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1>- 미국망명 전 국정원 직원 김기삼

김기삼씨는 미국의 망명 허용 직후 한국 정부가 진실을 밝히려 한다면 귀국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MBC뉴스 화면 캡쳐.

국가정보원의 불법 도감청 의혹 및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로비 의혹을 제기했던 전 국정원 직원 김기삼씨에 대해 미 법원이 지난 15일 정치적 망명을 허용했다. 이에 김씨가 미처 열지 못한 DJ정부의 판도라상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씨의 망명을 미국이 허용한 것은 그 의미가 크다. 김씨는 내부고발자(whistle blower)로서 미국 정부에 망명을 요청했다. 따라서 그에 대한 망명허용은 그가 그동안 제기했던 DJ정부의 여러 비리 의혹을 미국정부가 일부 인정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에 김씨가 제기했던 DJ의 각종 비리 의혹이 재조명될 것으로 보인다.

또 한나라당은 노무현 이명박 정부로 이어지는 동안 DJ정부의 비리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김씨의 입장에선 이제 자신의 주장을 펼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 셈이다. 때문에 DJ정부 비리의혹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되면 김씨의 주장이 날개를 달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과거 김씨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자료를 꺼내들기를 주저했다. 정치적 역풍을 우려한 탓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료를 꺼내들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DJ의 비리를 캐기 위해 이명박 정부가 나설 경우 기꺼이 봉인을 깰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가 품고 있는 판도라상자엔 어떤 혼돈이 재워져 있는 것일까.

김씨는 2003년 초, 인터넷 언론을 통해 DJ정부의 의혹들을 폭로해 사회에 메가톤급 폭풍을 일으켰던 장본인이다. 당시 그가 폭로한 내용을 정리하면 DJ의 ▲15억 달러 불법 대북 송금 ▲노벨상 수상 공작 ▲국정원 미림팀 불법 도청 ▲1조 원대에 달하는 비자금 해외 은닉 ▲ 로비스트에 의한 무기사업 비리 ▲ 기업지원 리베이트 등 크게 6가지다.

김씨가 의혹들을 폭로하자 큰 파장이 일었지만 이 중 실체가 드러난 것은 불법도청뿐이다. 일부는 언론의 외면으로, 또 다른 일부는 정치권의 외면으로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의혹제기 당사자인 김씨가 이렇다 할 증거자료들을 내놓지 못해 폭로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고 말았다.

국민적 관심을 모으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치적 시점을 잘못 선택한 탓에 변죽만 울린 꼴이 됐다. 김씨는 이후 찾아올지도 모를 정치적 보복을 걱정해야하는 처지로 몰렸다.


망명 허용, 관심 재점화

DJ의 노벨평화상 수상 로비 의혹을 제기한 뒤 2001년부터 미국에서 체류해오던 김씨는 2003년 추가 의혹들을 폭로했다. 그리고 정치적 보복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같은 해 12월 미국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

또 김씨는 2005년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안기부가 불법 도청팀인 ‘미림팀’을 조직, 정관계 및 언론계 등 사회 유력인사들을 대상으로 불법 도감청을 했다고 폭로, 나라 전체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국정원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국정원은 “성격이 불안정해 정보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수시로 옮겨 다녔으며, 금전을 목적으로 폭로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또 김씨의 국정원 퇴직에 대해 “외국 연수 후 의무복무규정 등을 준수하지 않아 직권 면직되었다”고 발표했다. 국정원에서 쫓겨난 문제적 인물인 김씨를 믿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한나라당(당시 야당)의 정치적 조작극, 국정원 내부정보를 빼돌려 기업에 돈을 뜯으려한 인물 등 김씨를 둘러싼 루머가 나돌았다. 이 같은 공세들로 인해 여론은 김씨를 믿는 쪽과 DJ 정부를 믿는 쪽으로 양분됐다. 김씨의 폭로 파문은 힘겨루기 양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되고 말았다. 의혹 규명 작업 없이 파문만 장기화된 결과다. 하지만 한나라당에 의한 새 정부가 들어선데 이어 김씨의 망명요청을 미국이 받아들이면서 그렇게 끝나는 듯 했던 ‘김기삼 태풍’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DJ비자금 실체 스위스에

