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가 판치는 태국 관광여행

싼 가격을 내세우는 대부분의 여행상품들은 대부분 현지의 ‘상점투어’인 경우가 많다.

지난 한 해 동안 370만 여행객이 해외로 나갔다. 해외연수와 유학 등을 제외하면 해외 나들이를 떠난 이들의 행선지는 동남아·중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 집중돼있다. 싼 가격에 항공권과 호텔비·식대까지 포함된 저가 패키지여행 상품이 봇물처럼 쏟아졌기 때문이다.

각 여행사별로 동남아 여행 전문 코너를 마련, 고객 유치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국내 관광 업체가 관련된 태국 현지관광 실태에 대한 폭로가 이어져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태국 여행을 다녀온 고객들에 따르면 현지 안내를 맡는 일부 한국인 가이드의 횡포가 도를 넘어 사기 수준에 이르렀을 정도다.

각 여행사 홈페이지에도 비슷한 피해를 입은 고객들의 항의가 줄을 잇고 있지만 누구하나 속 시원한 사과나 보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없다. 여행 성수기, 기분 좋은 여행길을 망친 일부 악덕 가이드의 요지경 실태를 고발한다.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인 임모(22·여)씨는 몇 주 전 태국으로 가족 나들이를 다녀왔다. 대기업 중간 간부인 아버지를 위해 회사가 보내준 보너스 여행이었다. 가족끼리 처음 외국 여행을 한다는 기쁜 마음으로 태국 땅을 밟았다.

하지만 임씨 가족의 여행길은 추억 만들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른바 ‘가이드 쇼핑’이라는 빡빡한 쇼핑일정 때문이었다.

임씨는 “가이드가 진주크림가게와 보석상, 라텍스 매트 매장 등을 줄줄이 끌고 다니며 물건을 살 것을 권했다. 이들 가게의 주인과 점원은 대부분 한국인이었다”고 전했다.

임씨의 어머니는 가이드가 안내한 보석상에서 루비 한 쌍을 70만원에 구입했다. 딸인 임씨에게도 눈여겨보던 토파즈 보석을 사줬다. 아버지 역시 ‘태국에서만 나오는 99% 고급 천연고무’라는 판매직원의 말을 믿고 라텍스 매트 3개와 베개 4개 등 300만원어치 물건을 카드로 결제했다.


‘몰카’ 설치 고객 속이는 꼼수도

문제는 한국에 돌아온 뒤 터졌다. 평소 잘 아는 서울 남대문 보석상에 임씨 어머니가 태국에서 구입한 루비의 감정을 맡기면서였다. 감정사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가족들이 태국에서 무려 6배가 넘는 바가지를 썼다는 것.

감정사는 “한국에서 같은 제품이 3~5만원 정도에 팔린다. 아무래도 현지 보석상이 장난 친 것 아니냐”고 임씨 어머니에게 말했다. 딸에게 사준 것은 아예 가짜였다.

아버지가 사들인 라텍스 매트도 엉터리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에 돌아와 이야기를 들은 회사동료는 같은 제품을 국내에서 1/3가격에 샀다며 귀띔했다. 임씨 가족은 현지 가이드에게 완전히 농락당한 것이다.

일부 현지 가이드의 횡포는 건강식품 등을 파는 한의원 등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여름 태국관광을 다녀온 한모(42)씨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현지 한국인 가이드의 ‘사기’에 가까운 행각을 지켜본 것이다.

한씨가 전한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6박7일 태국 관광 일정 중 셋째 날 오후. ‘태국 정부로부터 인정받아 왕족들이 단골로 찾는다는’ 한의원이 당일 여행코스에 끼어 있었다. 가이드는 ‘방콕 시민들도 수일 전에 예약을 해야만 만날 수 있는 의사다’는 등의 말로 관광객들 호기심을 부추겼다.

문제는 한씨가 잠시 화장실을 찾기 위해 2층에 올라갔을 때 벌어졌다. 사무실 문이 조금 열려있고 안에서 가이드와 ‘유명 한의사’의 대화 내용이 들려온 것. 그는 사무실에 설치된 CCTV 화면을 가리키며 한의사에게 관광객들의 신상정보를 알려주고 있었다.

한씨는 “가이드가 환자의 나이와 건강이상유무, 가족력 등에 대해 미리 정보를 주는 듯했다. 나중에 함께 간 사람들에게 알아보니 첫날 가이드가 ‘건강은 어떠시냐’ ‘불편한데는 없느냐’ 등을 물어보며 다녔다”고 전했다. 한의사가 마치 안색만 보고 불편한 곳을 맞추는 능력이 있는 듯 속이고 대충 진맥 한 뒤 싸구려 약을 파는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다.

최근 방콕을 다녀온 최모(27·여)씨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회사동료들과 함께 패키지여행을 떠난 최씨는 ‘용한 한의원’에서 진맥을 받고 20만원 상당의 한약을 지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확인해보니 최씨와 동료들이 조제 받은 한약은 똑같았다. 진맥 자체가 엉터리였던 것이다.

여행업계는 <소비자-대리점여행사-대형여행사-현지로컬여행사-한국인로컬여행사-현지가이드> 등 최소 5단계 이익구조로 돼있다. 즉 이들 모든 단체(또는 개인)가 이익을 남겨야 한다. 초저가·특가 상품일수록 옵션과 세부 일정에서 더 많은 추가비용이 들어가는 이유는 여행업계의 태생적 구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쇼핑·옵션 강매 등 횡포가 드러나는 것이다.


“소비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편 일부 태국 현지 가이드의 횡포가 극에 달하는 것은 이들의 수입이 ‘옵션 커미션’에 의지하는 까닭이다. 태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가이드는 엄밀히 말해 불법이다. 태국은 자국민에게만 관광가이드 자격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몰려드는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하기 위해 태국 정부도 언어가 능통한 한국인 가이드에게 관대한 것이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일으키는 가이드 대부분이 월급 없이 팁과 ‘옵션 커미션’에 의지하는 일용직 근로자라는 점이다. 먹이사슬 같은 여행업계에서 이익을 남기는 일은 쉽지 않다. 때문에 현지 가이드는 무리를 해서라도 고객의 지갑을 열기위해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태국관광청 김진희(31) 비서관은 고객들이 이 같은 현지 사정을 미리 잘 숙지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김 비서관은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에서 활동하는 가이드가 데리고 가는 상점 물건은 질을 장담할 수 없다. ABC 세 등급이 있다면 C등급 상품을 A급이라고 속이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히 환불·교환을 할 수 없거나 꼭 필요하지 않는 물건은 사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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