기자단 왜 뿔났나]

집권 중반기 접어들며 국회 협조, 소통 강화 포석
김기춘 실장·조윤선 배석시켜 여야 지도부와 회동도

 

▲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28일 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청와대 참모들과 함께 국회 운영위에 출석해 국정감사를 받은 직후였다. 김 실장은 “존경하는 김 대표님, 이 어려운 일을 어떻게 하셨냐. 너무 고생하셨다. 대통령께 보고 드렸더니 정말 좋아하셨다”고 했다.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본회의 시정연설에 앞서 국회의장실에서 정의화 의장, 여야 지도부와 티타임을 가졌다. 환담을 나눈 뒤 본회의장으로 이동하면서 박 대통령은 김 대표의 손을 잡고 “정말 고맙다. 의원 158명의 서명을 받느라 정말 고생하셨다”고 수차례 말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감사를 표시한 건 김 대표가 공무원연금 개혁 법안에 소속 의원 158명 전원의 서명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박 대통령이 “올해 연말까지 마무리하겠다”며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핵심 국정과제다. 김 대표는 한 때 공무원연금 개혁의 시기 문제를 놓고 청와대와 마찰을 빚었으나 박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하자 박심(朴心)과 ‘코드’를 맞춰나가고 있다.

“서명 받느라 고생하셨다”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마친 뒤 다시 여야 지도부와 마주 앉았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쓴소리’를 많이 했지만 박 대통령은 미소를 머금은 채 경청했다. ‘경제블랙홀’이라며 논의 자제를 당부했던 개헌 문제를 문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제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박 대통령은 29일 회동을 포함해 올해 들어서만 5차례 정치권 인사들과 만났다. 지난해 3차례보다 늘었다. 물론 이 횟수는 공식 확인된 자리만이다. 대통령이 비공식적으로 정치인들을 만나는 경우도 많다. 비공식 면담도 올해 부쩍 늘었다는 전언이다.

박 대통령은 또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시정연설을 2년 연속 직접 했다. 과거 대통령들은 5년 임기 동안 첫 해에만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 섰고 나머지는 국무총리가 대독했다. 박 대통령이 집권 중반기에 접어들면서 ‘여의도 관리’에 적극 나서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특히 이완구 원내대표 등 여당 원내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러 세월호 참사 후속 대책을 논의한 지난 6월25일 이후 정치권과의 스킨십을 부쩍 늘려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어려워진 국정운영을 원만하게 이끌기 위해선 여의도의 협조가 절실한 까닭이다.

아울러 공무원연금 개혁, 경제활성화 관련법안 같은 현안을 처리하려면 국회와의 교감이 필수적이다. 임기 전반을 인사파동과 세월호 참사로 까먹었던 박 대통령으로선 임기 중반에라도 처음 준비했던 국정구상을 하나씩 현실화시켜야 한다는 절박감도 갖고 있다.

정치권과의 스킨십 늘리기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경제 활성화와 공공부문 개혁 등에 대한 초당적 협력을 정치권에 요청하지 않았느냐”며 “앞으로도 대통령의 ‘친(親)여의도’ 행보가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 후 가진 여야 지도부와의 회동에 김기춘 비서실장과 조윤선 정무수석을 배석시켰다. 청와대는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의 배석은 국회 존중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두 사람이 여의도를 적극 챙기라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김 실장은 본인이 3선 국회의원이지만 지난해 8월 취임 이후 줄곧 여의도 정치권과 거리를 뒀다. 간혹 정치인 시절 친하게 지냈던 국회의원들과 만나기는 했지만 친교 모임 성격이었지 진지하게 국정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는 아니었다고 한다.

지난해 철도파업 사태 때 김무성 의원(현 대표)이 야당과의 물밑 접촉을 통해 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김 실장에게 10차례 넘게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당시 김 대표는 “청와대 비서실장이 여당 중진의원의 전화를 묵살할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런 ‘불통’ 이미지의 김 실장이 28일 밤 김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노고를 위로한 일 자체가 청와대가 친여의도 행보에 나섰음을 보여 준다.

박 대통령이 지난 6월 당시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을 한 계급 낮은 차관급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발탁한 일도 여의도 관리를 위한 포석이었다. 정가에 발이 넓은 조 수석은 첫 여성 정무수석으로 취임 후 전임 박준우 정무수석(외교관 출신)에 비해 활동 폭이 넓어졌다.

조 수석은 지난 6월 16일 신임 인사차 국회를 방문한 자리서 “여야 간 소통 뿐 아니라 국회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훌륭한 가교 역할을 하는 데 성심껏 노력하겠다. 국회와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국회와 정부의 가교 역할을 성실히 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김 실장이나 조 수석의 여의도 스킨십이 아직은 여당인 새누리당 사람들에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김 실장이 비공식적으로라도 야당 지도부, 혹은 의원들을 만나거나 통화를 했다는 뒷얘기가 들리지 않는다. 조 수석은 10월 28일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으로부터 ‘불통’ 행보를 비판받기도 했다.

野 지도부 안 만나는 조윤선

새정치민주연합 이개호 의원은 국감자료를 통해 “지난 8월 특별법 제정을 위해 세월호 유가족이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을 요구하며 연일 농성을 하고 야당 의원들도 릴레이 단식을 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조윤선 수석은 단 한 차례도 현장을 방문하거나 야당 지도부를 만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조 수석이 취임 후 신임 인사차 국회를 방문한 것 외에 야당 의원들을 만난 건 단 두 차례에 불과했다. 그것도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 회동(7월 10일),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해 청와대까지 도보행진을 벌인 뒤 만남(7월 24일)이었다. 결국 조 수석은 야당이 청와대까지 찾아가야 만나줬다”고 질타했다.

이처럼 청와대가 여의도 정치권 관리에 나섰지만 우선은 새누리당에 대한 영향력과 장악력 확대가 1차 목표인 것처럼 보인다. 이는 김무성 대표가 독자 세력을 형성하며 벌써부터 ‘포스트 박근혜’로 부상하고 급기야 ‘개헌봇물론’ 발언으로 박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청와대가 ‘김무성 관리’에 들어갔다고도 해석될 수 있는 셈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도발로도 비칠 수 있는 언행을 일삼는 김 대표를 회유하면서도 한편으론 압박하는 강온양면 전략을 쓰고 있다.

김기춘 실장이 김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칭송하고, 박 대통령이 직접 손을 잡고 노고를 치하한 건 회유 차원이다. 일방적으로 압박만 해선 당청 갈등으로 번지고 이 경우 박 대통령에게 오히려 부담이 되기 때문에 회유도 병행하고 있다.

반면, 견제와 압박도 있다. 당초 박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방문했을 때 김 대표와 별도의 독대를 가질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김 대표를 격려 했을 뿐 따로 만나지는 않았다. 일정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란 분석이 가능하다.

김 대표의 ‘개헌’ 발언이 나왔을 때 청와대 윤두현 홍보수석이 따끔한 일침을 가한 일도 견제 차원이었다. 당시 윤 수석은 일부러 기자실을 찾아 “당 대표 되시는 분이 실수로 언급했다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자가 노트북을 갖다놓고 받아 적는 그런 상황에서 개헌과 관련해 언급한 것은 기사화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 게 정상”이라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이 “같은 국회의원으로서 모멸감을 느낀다”고 불쾌함을 토로할 정도로 강도 높은 비판이었다. 그러나 이후 김 대표가 개헌론에 침묵하면서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도 청와대와 보폭을 맞추는 모습을 감안하면 청와대의 ‘김무성 견제’ 전략은 일단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ilyo@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