김씨가 제기한 의혹의 불씨들이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이자 현 정부의 반응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특히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야당시절부터 대북송금 문제에 대한 규명의지를 표명했다. 이에 DJ의 15억 달러 불법 대북 송금 의혹이 다시 수면위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검 결과 DJ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약 4억5000만 달러를 북한에 제공한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김씨는 “내가 입수한 정보를 종합해 볼 때 여러 정황상 당시 15억 달러 정도가 건네진 것 같다”며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믿을 만한 소스를 통해 들었기 때문에 사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김씨는 대북 송금에 대해 “DJ는 자신의 노욕을 채우기 위해 북한에 거액의 불법 자금을 송금했다. 이는 노벨상을 위해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대가였다”며 “DJ의 노벨 평화상 수상은 국가 전체를 이용한 대(對)국민, 대국제사회 사기극”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DJ의 비자금 조성 의혹도 관심사다. 한나라당은 대북 불법 송금 의혹과 더불어 DJ비자금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씨는 “DJ 비자금 규모는 6천억 원에서 1조원 정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의 혈세인 이 돈은 스위스, 홍콩 등지에 분산 예치됐다”고 밝혔다.

그는 그 정황에 대해 “DJ가 스위스를 방문한 적이 있다”며 “이는 단순히 세계보건기구(WHO) 총회 개막식 연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스위스 방문은 비자금과 관련이 있다”고 폭로했다.

당시 김씨는 “그것이 구좌이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계좌의 상속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친필 사인이 필요했기 때문에 스위스를 방문한 것”이라고 전했다.

DJ의 비자금은 국내에서 급성장한 일부 금융기관, 기업 등을 통해 세탁된 것이라는 소문도 파다하다. 이에 비자금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 DJ정권시절부터 각종 특혜를 받아온 기업들이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비자금 의혹과 관련, 무기중개상 조풍언씨가 부각되고 있다.

조씨는 현재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다. 미국 시민권자인 조씨는 그동안 김우중 전 대우그룹회장의 비자금 관리책으로 지목돼 왔다. 더불어 그는 DJ의 최측근으로 국민의 정부 당시 국방사업 로비, 대우그룹 구명 로비, DJ비자금 관리 의혹 등을 받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DJ 정부 비리 의혹의 핵심이다. 그런 조씨에 대한 검찰 조사는 많은 추측을 낳고 있다. 일부에선 DJ비자금에 대한 조사가 이미 진행 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조씨에 대한 조사를 극비리에 진행하고 있으며 어떻게 조사가 이뤄지고 어떤 내용을 조사하는지 등을 일체 함구하고 있다. 검찰은 기자실에 조씨에 대한 조사 내용이 일체 전해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더욱이 검찰의 이같은 조치가 청와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어 그 내막을 둘러싼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또 조씨의 검찰 조사와 김씨의 망명허용 시점이 묘하게 맞물리는 것을 두고 DJ비자금 의혹에 대한 물밑 수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미국인’ 조씨가 국내로 자발적으로 들어와 조사를 받는 배경은 이런 의혹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김기삼씨 미니인터뷰

DJ정권의 국민기만 두고 볼 수 없었다

김기삼씨는 지난 2005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에서 나는 진실을 봤다”고 털어놨다.

당시 그가 인터뷰에서 전한 내용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그의 입장과 생각에 변함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3년 전 그와 나눴던 인터뷰 내용을 다시 되짚어 봤다.


- 왜 망명을 선택했나.
▲ 국정원 퇴사 후 알고 지내던 모 기자에게 DJ정권의 의혹들을 전해줬다. 그런데 이게 노벨상 공작의 핵심인 김한정(전 DJ 비서관)의 귀에 들어갔다. 전해준 의혹들은 알고 있는 사람이 극소수이기 때문에 내가 의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위기를 느낀 나는 미국으로 도피해야했다.

- 비리를 폭로한 이유는 무엇인가.
▲ DJ정권이 국민을 기만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DJ는 노벨상에 대한 노욕 때문에 김정일에 2조원에 달하는 뇌물을 줬다. 또 H기업으로부터 막대한 리베이트를 받아 챙겼다. 따지고 보면 모두 국민의 혈세 아닌가.

- 주장을 입증할 만한 증거자료들을 가지고 있나.
▲ 지금으로선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내가 제기한 모든 의혹들은 나름의 확인과정을 거친 것이다. 나는 중요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핵심에 있었다. 접근이 불가능한 정보 확인은 다른 루트를 통했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소스가 있었기에 폭로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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