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숭숭한 분위기 쇄신... 경영 고삐 다시 죈다

포스코·동부·롯데 등 시기 앞당겨
인력 재배치·임원 감축 카드 꺼낼듯

인사 키워드 ‘CANDY’ 강세
구조조정 돌파구 ‘시선집중’

[일요서울 | 박시은 기자] 매서워진 날씨만큼 재계에 부는 칼바람이 심상치 않다. 국내 경기부진 속 일부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한창인 가운데 인사 시즌이 다가온 것이다. 이런 와중에 정기인사를 앞당기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인력 구조조정 차원의 정기인사 진행이란 시선이 많다. 이에 실적이 부진한 대기업 임원들은 좌불안석이다. 긴장감을 위한 분위기 쇄신 차원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또한 오너 2~4세들의 승진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일요서울]은 재계에 불어 닥친 인사태풍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올해 재계는 글로벌 경기침체와 내수부진, 환율 급변으로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실적이 곤두박질치자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구조조정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맞먹는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이런 가운데 정기인사를 앞당기는 기업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정기인사를 명목으로 한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 예고라는 얘기도 있다. 실적과 연동되는 인사를 앞당기는 것을 두고 인력 구조조정 차원의 결정으로 본 것이다.

게다가 내년 경기가 올해보다 더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뒤늦게 인력 구조조정을 벌이기보다 정기인사를 통한 인력 재배치, 임원급 인사 구조조정이 일어날 전망이다.

기업분석 전문 업체 한국CXO연구소는 재계인사의 키워드로 임원감축(Cut), 총수부재(Absence), 세대교체(Next), 올드보이 퇴진(Delete), 젊은 연구인력 강세(Young, En-gineering, Supervisor)의 앞 글자를 딴 ‘캔디(CANDY)’를 제시했다. 기업들이 연말 임원인사 시즌에 임원감축 카드를 꺼내들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국내 100대 기업의 임원 수는 2009년 5600명에서 올해 초 7200명까지 증가했다. 그러나 연구소 측은 상당수 기업들이 연말 인사부터 임원 감축에 나서 내년 100대 기업의 임원 수는 올해보다 200〜300명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철강업계는 명예퇴직 등 적극적인 인력 구조조정이 있을 전망이다. 포스코의 경우 오는 12월 말로 정기인사 일정을 앞당길 것을 검토 중에 있다.

그동안 포스코는 매년 정기주총인 3월에 맞춰 정기인사를 단행해왔다. 한 박자 빠른 임원인사로 침체에 빠져있는 시장의 대응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포스코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은 8787억 원으로 최악으로 평가된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인 6330억 원 보다 늘었지만, 분기 1조 원대 영업이익으로는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또 사업계획 수립과 인사 시기를 맞추기 위한 것이 이유로 거론된다. 사업계획은 연말에 세우지만 3월에 실시되는 인사로 새로운 사업이 추진되는 도중에 책임자가 바뀌는 부작용이 있었다.

하지만 앞서 권오준 회장 취임 후 사업 구조 개편과 주요 계열사 CEO 교체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선 바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앞당겨진 연말 인사를 통해 권회장의 의지가 반영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다만 포스코 측은 이 같은 예측에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정기인사 부분은 아직 검토 단계에 있을 뿐 확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밖에 동국제강, 동부그룹도 인사를 앞당긴다는 소문이 나오고 있다.

성과주의 내세워

재계 1, 2위를 다투는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이 같은 움직임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은 성과주의를 인사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때문에 올해 삼성그룹의 인사에도 성과가 연동된 칼바람이 불 가능성이 높다. 승진 잔치를 벌인 지난해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분기 10조 원의 이익을 내는 등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만 226명의 임원이 승진 대상에 이름을 올렸고, 전체 승진 인원은 475명이었다.

그러나 올해 연거푸 실적 쇼크를 겪으면서 2분기 8조 원, 3분 4조 원대로 이익이 줄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특히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IM부문의 이익 규모가 급격히 줄었다. 올 3분기 IM부문 영업이익은 1조75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4조4200억 원에 비해 3분의1로 줄었다.

