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도 박도 못 할 경찰의 3가지 실수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 사고현장 입구에 설치된 분향소에 전국철거민연합회 관계자들과 용산 4구역 재개발 현장 주민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용산 철거민 참사 현장 앞 도로에서 경찰의 물대포 차를 몸으로 막던 한 시민이 경찰에 의해 끌려 나오고 있다.

지난달 20일 새벽, 서울 한복판에서 6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용산 참사’에 출근길 시민들은 충격과 공포에 빠져들었다. 불법폭력시위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단호한 메시지는 결국 5명의 시위대와 1명의 경찰이 목숨을 잃는 참사로 돌아왔다.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살인 경찰’을 규탄하는 게릴라 시위가 한창인 가운데 청와대와 정치권은 ‘제2의 촛불 정국’이 도래할까 바짝 긴장한 상태다. <일요서울>은 이명박 정부에 있어 2009년 최악의 악재로 떠오른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이 몰고 올 사회·경제·정치적 후 폭풍을 심층 진단한다.

이명박 정부의 ‘1·19 부분개각’이 단행된지 불과 하루 만에 터진 대형 참사에 청와대는 물론 국정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강제 진압을 최후 승인한 김석기(현 서울경찰청장) 신임 경찰청장 내정자가 성난 민심의 표적으로 떠올랐다. 김 내정자의 ‘지나친’ 원칙주의가 최악의 비극을 불러왔다는 것.

뿐만 아니라 경찰 내부에서 용산 참사를 은폐하려했다는 의혹이 속속 불거져 나와 경찰 조직 전체가 규탄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참극이 벌어진 근본적인 원인을 놓고 경찰과 시위대의 공방이 계속되고 있지만 몇 가지 정황들은 경찰의 해명을 ‘궁색한 변명’으로 둔갑시키고 있다. 김석기 내정자 뿐 아니라 강제진압을 지휘한 현장 책임자를 색출해내야 한다는 데 민심이 모아지고 있다.


실수 1.
‘시너 잔뜩 쌓여있다’ 알고도 특공대 투입

서울경찰청 경비1과가 작성해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에 보고한 ‘1·20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 한강로 3가 남일당 빌딩 점거 농성장 진입 계획’문건이 지난달 21일 공개됐다. 민주당 강기정·김유정 의원이 공개한 이 문건에는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의 서명도 들어있다. 이는 김 내정자가 시위 사실을 사전에 보고 받았으며 경찰의 진압 방식을 일괄적으로 승인했다는 얘기다.

문건에 따르면 경찰은 시위현장에 비치된 염산, 시너, 화염병 등 위험물 현황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또 경찰은 ‘극렬 저항 및 분신·투신·자해 등 극단적 돌출 행동을 우려’해 ‘건물 하단에 메트리스와 그물망 등을 설치’해야 한다고 스스로 강조했다. 그러나 참사가 일어난 현장에는 이 모든 원칙이 한낱 종이조각에 불과했다.

또 ‘소방차 6대, 소방 고가 사다리차 2대, 바스켓차 2대 반드시 확보’라는 구절도 있지만 이 역시도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경찰의 ‘설익은’ 과잉진압은 경찰 내부의 진술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수사본부(본부장 정병두 1차장)는 당시 현장에 경찰특공대를 투입할 때 경찰이 망루 쪽에 인화성 물질이 다량 있다는 사실을 미리 파악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검찰은 옥상에 투입된 특공대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옥상 바닥에 시너가 일부 뿌려져 있었으며 (경찰이 옥상에 투입될 때) 철거민들이 시너를 뿌리는 것도 봤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는 경찰이 시너가 가득 든 망루 위에서 화염병을 든 시위자가 있는 것을 알고도 강제진압에 나섰다는 전철연 회원들의 주장과 맞아떨어진다.

검찰은 특공대원들이 4층으로 이뤄진 망루에서 3층까지 제압하고 마지막 층을 제압하려는 시각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진술도 받아냈다.

