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인사와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적 있다”

김기삼(44)씨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씨는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둘러싼 로비 의혹을 제기한 인물. 그 뒤 미국으로 건너간 김씨는 2003년 12월 미 법원에 망명을 신청, 지난달 15일 망명허가를 받았다. 그는 한국의 정치탄압 가능성을 미국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다.

또 그는 2005년 안기부가 불법도청팀인 '미림팀'을 조직해 정계, 관계, 언론계 등 사회 유력 인사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불법 도감청을 실시했다고 폭로해 사회전체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김씨는 DJ비리 의혹을 제기하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섣불리 자료를 공개했다간 국가에 대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이번 망명허가에 대한 재판이 최종적으로 확정되면 그는 한국 정치탄압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동시에 그동안 봉인해 왔던 증거자료 공개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게 된다.

이번 재판은 미국 정부가 김씨를 상대로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이민법원에 추방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한 1심 재판으로 사실상 망명이 허락된 것이나 마찬가지란 관측이다. 그런 의미에서 DJ비리의혹에 대한 증거자료 공개는 이제 김씨의 결단만 남은 시점이다.

김씨가 다시 수면위로 부상하자 DJ의 최측근이었던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달 22일(현지시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상 로비설은 근거가 없는 허무맹랑한 주장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방미 중이던 김 전 대통령을 수행한 박 전 실장은 이날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씨가 망명을 허용받기 위해 동원 가능한 모든 언어로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박 전 실장은 김씨가 자기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내놓을 수 있는 자료도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박 전 실장은 “일단 김씨가 말하는 것을 보고 대응을 하겠지만 근거 없는 주장을 되풀이 할 경우 법적대응 등 여러 가지 대응을 생각하고 있다”며 향후 대응 가능성을 암시했다.

박 전 의원은 또 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 노벨상 포기 압력설과 관련해서도 “정 명예회장이 노벨평화상을 추진했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으며 압력설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증거자료 공개할 수도

이에 대해 김씨는 “그들로서는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하다”며 차후 모든 것을 밝히겠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김씨는 지난달 22일 〈일요서울〉과의 전화통화에서 자신의 생각을 담담하게 밝혔다.

김씨는 “DJ의 노벨상 로비의혹은 내가 하루 이틀 조사해 알아낸 것도 아니고 몇몇 사람에게 귀동냥한 내용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얼마 전 DJ측이 내 반응을 지켜본 뒤 법적대응을 하겠다고 했는데 내가 폭로할 당시 이미 나를 상대로 할 수 있는 대응은 다 하지 않았나. 내가 나서지 않더라도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기 마련이다”고 말했다.

또 김씨는 “DJ측은 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에 대한 압력사실이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사실 역시 다양한 루트를 통해 2중 3중 확인 작업을 벌여 밝힌한 내용이다”면서 “현대 쪽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확인도 했 다. 현대 측 일부 요직 인사들의 증언과 정황상 증거가 뚜렷하기 때문에 내가 아닌 누구라도 같은 결론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김씨의 행보가 다시 관심을 끌면서 의혹에 대한 증거자료 공개여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자료 공개에 대해 김씨는 지금까지와 다소 다른 모습을 보였다.

김씨는 “내 주장과 관련해 증거자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는데 나도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며 “국익과 관련된 부분이 많아 지
금까지 고민하고 있지만 반드시 내가 가진 자료들을 공개해야 한다고 하면 모든 것을 공개할 예정이다. 나도 어느 시점에 가서는 모든 일들을 마
무리 짓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료공개는 국가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이고 그로인해 국익이 손상될 수도 있다”며 “그래서 자료공개 여부는 개인이 아닌 국가가 판단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부가 원할 때 공개하는 게 순리에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정부가 나서야 할 때

이어 그는 “당시에는 밝히지 못했던 민감한 내용을 추가로 공개할 것도 검토하고 있다”며 “정보라는 게 시기성이 있는 만큼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 판단되는 것이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또 DJ대북불법송금과 관련 김씨는 현대에서 뒷돈을 지원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현대에서 건넨 이 뒷돈을 국정원이 해외로 빼돌려 자금세탁을 했다고 김씨는 폭로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현대-국정원-DJ로 이어지는 대북자금 커넥션에서 등장하는 한 여성이다. 그는 유럽(프랑스로 추측됨) 국적을 하진 한국계 40대 여성으로만 알려졌다.

김씨는 이 여성이 해외에서 유로화로 환전하는 일과, 수표를 재(再)반입하는 작업을 담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여성은 국내 H호텔에 장기 투숙했던 것으로 전해졌으나 현재 행방은 알 길이 없다.