이에 계약직 임원이 크게 늘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계약직 임직원은 퇴직 절차를 밟은 뒤 재계약을 통해 임원을 하기 때문에 임원 경력 삭감 등으로 사실상 연봉이 깎이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통상 12월 초 사장 인사를 단행한 후 임원 인사를 실시해왔다. 사장 인사와 임원 인사 단행에는 일주일 정도의 간격이 있었지만, 지난해부터 이 기간이 줄어들어 올해에도 빠른 임원 인사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성과주의를 원칙으로 매년 300~ 400명에 달하는 대규모 정기인사를 단행해왔다. 올해는 CEO 인사를 불시에 진행해 예측 불가능한 수시 인사가 이뤄졌다. 앞서 이삼웅 기아자동차 대표는 10월 말 노사 갈등 해결에 시간이 지연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했다. 지난 8월엔 이원희 현대차 재경본부장이 사장으로 승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기 인사에서는 계별사별 임원 승진만 이뤄질 전망이다. 다만, 현대기아차의 실적 부진 등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어 수시 인사 외에도 큰 폭의 인사 변화가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엔저 상황에서 불거진 환율 문제로 매출이 늘어도 이익은 감소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해 ‘신상필벌’식 인사가 단행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또 현대중공업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임원 감축이 없었지만 올해는 인사에 대한 긴장감이 높다. 구원투수로 최길선 회장이 취임했고 권오갑 사장이 조직에 긴장감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달 인사를 통해 임원 자리 3분의 1을 줄이고 젊고 유능한 부장을 임원으로 배치한 바 있다.

이밖에 롯데그룹도 정기인사 일정을 앞당길 것을 검토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매년 2월에 정기인사를 해왔지만 올 연말로 앞당길 예정이다. 우선 매년 11월에 진행한 과장 승진 자격시험을 올해 처음으로 10월에 치렀다. 정기인사로 어수선한 연말 분위기를 다잡아 업무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총수 부재의 상황을 맞은 기업들의 정기 인사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총수 부재 상황상 인사폭을 가늠하기 더 어렵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총수 복귀가 예고된 기업은 인사 폭이 크지 않지만, 부재의 상황이 지속될 경우에는 불시에 대규모 인사가 나올 수 있다.

경영복귀 여부따라

이재현 회장의 공백이 장기화된 CJ그룹의 올해 인사는 이르면 이달 중, 늦어도 12월에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에는 10월께 인사가 진행됐지만 이 회장의 탈세, 배임 혐의 등에 대한 재판이 장기화돼 경영복귀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현재 이 회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건강 악화로 서울대학교 의과병원에 입원 중이다.

이런 와중에 CJ오쇼핑, CJ대한통운 대표이사 인사를 단행해 이목이 집중됐다. 정기인사를 한 달여 앞두고 동시에 복수 계열사의 대표이사 인사가 진행된 것이 처음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주력계열사로 꼽히는 CJ제일제당과 CJ대한통운의 인사가 먼저 이뤄진 만큼 상대적으로 정기인사의 폭과 규모는 크지 않으리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이 회장의 공백이 장기화 되는 만큼 CJ그룹 내부적인 인사이동에 대해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더욱이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미국 출장에서 귀국한 직후 진행돼 그 의중에 대한 분석이 다양하게 나온다. 또한 남은 CJ그룹 정기인사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SK그룹도 최태원 회장의 경영 복귀 시점 예측이 어려워 대규모 인사가 예측되고 있다. 투자 지연, 실적 부진 등에 시달리고 있지만 최 회장이 사면을 받지 못할 경우 연내 경영 복귀가 어렵기 때문이다.

SK그룹은 사업구조 혁신 등에 대해 계열사별로 검토를 진행하고 있으며 조만간 그룹 전체의 혁신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한화그룹의 경우 김승연 회장의 경영 복귀 가능성이 예상돼 인사 폭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점쳐진다. 대규모 인사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김 회장의 복귀 이후에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한화케미칼 등 일부 실적이 부진한 기업들에 대해서 경고성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은 있다.

오너가 자제들 승진은

뒤숭숭한 분위기 속 오너가 2~4세의 승진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선 삼성가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회장 승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기는 하나 아직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많다.

현대가의 경우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의 장남인 전기선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수석부장이 상무로 승진했다. 정 상무는 지난해 6월부터 울산 본사의 경영기획팀에 배치돼 본격적으로 경영 수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LG가는 신규 임원 탄생이 점쳐지고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아들 구광모 ㈜LG 시너지팀 부장은 아직 부장 2년차이지만 LG그룹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히고 있어 승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화그룹의 경우 장남인 김동관 실장의 임원 승진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점쳐진다. 김 실장은 등기이사로 등재된 적은 있지만 상무 등 임원 타이틀은 아직 달지 못했다.

현재 한화그룹은 최근 김승연 회장의 막내아들 동선씨가 한화건설 매니저로 입사해 아들 셋 모두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차남인 동원씨는 지난 4월 입사해 현재 그룹 경영기획실에서 디지털 팀장을 맡고 있다.

다만, 대다수의 임직원들은 인사 찬바람을 느끼고 있어 정기인사에 대한 온도차가 느껴진다. 각 기업들은 정기인사를 통해 어수선한 분위기를 잡고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직원들의 마음만 뒤숭숭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크다.

이처럼 재계에 찬바람이 부는 가운데 분위기 쇄신용 인사 단행도 점쳐지고 있다. 사업성과가 양호하더라도 조직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인사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때문에 올 연말 재계에 부는 인사 칼바람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seun897@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