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수사의 달인’ 이 말하는 ‘범죄의 재구성’

송 전 경감이 월간 에 연재한 실화 사건 백서.(위) 송 전 경감이 공개한 과거 사건 기록 중 일부. photolbh@dailysun.co.kr

움직일 수 없는 물증 앞에 범죄자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수십 명의 수사관을 따돌린 타고난 도망자도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1980~1990년대 날고 긴다는 강력범들을 소탕하자 안기부와 검찰 내부에서도 ‘진정한 수사통’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전천후 만능 수사관’ 송경엽 전 경감이 털어놓은 사건백서는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다.

송 전 경감은 94년 현대종교 탁명환 대표 피살사건, 95년 D 약국 여주인 살해사건, 동익당 한의원 떼강도 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연달아 해결하며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송 전 경감이 범인을 추리하고 잡아들이는 과정은 마치 잘 짜여진 수사극을 보는 듯하다. 독창적인 수사기법으로 90년대 강력계를 주름잡은 송경엽 전 경감. <일요서울>이 만난 대한민국 수사반장 시리즈의 세 번째 주인공이다.

송 전 경감은 자신을 ‘공작수사의 달인’이라고 표현했다. 용의자들의 자백을 기다리기보다 적절한 덫을 놓아 범인들 스스로 걸려들기를 주시하는 ‘범죄 사냥꾼’이란 얘기다.

70년대 중반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 요원으로 경찰에 투신한 송 전 경감은 서울시경 형사과와 치안본부 특수수사대, 중부 경찰서 강력반장, 청량리 경찰서 강력계장을 거치며 절정의 수사 감각을 뽐냈다. 그는 1985년 시사월간지 <직장인>에 ‘실화사건-목격자’를 연재하며 2년 간 직접 펜을 잡기도 했다.

“난 경찰 생활 아주 짧고 굵게 한 사람입니다. 한창때는 정말 일에 미쳐 있었죠.”

현역 시절 최고의 수사관으로 명성을 날렸음에도 그는 정년을 채우지 못했다. 자세한 사연은 ‘노코멘트’라며 말을 아낀 송 전 경감은 “사건 해결보다 더 어려운 것이 조직생활이더라”고만 했다.

인생의 황금기를 고스란히 바친 일터를 떠난 뒤 극심한 공허함과 배신감에 떨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송 전 경감의 손 안에 남은 두툼한 사건 파일은 한때 ‘최고의 명수사관’이었다는 자부심을 잊지 않게 해줬다.


탁명환 피습사건 결정적 증거 된 ‘피 묻은 달력종이’

‘수사통 송경엽’을 전국적인 유명인사로 만든 사건은 단연 1994년 탁명환 현대종교 대표 피습사건이다. 당시 탁씨는 종교계에서 ‘이단 사냥꾼’으로 불리며 자신이 창간한 종교잡지를 통해 통일교, 천부교(구 전도관) 등 일부 종교집단을 ‘신의 뜻에 어긋나는 이단’으로 몰아붙였다.

탁씨와 해당 종파의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역시 그에 의해 ‘이단’으로 낙인찍힌 대성교회 신자 임모(당시 26세)씨가 1994년 2월 18일 탁씨를 미행해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유명 종교인이 자택 앞에서 잔혹하게 피살된 사건에 온 나라가 들썩였다. 임씨가 대성교회 담임목사인 박윤식 목사의 운전기사 겸 심복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성교회가 조직적으로 임씨를 사주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당시 서울시경 강력반장 이었던 송 전 경감은 봄인을 특정하기 전 흉기를 감싼 포장지에 집중했다. 두툼한 쇠파이프를 칭칭 감은 포장지의 정체는 바로 찢어진 달력종이였다. 모 금융사 지역 지점에서 배포한 달력의 일부. 더구나 한쪽엔 ‘가스’라는 글씨와 함께 날짜, 사람 이름 9개가 빼곡히 적혀있었던 것이다.

