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비명 지르는 여군

▲ <사진제공: 뉴시스>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2015년은 여군창설 65주년이 되는 해다. 여성들이 군에서 활약한 지 65년이 됐지만 나라를 지키는 자랑스러움보다는 각종 편견과 성폭력 등으로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있다. 지난 65년 동안 여군은 양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뤘다. 6·25전쟁 발발 초기인 1950년 400여명의 여성 의용군으로 시작한 여군은 2014년 6월 기준 9200여명으로 집계, 여군 1만 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재 여군들은 각급 부대 지휘관 및 참모, 전투기 조종사, 고속정 지휘관, 해외파병 등 다양한 분야에 배치돼 활동하며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또 그동안 여군을 배치하지 않았던 기갑과 포병, 방공 3개 병과도 올해부터 여군에게 개방됐다. 하지만 여군들은 아직 군대 내에서 힘겨운 차별과 싸우고 있다.

지휘관·참모·전투기 조종사·고속정 지휘관 등 활약
“성범죄 신고하면 집단 따돌림·가해자 보복·전출 당해”

대한민국 군 전체 간부 중 여군의 점유율은 5.3%다. 국방부는 2020년까지 달성하도록 규정한 여군인력 비율인 장교 7%, 부사관 5%를 장교는 2015년, 부사관은 2017년까지 조기 달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재 여군에게 개방되지 않은 분야는 수중 폭파와 잠수함 탑승, 항공 구조 등 일부 병과뿐이다.

여군은
여학생들의 꿈

여군들의 활동 영역이 확대되고 다양화 하면서 여군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여생도 20명을 뽑는 육군3사관학교 2015년도 입교생도 모집에는 961명이 지원해 48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지난해 사관학교별 여생도 경쟁률도 육사 43.3대 1, 공사 72.1대 1, 해사 65.3대 1을 기록했다.
여군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젊은 여성층의 여군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 심지어 일반 대학교 여학생들의 경우는 대학입학과 함께 여군장교를 꿈꾸는 사람도 많다. 일반 직장을 다니는 것보다 여군이 훨씬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자부심과 함께 공무원처럼 미래보장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대 내 성군기 위반사고와 열악한 임신·보육정책 등은 여군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국방부에서는 여군들의 복지를 향상시키고 성군기 위반사고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음담패설은 기본
허리 감싸기·껴안기 만연

군대 내 여군 대상 성군기 위반 사례는 끝도 없다. 강원 지역 최전방 부대에서 근무 중인 A 대위는 부대 상급자에게 수시로 성희롱을 당했다. 지난해 결혼 이후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 A 대위에게 부대 상급자는 “부부관계가 어떠냐” “밤마다 외롭겠다”며 갖은 음담패설을 일삼았다. A대위는 “상부에 신고하고 싶었지만 나만 손해를 볼 것 같아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고 말했다. 경기 지역 모 사단 소속 B 중위는 “올 초 회식자리에서 상관이 술을 강권하며 어깨에 손을 올리는 등 치근거렸다”며 “다른 여군들도 비슷한 피해를 당하고도 입을 다문다”고 말했다.
진급과 장기복무를 빌미로 한 상급자의 성폭력에 괴로워하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10월 강원 화천군 모 사단 소속 오모 대위는 “하룻밤만 자면 군 생활을 편하게 하도록 해주겠다”는 직속상관 노모 소령의 지속적인 성적 비하 발언과 강제추행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0년 3월에도 같은 지역 최전방 부대에서 근무하던 심모 중위가 대대장인 C소령의 성희롱을 견디지 못해 자살했다. 심 중위는 자살하기 전 밤샘술자리 강요와 성적 수치심 발언 등 성희롱 피해로 괴로웠다는 메모를 남겼다. C소령은 다른 여군들에게도 성희롱 발언을 일삼은 ‘상습범’이었다.
최근 국방부의 특별신고 기간을 통해 받은 신고 3건 중에는 남성 부사관(하사)과 군무원이 여군 중위와 부사관(하사)의 허리를 감싸고 뒤에서 껴안는 등 성추행을 하거나 자신의 성경험을 얘기하면서 단둘이식사와 2차를 종용하는 등 성희롱을 했다고 신고했다. 어깨 마사지나 술값 계산을 강요한 경우도 있었다.
사실 군대 내 여군 대상 성군기 위반 사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여군이 창설된 지 65년이 돼가는 만큼 오래 전부터 군대 내에서는 여군 성폭력이 비일비재했다. 다만 밖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게 최근일 뿐이다.

“군복 벗을 각오 없으면
성범죄 신고 힘들어”

여군을 상대로 한 성범죄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국방부가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윤후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지난 10월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군내 성범죄 신고 건수는 2010년 56건에서 2013년 105건으로 2배가량 상승했다. 올 상반기에만 79건이 적발됐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는 2010년보다 3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권은희 새정치연합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여군 대상 성 군기 위반은 2010년 13건에서 2012년 48건, 2013년 59건으로 늘었다. 올해 8월 말 현재 34건이 적발됐다.
하지만 문제는 가해자들에 대해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인권센터가 올 1∼3월 여군 100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10명 중 9명(92.1%)이 ‘성적 괴롭힘을 당해도 신고하거나 대응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또 성폭행과 성추행 신고를 한 여군들은 ‘집단 따돌림’(35.3%)과 ‘가해자 및 상관의 보복’(47%) ‘부대 전출’(17.7%) 등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여군 관계자는 “군복을 벗을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성범죄 피해 신고가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생리휴가도 눈치
육아휴직 1년은 언감생신

여군들은 임신과 육아에 대한 고민도 크다. 한 여군에 따르면 “임신했다는 얘기를 하면 처음에는 다들 축하한다고 하지만 나중에는 ‘근무는 어떡하지’ ‘육아휴직을 가면 업무는 누가 맡지’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또 경력단절에 대한 불안감, 제대로 아이를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으로 상당수 여군은 본격적인 육아에 들어갈 때 전역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국방부는 여군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올 초 육아휴직 기간을 연장했다. 하지만 6개월 미만의 짧은 기간만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마저도 기간 내 복귀하기 일쑤다. 한 여군은 “생리휴가도 10명 중 8명이 못 쓰는데, 1년 이상 육아휴직이 가능하겠느냐”고 토로했다.

freeor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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