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막살인자 전락한 IQ140 수재

IQ140의 장학생이 토막살해범으로 전락한 안타까운 사연이 밝혀져 세간을 씁쓸하게 했다. 사건의 주인공은 서울 유명 사립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김모(19)군. 김군은 외삼촌을 독살, 시신을 토막 내 유기한 혐의로 구속돼 지난해 11월 법정에 섰다. 1심을 맡은 수원지방법원은 김군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갓 스무 살 청년이 평생을 죄수로 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김군의 변호사는 그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 외삼촌에게도 만만치 않은 과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군은 결국 항소해 지난달 31일 ‘징역 15년’으로 감형됐다. 판결이 나오자 김군은 재판부를 향해 허리를 깊이 숙여 감사 인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경찰서장의 사생아로 태어나 유명 사립대 장학생에서 살인범이 되기까지.

굴곡진 김군의 인생유전 속으로 들어가 보자.

1988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세상 빛을 본 김군은 축복받지 못한 아기였다. 아버지는 경찰서장까지 지낸 잘나가는 경찰관이었지만 김군은 어머니와 단둘이 살 수밖에 없었다. 지방 근무 중이던 김군 아버지와 식당 종업원인 어머니는 부부가 아닌 내연 관계기 때문이였다. 어렵사리 본부인을 설득한 김군 아버지는 아들을 호적에 넣어줬다.


아르바이트 하며 독학

하지만 김군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비틀린 부자관계는 김군이 가끔씩 아버지를 찾아가 용돈을 타는 것이 전부였던 것. 그나마 김군이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면서 허울뿐인 만남도 사라졌다.

김군은 혼자 생계를 꾸리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학교를 그만뒀다. 또래보다 유난히 머리가 좋았던 그의 지능지수(IQ)는 140을 훌쩍 넘겼지만 가난한 살림에 공부는 사치였다.

그럼에도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은 김군의 공부 욕심은 남달랐다.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수능시험을 치렀다.

재작년 말, 마침내 원하던 의대 합격통지를 받았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입학금과 학비가 또 다시 발목을 잡았다. 의사가 돼 어머니를 편히 모시고 싶다는 꿈을 접고 서울 유명 사립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김군은 대학에 입학했지만 낭만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그는 곧 특기이자 전공인 컴퓨터 관련 지식을 이용해 돈벌이에 나섰다. 1년 동안 쉬지 않고 일해 2천5백만원의 거금을 손에 쥔 김군. 하지만 불운은 또 한번 김군 모자(母子)를 덮쳤다.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이 불탄 건 지난해 4월. 하루아침에 갈 곳이 없어진 김군 모자는 경기도 광명시에 사는 외삼촌(46)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됐다. 그리고 두 모자의 모진 시련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일정한 직업도 없이 빚쟁이에게 시달리는 외삼촌을 보다 못한 김군은 가진 돈을 모두 털었다. 외삼촌이 전세금을 담보로 빌린 2천만원 빚을 갚아주고 5백만원을 생활비조로 건넨 것. 그러나 외삼촌은 조카의 배려에 전혀 고마움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어린놈이 돈을 잘 번다”며 비꼬는 것은 물론 술에 취하면 습관적으로 때렸다. “불륜을 저지른 여자와 불륜으로 태어난 씨는 인간도 아니다”며 김군 모자를 싸잡아 모욕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이런 생활이 4개월간 이어졌다. 결국 참다못해 끔찍한 결심을 하게 됐다. 김군은 인터넷을 통해 청산가리를 구했다.

계획을 실행에 옮긴 것은 지난해 8월 3일. 외삼촌이 마시다 남긴 소주병에 청산가리를 탄 뒤 냉장고에 다시 넣었다. 이날 저녁 외출에서 돌아온 외삼촌은 청산가리가 든 소주를 마셨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약해진 김군은 외삼촌이 소주잔을 떨어트리며 괴로워하자 황급히 119에 전화를 걸기도 했다.

그러나 곧 마음을 바꿔 수화기에서 손을 뗐다. 외삼촌은 그대로 숨을 거뒀고 김군은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머리를 짜냈다.

일단 시신이 나와도 신원확인을 어렵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김군은 외삼촌의 시신을 절단,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이를 화성시 동탄면 공터로 옮긴 후 불을 질러 시신을 태우고 나머지를 인천 소래포구에 던져 유기했다.

자신과 어머니를 괴롭히던 외삼촌은 사라졌지만 살인을 저지른 청년은 행복해지지 않았다. 더 큰 죄책감에 시달리다 어머니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자책감에 김군은 결국 경찰에 자수, 지난해 11월 첫 재판대에 올랐다.

지난해 11월 1심을 담당한 수원지법 제2형사부는 살인, 사체손괴 등의 혐의로 김군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외삼촌이 자신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다는 이유로 독살하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사체를 무참히 훼손·유기하는 반인륜적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계획적으로 치밀하게 살인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긴 만큼 김군을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켜야 한다는 것.

하지만 김군의 변호사는 “김군이 아직 소년이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 이를 참작할 때 무기징역은 너무 무거운 벌”이라며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다. 그가 처한 딱한 상황과 그동안의 모범적인 생활을 토대로 다시 사회로 돌아올 기회를 달라 호소한 것이다.


119신고 하려다 포기

서울고법 제3형사부(재판장 심상철 부장판사)는 김군 측의 입장을 받아들여 무기징역에서 15년 징역형으로 형량을 크게 줄였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사생아로 태어나 홀어머니와 어렵게 컸고 주변의 멸시를 버티며 힘들게 살아왔다. 특히 외삼촌에게 큰돈을 빌려줬음에도 상습적 폭언과 구타에 시달려 일을 저지른 만큼 범행 동기에 주목해야 한다”며 김군을 감싸 안았다.

재판부는 또 “자수해 죄를 반성하는 점, 피해자의 친족이 선처를 부탁하는 점, 피고가 어린나이로 교화를 통해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큰 점을 참작해 무기징역은 너무 무겁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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