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수천만 원씩 줬다”

김씨가 기록한 뒤 폐기한 상납장부(큰 사진)와 업소지출 내역을 기록한 장부(작은 사진 좌측) 지출내역엔 상납 비용으로 추측되는 기록이 섞여있다.

기강 풀린 경찰에 대한 국민적 질타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엔 강남지역 일부 경찰관들이 유흥업소 업주들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아 온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가 단독으로 입수한 업주의 상납 리스트에 따르면 문제의 경찰관들은 강남, 서초 지역에 근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리스트는 강남에 위치한 모 유흥업소의 업주가 메모형식으로 작성한 것으로 경찰관이 근무하는 경찰서와 뇌물로 전달한 돈의 액수가 적혀있다.

유흥업소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렇게 뇌물을 상납하는 행위를 속칭 ‘관처리’라고 부른다. 이 메모는 관처리 내역을 간단하게 정리한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유흥문화의 중심인 강남에서 업주와 경찰의 검은 커넥션이 드러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경찰이 안마시술소에 거액을 투자한 사실이 밝혀지는가 하면, 업주를 상대로 사채놀이를 하는 등 여러 번 문제를 일으킨 바 있다. 하지만 확인결과 그 실태는 아직까지 여전한 것으로 밝혀져 경찰에 대한 불신을 더 하고 있다.

입수한 메모를 살펴보면 업주는 한 번에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의 돈을 경찰관에게 건넨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 돈은 어떤 명목으로 준 것일까. 또 이 업주는 어떤 업소를 운영하고 있기에 이렇게 많은 돈을 뇌물로 써야 했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메모를 작성한 업주를 직접 찾아봤다.

메모에 드러난 특정 내용을 근거로 수소문 한 끝에 어렵게 그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강남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정현(가명·46)씨다.

김씨는 젊은 시절부터 유흥업계에 투신, 녹록치 않은 경력을 자랑하는 인물로 유흥업계에선 이름이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에게 메모를 보여주자 그는 자신이 작성한 것이 아니라고 완강히 부인했다. 하지만 메모에 드러난 내용에 대해 질문을 계속하자 비로소 자신이 작성한 것이라고 털어 놓았다.


‘관처리 리스트’ 은밀히 나돌아

김씨에 따르면 관처리는 업소를 개업하게 되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종의 안전장치라는 것이다. 합법적인 유흥업소는 관처리 비용이 많이 들지 않지만 안마, 대딸방, 오락실 등과 같은 불법 업소는 그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불법 업소의 경우 영업을 하려면 관처리가 필수다. 불법안마시술소나 오락실 같은 업소가 개업한 다음날 바로 단속을 맞으면 개업비용으로 들어간 수억 원을 한 번에 날리게 된다”며 “이 때문에 단속기관인 구청과 경찰서에 관처리를 하는 것이다. 비용은 업종마다 틀리다. 2차 가능 룸살롱처럼 합법을 가장한 불법업소는 좀 덜 들고 대딸방 같은 완전 불법업소는 (비용이) 좀 많이 든다”고 말했다.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대부분의 업소가 관처리를 한다는 게 유흥업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전언이다. 노래방, 식당, 당구장, 카페 등도 포함된다.

관처리 대상은 구청, 관할 경찰서와 지구대, 소방서, 세무서 등이다. 심지어 주변 주택가의 주민대표도 관처리 대상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이 많은 관처리 대상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얻고 또 그들을 어떻게 관리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김씨는 “그런 정보는 업계 전문가들이 줄줄이 꿰고 있다”며 “그들 사이에선 은밀히 통용되는 (관처리)대상자 리스트가 있다”고 말했다.

김씨가 말한 업계 전문가들이란 관처리를 전문으로 하는 이른바 ‘로비스트’를 말한다. 대부분의 유흥업소는 이런 로비스트를 끼고 있다. 이들이 업소의 관처리를 모두 알아서 처리하고 있다.

또 그들 사이에 오가는 리스트는 대외비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외부로 새나가는 일 없이 철저히 관리한다고 김씨는 전했다.

김씨는 “전문가들은 경찰서장, 세무서장, 지구대 팀장을 정기적으로 찾아가 인사를 한다. 또 새로 부임하는 사람이 있어도 찾아가 인사를 한다”며 “그들은 관의 움직임을 훤히 꿰뚫고 있는 사람들이다. 능력 좋은 사람들은 더 높은 직책의 인사들과도 라인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들 로비스트 중에는 전직 경찰, 전직 고위공무원들도 상당수다. 이들은 일처리 대가로 상당한 금액의 보수를 받는다. 경찰이나 구청의 불법 업소 단속 정보가 미리 새나가는 것도 바로 이들의 정보력 때문이다.