김씨가 자료를 공개할 경우 이 여성과 접촉했던 인사들과 여성의 정체가 드러날지도 관심사다. 또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자살미스터리도 다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김기삼씨와의 전화인터뷰 내용

- 많은 의혹들을 제기했지만 그 실체가 드러난 것은 국정원 도청 사건뿐이다. 제기한 의혹들을 입증하려면 본인이 쥐고 있는 자료를 공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자료공개 요청이 곳곳에서 많이 들어오는데, 때가 오고 필요하다면 해야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그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자료공개는) 국익이 손상될 우려가 있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자료는 DJ비리의혹과 관련된 부분만 칼로 도려낸 듯 있는 게 아니고 여러 가지 사안이 그와 함께 맞물려 있다. 그래서 공개 여부는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또 나는 정보기관에 근무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기관의 내부 자료를 빼돌려 일반에 공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 현 정부의 인사와 따로 접촉한 적은 없었나.
▲ 접촉이라고 할 건 없고 현 정부 인사들 중 내가 제기한 문제들에 관심있는 분들과 사적으로 통화한 적은 몇 번 있다. 현 정부 내 젊은 정치인들은 DJ비리의혹에 대해 재조사해야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지만 정권차원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 대북송금이 15억 달러라고 주장했는데, 그 근거는 무엇인가. 밝히기 곤란하다면 15억 달러라고 볼 수 있는 정황을 설명해 달라.
▲ 그 전에 내가 대북불법송금의혹을 제기하며 올린 글을 있는 그대로 봐줬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자꾸 내가 올린 글을 편의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대북 송금액이 15억 달러라고 확신하는 게 아니다. 글에서도 나타나지만 나는 ‘15억 달러를 줬다’가 아니라 ‘15억 달러를 주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DJ가 15억 달러를 줬는지 여부는 내가 알 수 없다. 다만 남북정상회담을 놓고 DJ와 김정일 사이에 15억 달러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내용은 사실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그 이상을 알아내는 것은 개인조사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다.

- 권력핵심부에 북한 간첩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간첩이란 주장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더 있다면 그들은 누구이b>며 간첩이라 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또 그들이 북한에 제공하는 정보는 주로 어떤 것들인가.
▲ 북한에서는 오래전부터 꾸준히 정치 사회 요직에 간첩들을 심는 작업을 해왔다. 누구라고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핵심요직 곳곳에 간첩이 있다. 방송국, 사회시민단체, 종교단체, 정당, 학교 등 없는 곳이 없다. 특히 방송국과 신문사엔 최상위 핵심부에까지 간첩이 진출해 있는 것으로 국정원은 파악하고 있다. 국정원에선 이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으며 간첩행위에 대한 데이터도 모두 갖고 있다.

-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간첩이라는 결론은 어떻게 얻은 것인가.
▲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간첩이라는 주장은 내 나름대로 상당히 공들인 수집정보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나는 그의 간첩혐의를 입증할 만한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매우 힘들고 위험한 작업을 감수했다. 그 정보들은 90%이상 신뢰할 만한 것들이다. 하지만 국내 언론은 이런 노력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도대체 무엇을 국민이 알아야 하는지 관심 갖는 언론이 없는 것 같다. 언론은 뭐든지 독자의 입맛에 맞게 쉽게 가려 한다. 그래서 정작 중요한 사안이 터져 나와도 그냥 흘려버린다. 그 예로 서해교전 사건만 봐도 언론은 뒷북이지 않았나. 국가안보에 큰 구멍이 났다는 증거가 드러나도 국내 언론이 심드렁하니 내가 국가안보 어쩌고 떠들어봐야 소용없다는 생각도 든다.

- 국정원 직원으로서 또 한 개인으로서 그런(임 전 원장의 간첩행위) 사실을 뒷받침할 정보에 접근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정보를 수집했나.
▲ 그걸 알아내는 건 개인 능력의 문제 아니겠나. 나는 정보를 얻기 위해 그만큼 노력했다. 사실 임 전 원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장애물이 많았다. 하지만 직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소스를 얻게 됐다.

- 국정원 내에도 간첩이 있을 수 있나
▲ 국정원장이 간첩인데 조직원 중 간첩이 없을 수 있나.

- DJ노벨상 공작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게 누군가.
▲ 그런 공작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요직인사들의 주도하에 기관이 움직여야 한다. 그 기관은 바로 국정원이다. 국가 안보를 지켜야 할 국정원이 노욕에 눈이 먼 국가 통수권자의 지시를 받고 안보를 심각하게 흔드는 일을 앞장서서 했다.

- 국정원 내부 인사들 중 김기삼씨와 뜻을 같이해 도움을 준 사람은 없었나.
▲ 없었다. 국정원 요직의 인사들과 직원 중 일부는 내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 모두 입을 다물었다. 어떤 이는 오히려 나를 사기꾼으로 몰았다.

- 현재 국정원 관계자들 중 연락이 오가는 사람이 있나
▲ 없다. 그들 모두 내 전화를 두려워한다. 내가 전화 걸면 자기에게 불이익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나 역시 동료들에게 피해주기 싫어 연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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