이상의 진술과 경찰 내부 문건 등으로 미뤄볼 때 경찰이 시위 진압의 기본 원칙을 스스로 깨버렸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수 2.
‘밀실부검’ 희생자 두 번 죽였다

경찰은 사건 당시의 안일한 대응 방식 뿐 아니라 사후 처리에서도 ‘아마추어’적이었다. 이들이 저지른 두 번째 실수는 희생자의 유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유가족의 동의도 받지 않은 채 ‘밀실부검’을 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유족들의 주검 확인을 막았을 뿐 아니라 항의 시위를 원천 차단해 유족들의 울분을 자아냈다. 참사가 일어난 당일 저녁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철거민 사망자 5명의 주검이 안치된 서울 용산 순천향병원은 경찰의 통제로 유족들은 물론 취재진의 출입도 불가능했다.

가족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달려온 유족들은 병원 입구에서 경찰과 극심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상부의 지시’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이번 참사로 숨진 양회성(56)씨의 아들 양종원(30)씨는 “경찰에서 주검을 찾으러 오라고 연락해 달려왔는데, 몇 시간 동안 주검을 확인하겠다는 요구조차 거부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유족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경찰은 21일 새벽 1시쯤 사망자별로 유족 대표 한 명씩만 시신을 확인하는 조건으로 안치실을 열어줬다. 유족들은 시신을 인도받지 못해 사건이 터진 지 이틀이 지나서야 빈소를 차릴 수 있었다.

경찰은 또 유족들에게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사망자 부검을 실시했다. 규정상 유족 동의가 의무사항은 아니다. 그러나 통상 유족들에게 부검 사실을 알리고 참관 여부를 확인하는 게 관례다.

유족들은 “생떼 같은 가족을 보낸 것도 억울한데 경찰이 희생자들을 두 번 죽였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실수 3.
‘폭력엔 폭력으로?’ 국회의원도 “밟아버려!”

용산 참사가 벌어진 직후 촛불집회가 다시 불붙고 있다. 문제는 경찰의 대응 방식이 강경 일변도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특히 경찰이 시위 현장에서 현역 국회의원의 신분을 확인하고도 집단 폭행을 가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창조한국당 진상조사위원장인 유원일 의원에 따르면 지난 20일 저녁 용산 사고 현장을 방문한 유 의원은 경찰에게 길을 터줄 것을 요구했다. 용산 경찰서에서 백동산 용산서장의 보고를 듣고 난 뒤였다.

유 의원은 경찰의 제지를 받았고 국회의원 신분증을 제시했지만 경찰 지휘관이 “국회의원이면 다냐. 연행해”라고 지시하자 전경 10여명이 유 의원의 머리채를 잡고 10m 가량 끌고 가며 집단 구타했다는 것이다.

유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경들이 머리채를 잡아끌고 뒤에서 방패로 찍으며 주먹으로 머리와 목 부분을 때렸다. 또 전투화로 정강이를 차 무릎을 꿇리는 등 무자비하게 집단 폭행했다”며 “시민들이 겨우 구해줬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또 “현장 지휘관이 ‘국회의원이니까 밟아버려’라고 지시하기도 했다”며 “현장 조사를 하러 온 현역의원에 이럴 수 있는 거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같은 날 오후 용산역 앞에서 열린 경찰 규탄 촛불추모제에서는 전·의경들이 20대 여성을 집단 폭행하는 모습이 TV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혀 민심을 더욱 자극했다. 경찰이 추모제 후 가두행진 과정에서 바닥에 쓰러진 여성의 머리를 때리는 장면이 고스란히 방송을 탄 것이다.

지난해 6월 촛불시위를 진압하던 전경이 쓰러진 여대생의 머리를 군화발로 걷어차는 모습이 방송된 뒤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과격해진 바 있다. ‘폭력엔 폭력으로’ 맞서는 경찰의 학습능력이 수준이하라는 비아냥이 나오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