“본청에서 보고를 받고 관할서인 노원경찰서로 파견을 나갔는데 한 눈에 결정적인 증거를 포착해냈지요. 달력 뒷면에 적힌 이름들을 들여다보니 희귀한 성씨가 들어있더군요. 바로 조회기록을 띄웠는데 소재지가 구로구 오류동으로 좁아졌죠.”

송 전 경감은 일정기간 사람들이 돌아가며 가스를 배급받아 사용한 기록이라는 걸 한눈에 눈치 챘다. 이들이 한 곳에 모여 집단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했다. 현장에 출동해보니 해당 주소는 다름 아닌 대성교회 인부 숙소였다.

달력에 적힌 9명은 모두 대성교회에서 일하는 직원들이었던 것. 그들 가운데 유일하게 자취를 감춘 것은 임씨뿐이었다. 추적 이틀 만에 송 전 경감은 탁씨를 살해한 진범을 잡아들일 수 있었다.

“조사를 해보니 대성교회가 조직적으로 습격을 지시한 정황은 없었습니다. 박윤식 목사가 탁씨의 비방에 골머리를 썩는다는 것을 알고 임씨가 과잉충성심에 나선 것이었죠. 원래는 겁만 주려고 미행했지만 탁씨의 ‘부적절한 행동’을 목격한 뒤 화가 나 살인까지 저질렀다는 겁니다. 끔찍한 사건이었지요.”


“당신 딸 죽어간단 말이야!”

탁씨 피습 사건을 해결한 지 꼭 1년 만에, 잘나가는 수사반장 이었던 송 전 경감은 일생일대의 고비를 맞았다. 서울 제기동 모 한약방 여주인 피살사건은 송 전 경감에게 있어 ‘가족을 건 도박’이었다. 그는 “평생을 통틀어 내 가족에게 가장 많이 미안하고 죄스러운 경험”이라고 당시 사건을 회고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일까.

“아침 8시 쯤 경동시장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습니다. 야간대학을 다니는 젊은 부부가 운영하던 약국이었는데 부인이 숨져있더군요. 시신은 뒤통수가 완전히 함몰됐을 정도로 외상이 심했습니다.”

범인은 여인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죽은 피해자의 목은 고인의 것으로 보이는 머플러가 있는 힘껏 감겨 있었다. 확인사살이었다.

“시신을 확인하자마자 ‘면식범’의 소행이란 감이 오더군요. 확인사살은 십중팔구 범인이 피해자와 잘 아는 사이일 때 벌어지니 말입니다.”

현장을 훑던 송 전 경감은 범인의 어설픈 트릭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도둑이 가게를 뒤진 것처럼 엉망이었는데 막상 없어진 물건은 없었던 것. 무엇보다 피해자가 쓰러진 사무실 안에서 발견된 깨진 꽃병을 보고 조작된 현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신이 쓰러진 방향으로 볼 때 피해자는 입구에서 사무실 쪽으로 범인을 피해 도망쳤어요. 그런데 꽃병은 범인 쪽이 아니라 사무실 방향으로 깨져 있었거든. 누군가 부인을 해친 뒤 일부러 던졌다는 얘기죠.”

송 전 경감은 최초 신고자인 피해자의 남편 이모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점찍었다. 송 전 경감은 이씨가 목격자 진술을 하는 사이 팀원들을 시켜 피해자의 친정과 주변인물에 대한 탐문수사에 착수했다.

“탐문결과 이씨가 부인을 살해할 동기는 충분했습니다. 이씨는 경동시장 내에서도 상당한 재력가였는데 여자관계가 상당히 복잡했다는 겁니다. 부인에게 몇 번 현장을 들켜 이혼 위기에 몰려 있었다더군요. 위자료와 재산분할을 놓고 부부가 최근까지 냉전을 벌였다는 증언을 확보한 뒤 일단 이씨를 경찰서에 붙잡아뒀죠.”

후배형사들이 돌아가며 8시간 가까이 강도 높은 취조를 했지만 이씨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그에게 수사팀은 지쳐갔다. 확실한 물증이나 자백이 나오지 않는 이상 날이 밝으면 이씨를 무죄 방면해야할 처지였다.

