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늪에 빠진 여인들

전국을 충격에 빠트린 대구 초등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여파가 잦아들지 않는 가운데 미성년자 제자를 협박해 수십 차례에 걸쳐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파렴치한 전직 학원 강사가 경찰에 붙잡혔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중학생 제자를 성폭행한 당사자가 20대 여성이라는 것이다. 경북 포항남부경찰서는 지난달 21일 자신이 가르친 학원 수강
생을 협박해 성폭행한 정모(29)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제자가 성관계를 거부하자 “집과 학교에 모든 걸 폭로 하겠다”고 협박해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미성년자를 상대로 파렴치한 짓을 저지른 정씨에게 강간 혐의가 아닌 강제추행죄가 적용됐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형법상 강간죄는 ‘남성이 여성을 겁탈했을 경우’만 성립되기 때문이다. 강제추행은 성폭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게 된다.

최근 성윤리에 대한 인식과 자성이 높아진 만큼 낡은 법규정을 실태에 맞게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술 먹인 뒤 남 제자 덮쳐

경북 포항의 모 보습학원 강사로 일하던 정씨가 비뚤어진 욕망에 사로잡힌 것은 지난해 6월 무렵이었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원 수강생 김모(당시 중3)군을 눈여겨봐온 정씨는 그동안의 친분을 내세워 김군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학교 수업과 관련해 상담을 해주겠다는 핑계였다.

그날 밤 자신의 원룸으로 김군을 데려온 정씨는 미성년자인 김군에게 술을 권했다. 결국 취기에 몸을 가누지 못한 김군은 여강사와 강제로 성관계를 맺게 됐다. 그러나 악몽은 한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일이 벌어진 뒤 정씨는 수시로 김군에게 성적 요구를 해온 것.

정씨는 김군이 고등학교에 진학한 올해까지 1년여동안 무려 50여 차례에 걸쳐 성행위를 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죄책감과 수치심에 시달린 김군은 ‘제발 이러지 말라’며 완강히 거부했지만 정씨의 욕구는 식을 줄 몰랐다. 정씨는 청소년 사이에 인기가 높은 유명브랜드의 옷과 신발을 선물해 김군의 환심을 사며 접근했다.

그럼에도 제자가 자신과의 육체적 관계를 거절하자 정씨는 “나와 함께 잔 사실을 학교와 부모에게 모두 알리겠다”며 겁주기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올 초 학원을 그만둔 정씨는 이 같은 협박을 무기로 최근까지 자신의 빌라와 차안 등에서 김군을 겁탈했다.


“입건돼도 강간죄 아니다”

정씨의 ‘대담한’ 행각은 견디다 못한 김군이 상담센터를 찾으면서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 됐다. 김군의 기막힌 하소연에 곧장 경찰이 나섰고 지난 21일 정씨는 ‘청소년의 성보호에 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가해자를 검거했지만 논란의 여지는 남아있다. 미성년자와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중죄를 지었지만 강간죄에 비해 훨씬 처벌이 가벼운 ‘강제추행’ 혐의만 성립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런 경우 가해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강간죄 성립이 되지 않는다. 현행법이 그렇게 명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간’은 남녀 간에 강제로 성기가 결합하는 행위다. ‘강제추행’은 성관계를 제외한 모든 종류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를 말한다. 가슴을 만지거나 옷을 벗긴 뒤 성기를 만지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특히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추행하면 죄가 성립돼 피해자에 있어 남녀 구분이 없다.

반면 현재 형법상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하는 것이라 규정하고 있다. 정씨처럼 남성을 겁탈한 경우는 실제 성행위가 있었더라도 강제추행죄로 다스린다. 이는 상대적으로 처벌 수위가 낮아 또 다른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06년 중학생인 남조카를 겁탈한 주부 A(26)씨는 1심 법원에서 징역8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미성년자 강간범 대해 무조건 3년 이상의 실형이 선고되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로 볼 수 있다.

A여인의 사연은 이렇다. 3남매의 어머니인 A여인은 2006년 10월 수원에 사는 친척집을 찾았다 조카 B(13)군을 만났다. 친척이 많아 A여인와 B군은 한방에서 잠을 자게 됐다. A여인은 이틈을 타 B군을 성추행 했다.


조카 겁탈한 숙모 징역 8개월

두 달 뒤 B군을 용인시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A여인. 그는 이른 아침 남편이 출근하자 잠든 B군에게 접근해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 검찰은 A여인을 강간죄가 아닌 강제추행죄로 기소했고 1심 법원은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또 1996년 6월에는 성전환 수술로 여성의 모습을 갖춘 트랜스젠더가 윤간 당한 사건이 발생했지만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 반대여론이 들끓기도 했다. 피해자는 성전환 수술로 완벽한 여성의 신체를 하고 있었고 자신이 여자라는 분명한 성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가해자들 역시 그를 여성인줄 알고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법원은 피해자를 생물학적으로 여성의 ‘구실’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못 박았고 가해자들은 처벌을 면했다. 이들 역시 강간죄 대신 강제추행죄가 적용됐음은 물론이다.

때문에 법 전문가 사이에선 성범죄에 대한 가치관이 시대에 따라 변하는 만큼 피해자 모두를 보호할 수 있도록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조국 서울대 법학부 교수는 “형법이 강간죄 피해자를 여자로 한정한 것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 간의 고정적 성역할을 법제화한 것에 불과하다”며 “형법을 개정해 강간 피해자를 ‘부녀’가 아닌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