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이정희 ‘얄궂은 악연’

[일요서울|박형남 기자]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을 연일 공격하고 나섰다. ‘보복의 끝은 어디입니까’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박 대통령을 공격하고 있는 이 전 대표, 헌재의 결정으로 통진당이 해산됐기 때문이다. 여당에서는 ‘통진당에 족쇄를 채워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 정치세력화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사실 이 전 대표는 박 대통령과는 ‘악연’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이 전 대표는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던 것. 하지만 이러한 두 사람의 악연을 지켜보던 정치권 인사들은 “이 전 대표에게 박 대통령은 ‘악연’이지만 박 대통령에게 이 전 대표는 ‘구세주’나 다름없다”고 평했다. 왜 이러한 말이 나오는 것일까.

엮이고 싶지 않지만 엮여도 나쁘지 않았던 朴 대통령

장면#1
지난 24일 청와대 인근에 있는 청운동사무소 앞.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대표는 “보복의 끝은 어디입니까”라고 언급하면서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이 전 대표는 특히 “합법적 공개적으로 15년 활동해온 정당을 강제 해산시킨 것도 모자라 이제 통합진보당 자체를 반국가단체, 이적단체로 몰고 10만 당원을 처벌하려 하고 있다”며 “보복은 저 하나로 끝내달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또한 “종교 시민 노동계를 시작으로 한국 사회 전체를 해방 직후 국가보안법의 ‘공포 시대’로 되돌리고 있다”며 “보복의 끝은 어디냐”고도 했다. 이 발언은 최근 통진당 해산 문제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과의 과거 악연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됐다.

장면#2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이 나온 15일. 박 대통령 자신이 직접 수놓은 자수로 디자인한 연하장을 이 전 대표에게 전달됐다. 박 대통령은 “2015년 희망의 새해가 밝아오고 있습니다. 을미년 새해에는 국가혁신과 경제 재도약의 성과를 체험할 수 있는 한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며 “평화와 인내의 상징인 양의 해에 국민 여러분들이 모두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고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정치권뿐 아니라 네티즌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다.

5일 차이로 연결된 두 장면은 박 대통령과 이 전 대표 간의 ‘기나긴 악연’이 2014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박 대통령은 사실 이 전 대표와 늘 앙숙이었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이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을 줄곧 공격했으나 엉뚱하게 ‘보수진영의 정권 창출’로 불똥이 튄 것에서 보듯, 박 대통령에게 이 전 대표는 ‘엮이고 싶지 않지만 엮여도 나쁘지 않은’ 사람인 셈이다.

두 사람의 질긴 인연

실제 지난 대선 당시 이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의 “왜 대선에 나왔느냐”는 질문에 “저는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러 나왔다”고 말하는 토론회 동안 시종일관 박 대통령에게 날선 발언을 쏟아냈다.
‘전두환 후원금’, ‘다까끼 마사오 박정희 친일 행적’ 등을 날카롭게 검증했다.
하지만 이 전 대표의 날선 공격이 박 대통령에게는 호재로 작용했던 것이다.
당시 대선 와중이었고, 또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로 인해 박빙의 승부를 펼치면서 ‘이정희 역할론’이 주목 받았다.

하지만 이 전 대표가 중도사퇴하면서 선거 보조금 먹튀 논란이 더 불거졌다. 게다가 보수결집이라는 역효과까지 나타나면서 문재인 의원이 대선에서 패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또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이 터지면서 박근혜 정부에 위협으로 다가왔다. 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율이 30%까지 떨어지면서 여권 내에서 ‘레임덕이 온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역대 정권마다 임기 말 터지는 사건들이 임기 2년차에 불거졌고, 비선실세 논란과 함께 측근들이 연일 구설에 올랐던 탓이다.

하지만 통진당 해산 사태로 박근혜 정부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루트가 생겼다.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선고로 정치권 이슈는 ‘청와대 문건 유출’에서 ‘통진당 해산’에 관심이 쏠렸던 것이다.
여기에 마땅한 출구전략이 없었던 새누리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통진당 옭아매기에 나섰다. 통진당 인사들이 신당 창당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까지 등장했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법원이 통진당에 위헌성이 있다고 판단한 만큼 (법안을 통해) 재창당을 막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통진당 옥죄기로 박 대통령은 위기를 넘겼다. 결과적으로 이 전 대표가 이른바 ‘박근혜 도우미’로, 위기 때마다 박 대통령을 구한 셈이다.
실제로 야당 인사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영환 의원은 “2012년 총선에서 종북을 의심받는 정당에 통합을 애걸했으며 대선에서 우리 후보는 통진당 이정희 후보에게 끌려 다녔다”고 평했다.
박주선 의원도 “친북·종북 세력과 절연해야 당이 살아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희는 ‘여당 편?’

이 같은 인연 때문인지 정치권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에게 이 전 대표는 ‘구세주’인 반면, 이 전 대표에게 박 대통령은 ‘말 그대로 악연’이라는 평이 줄을 잇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인해 위기에 봉착했을 때마다 ‘이정희 효과’를 통해 위기를 탈출했다. 이와는 정반대로 이 전 대표는 때론 얻을 것은 얻었지만 결과적으로 ‘손해’만 봤다.

이와 관련해 한 여권 인사는 “이 전 대표는 ‘정치적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박 대통령은 이 전 대표를 출구전략으로 사용, 박근혜 정부 성공에 공을 세우고 있는 것 아니냐”고 농을 치기도 했다.

야권 관계자 역시 “이 전 대표로 인해 대선에 패배했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어 통진당 해산 문제로 인해 야당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결국 이 전 대표는 야당에 아군인 줄 알았더니 적군이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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