다양한 수법 통해 뇌물 줘

김씨는 “관처리를 해 두면 단속이 나오기 전 미리 연락이 온다. 그러면 미리 정보를 입수한 업주들은 단속에 대비해 모두 숨는다”며 “하지만 누군가의 신고로 인해 서울시경에서 불시에 직접 단속을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일반 업소는 대체로 방법이 없다. 하지만 영향력이 시경까지 닿은 전문가를 둔 업소는 살아 남는다”고 말했다.

이런 내부 비리에 대해 경찰이 두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은밀히 이뤄지는데다 부서간의 눈감아주기가 만연해 있어 현장적발 또는 구체적 근거를 제시한 고발이 있기 전 에는 효과적인 단속이 힘든 실정이다.

최근에는 업주가 앙심을 품고 상납 장부를 고의로 유출하거나 고발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자 이를 막기 위한 각종 뇌물수수 수법이 등장하고 있다.

김씨는 “상납 리스트라고 하는 장부가 외부로 유출된 사건이 몇 번 있었다. 그 바람에 해당 지역 유흥업계와 관할 경찰, 관공서가 초토화됐다”며 “이런 일 때문에 이제는 장부 등과 같은 거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또 남겨도 소용이 없도록 다양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일단 관처리는 현금전달이 원칙이다. 수표나 고가품은 오가지 않는다” 며 “또 예전에는 성상납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거의 없다. 우리가 안하는 게 아니라 경찰들이 안 한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현금 전달도 무조건 손에 쥐어 주는 게 아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지구대 경찰관들의 경우 관처리 전문가와 함께 자주 고스톱을 친다. 그렇게 해서 일부러 돈을 잃어준다. 한번에 10만원~ 30만원 정도씩 잃는다. 그렇게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고스톱을 친다”며 “이런 식으로 한 달에 200만원에서 300만 원정도 잃어준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적발돼도 지인과 소액 도박한 것으로 처리되고 징계가 가볍다”고 말했다.

그는 당사자에게 확인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지구대 경찰관의 신분을 밝혔다.

그에 따르면 강남 ○○지구대 A경관, XX지구대 B경관 등이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서너 번 정도, 한번에 100만 원~ 200여 만 원씩 돈을 챙겨갔다. 고스톱은 주로 심야시간대나 비번일 때 친다고 김씨는 말했다.

그러나 김씨의 요청에 의해 당사자들에게 직접 사실 확인은 할 수 없었다.


커넥션 규칙 깨면 업계 추방

이외에 추가로 확인해본 바에 따르면 김씨 외에도 개업 때 억대의 돈을 건넨 업소도 있었다. 강남역 부근에서 불법 영업을 하고 있는 ○○성인오락실이다. 업계 소식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 업소는 4000만 원, 3000만 원, 3000만 원 이렇게 세 차례에 걸쳐 모두 1억 원의 돈을 경찰관에게 뇌물로 줬다는 것이다.

오락실은 단기간 올릴 수 있는 수익이 많고 단속기관이 눈감아주는데 따른 위험도가 커 관처리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업소다.

소식통은 이 오락실의 관계자가 개업 직후 사복차림으로 자가용을 타고 나타난 경찰관에게 돈을 줬다고 전했다. 업소 측이 현금 4000만 원을 담은 사과상자를 경찰 자가용 트렁크에 직접 실어 줬다는 것이다. 그 과정을 들어보면 첩보영화를 연상케 한다.

오락실 주차장에 사복 경찰이 도착하면 종업원이 그의 차 열쇠를 받아 들고 업주에게 가서 보고한다. 업주는 종업원을 시켜 사과상자를 경찰의 차 트렁크에 싣는다. 20분 뒤 오락실 안을 서성이던 경찰은 종업원에게 차 열쇠를 받아 들고 사라진다.

이 과정에서 돈을 주고받았던 흔적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만약 서로간의 암묵적인 규칙을 어길 경우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돼 있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그 이유는 더 많은 윗선이 개입돼 있기 때문이다. 이 돈은 당시 오락실을 찾았던 경찰관 혼자 독식하는 게 아니라 그 윗선의 다른 누군가와 나눈다. 그게 누군지 업자는 알 길이 없다.

업자가 경찰관에게 돈을 전달한 사실을 본의든 타의든 유출해 해당 경찰관이 피해를 볼 경우 업주는 오락실 폐업은 물론이고 타 지역에서도 다시는 영업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는 경찰 내부의 뇌물 커넥션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번엔 문제의 경관들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김씨의 메모에 드러난 강남지역 ○○경찰서의 K경관에게 불특정 다수의 관할 업소로부터 돈을 받은 적 있는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당연히(?) “그런 일 없다”였다.

XX경찰서의 J경관도 마찬가지였다. J경관은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캐물으며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2007년 10월 장안동의 한 업소에서 경찰에게 뇌물을 상납한 업주의 장부가 발견돼 파장을 일으켰다. 또 이에 앞선 2002년 4월엔 경찰에 정기상납 한 '포주뇌물계'가 적발되기도 했다.

최근엔 강남지역에선 경관들이 업주들을 상대로 사채놀이를 하다 적발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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