답답한 가운데 송 전 경관에게 걸려온 아내의 전화. 그는 당시 순간이 ‘일생일대의 선택이었다’고 회상했다.

“자정을 넘겼는데 아내가 울면서 전화를 했더군요. 갓 대학생이 된 딸이 몸이 아파 약을 먹었는데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쓰러져서는 숨이 멈춰버렸다는 겁니다.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연명하고 있으니 당장 오라고 절규하더군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 위독하다는 소식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러나 고민은 잠시, 송 전 경감은 울컥하는 감정을 최대한 가라앉히고 아내에게 일렀다.

“내가 가든 안 가든,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살아. 그런데 내가 지금 본부를 비우면 유력한 용의자를 놓치게 돼. 이해해줘 여보.”

울부짖는 아내의 전화를 매정하게 끊고 송 전 경감은 직접 이씨를 취조하기 시작했다.

“면접수사를 할 때는 원칙이 있어요. 피의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요. 화법과 표정을 적절히 구사해 용의자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그 다음에 협상을 벌이는 겁니다. 살인이라 하더라도 과실치사나 자수를 했을 경우는 형이 무겁지 않다고 설득하는 거죠.”

송 전 경감이 직접 나서자 마침내 이씨의 입이 열렸다. 부인과 다투다 홧김에 근처에 있던 공구를 휘둘렀고 쓰러진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자백을 받은 것이다. 이제 이씨의 말을 입증할 증거만 확보하면 사건은 완벽하게 해결되는 셈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물증이 모두 없어졌다는 겁니다. 공구는 범행당시 두꺼운 신문지로 싸여 있었는데 이 친구가 모두 불태워버려서 깨끗한 쇠몽둥이만 남은 거죠. 게다가 부인의 피가 묻은 이씨의 옷가지도 모두 표백처리가 돼버려 혈흔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직접 물증 없이 용의자의 자백에 모든 걸 맡겨야할 곤란한 상황이었죠.”

위기에 순간 송 전 경감은 기지를 발휘했다. 일단 이씨에게 변호사를 선임하게 한 뒤 ‘내일 오후 6시까지 자술서를 제출하면 자수한 것으로 처리해주겠다’고 이른 것. 또 이씨의 유일한 혈육인 조카 A씨를 새벽에 불러 이씨의 자백을 듣게 하고 이를 입증할 진술서를 받았다.

“이씨를 내보낸 다음 곧장 ‘공작수사보고서’를 작성했죠. 나중에 이씨가 말을 바꾸더라도 이런 장치들을 해놓으면 뒤집을 수 없으니까 말이죠.”

약속대로 이씨는 다음날 자술서를 들고 송 전 경감을 찾아왔다. 아내를 살해한 이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여성전용 주차장’ 탄생 비화

송 전 경감의 현역 시절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는 본인이 해결한 사건덕분에 고쳐진 부조리가 몇 가지 있다며 꼼꼼히 준비한 자료집을 꺼내보였다.

“92년에 종묘지하주차장에서 중년 여성이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사회적 파장이 엄청났죠. 백화점이나 공공시설물에 딸린 지하주차장이 여성들에게는 우범지대나 다름없었으니까요. 제가 그 범인을 잡은 뒤 공식적으로 의견서를 담당 부서에 제출했습니다. 여성 전용 주차장을 지상이나 지하 1층에 지정하고 상주 경비원을 고용해 감시하도록 해야 한다고요. 적절한 시기에 제안이 받아들여졌지요.”

송 전 경감은 모든 수사영역을 경험한 몇 안 되는 경찰관이다. 업계에서 알아주는 베테랑인 그는 인터뷰 말미에 ‘현역시절 나는 진짜 수사관이 되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경찰은 말입니다. 공과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곤란합니다. 감만 믿고 상황을 속단해서도 안 되고 몸가짐이 가벼워서도 안 됩니다. 20년 동안 수사관으로 근무하면서 저는 스스로 ‘진짜 경찰’이었다고 자부합니다. 새내기 경찰이 된 제 아들도 저와 같은 긍지를 가졌으면 합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