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호 아쉬운 석패에서도 공정한 과정 집중조명

▲ <뉴시스>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슈틸리케호가 아시안컵 호주와의 결승전에서 아쉬운 석패를 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당초 목표인 우승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셈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시안컵 슈틸리케 호를 향해 비판의 날을 세우지 않는다. 이들은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공정한 과정을 거치면서 그간 혼돈에 빠졌던 한국축구의 탈출구를 마련했다. 더욱이 조직위가 뽑은 아시안컵 베스트 11에 4명의 선수가 이름을 올리면서 이번 대회의 주인공이 됐다. 슈틸리케호 주역들을 다시 만나 본다.

 대한민국 4명 아시안컵 베스트 11 선정…달라진 팀 입증
 공정한 선수 선발과정과 기용 전략…부진 탈출 일등공신


호주아시안컵 조직위원회는 지난 1일 아시안컵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2015 아시안컵 드림팀’을 공개했다.

이번 대회 베스트 11에는 준우승 팀인 한국 선수가 4명, 우승 팀 호주선수가 4명, 2위 아랍에미리트(UAE) 선수가 2명, 4위 이라크 선수가 1명 포함됐다. 이외 국가 선수는 포함되지 않았다. 4-3-3 포메이션으로 작성된 대회 베스트 11에서 한국은 공격수를 비롯해 미드필더, 수비수 모두 배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공격진에는 손흥민(23·레버쿠젠)이 이름을 올렸고 기성용(26·스완지시티)은 대회 MVP인 호주의 마시모 루옹고, UAE의 오마르 압둘라흐만과 함께 아시안컵 최고의 미드필더로 선정됐다.

수비진에는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차두리(35·FC서울)가 오른쪽 풀백 자리에 선정됐고 곽태휘(34·알힐랄)도 이름을 올렸다.

앞서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이 선정한 아시안컵 베스트 11에는 한국이 4명으로 가장 많은 선수를 배출했다. 4-3-2-1 포메이션을 기준으로 선정된 명단에는 골키퍼에 김진현(28·세레소 오사카)이, 오른쪽 수비에 차두리, 중원에 기성용, 우측 미드필더에 손흥민이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호주아시안컵을 주름잡은 태극 전사들은 결과 상관없이 국내외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더욱이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그간 결과에 집착했던 축구대표팀의 관행을 깨고 공정한 잣대와 과정을 통해 한순간에 우려를 기대로 바꿨다.

또 이번 대회에서 선수들 역시 요행을 부리지 않고 국가대표라는 책임에 맞춰 투혼과 투지를 보여줌으로써 축구팬들의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골 맛본 손흥민
시즌 최다골 기록 시동

▲ <뉴시스>
이번 슈틸리케 호의 대장주는 다름 아닌 손흥민의 재발견이다. 손흥민은 소속리그에서는 펄펄 날았지만 A매치에서는 좀처럼 골이 터지지 않았다. 또 이번 대회 조별리그 초반에는 감기 몸살까지 겹치며 2차전은 결장까지 해야 하는 곤욕을 치렀다.

하지만 몸이 회복되자 그는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결국 호주와의 결승전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키는 등 모두 3골을 넣으며 축구대표팀의 주축 공격자원임을 입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흥민은 이번 대회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5일 인천공항을 통해 독일로 출국하기 전 취재진을 만나 “(준우승에 대한 아쉬움은) 아직까지가 아니라 계속해서 영원히 남을 것 같다.

결승까지 가서 졌기 때문에 이 아쉬움은 4년 뒤 월드컵이 지나도, 또 아시안컵이 다시 시작해도 계속 아쉬울 것”이라면서도 “4년 전에는 어린 선수가 아시안컵에 나가서 겁 없이 덤볐었다면 이번에는 손흥민이라는 선수가 대한민국의 선수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던 무대인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하지만 남은 리그를 비롯해 앞날에 대한 자신감은 충분했다. 그는 “빨리 돌아가서 소속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면서 “팀이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앞으로 한 경기 한 경기가 너무나 중요하고 승점 3점을 꼭 챙겨야 하는 만큼 개인 욕심보다 팀적인 부분에 더 신경써야 할 것”이라며 성숙한 면모를 보였다.

손흥민은 독일로 돌아간 후 곧바로 소속팀에 합류해 지난 8일 베르더 브레멘과의 경기를 필두로 그라운드를 호령할 계획이다.

더욱이 지난해 11월 이후 소속팀에서의 득점이 없는 손흥민이 대표팀에서 다시 골 맛을 보면서 득점포를 가동할 경우 시즌 12호골 고지에 오르며 개인 통산 한 시즌 최다골 타이기록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주장 단 기성용
경기조율 능력 극찬

▲ <뉴시스>
‘캡틴’ 기성용은 지난 7일 선더랜드와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PL) 24라운드 홈경기로 리그에 복귀했다. 기성용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완벽한 경기 조율능력을 선보여 찬사를 받았다. 그는 대회 직전 구자철에게 주장 완장을 받으며 갑작스레 막중한 책임감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주장의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축구대표팀을 이끌었다.

그의 진가는 아시안컵에서 더욱 빛났다. 공수 간격 유지와 템포 조절 등에 신경쓰면서 탁월한 패스성공률을 자랑했다. 이번 대회에서 기성용은 408개의 패스 중 380개를 동료에게 정확히 배달하며 93.1%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아시안컵 결승전을 앞두고 호주 현지 언론들은 “가장 효율적인 기성용은 아시안컵에서 손에 꼽을 만한 선수다. 대체 어느 선수가 단 한 순간의 패스로 수비를 무너뜨리며 연계플레이 이후 바로 킬패스를 뿌릴 수 있을까”라고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소속팀에서 기성용에 대한 존재감은 매우 커졌다. 스완지 시티는 기성용이 아시안컵으로 차출되자 경기를 제대로 풀지 못했다. 헐거워진 중원 장악력에 애를 먹었다. 이에 리그에서 첼시에 0-5 대패를 당하는가 하면 블랙번에 지며 FA컵 행보를 멈춰야 했다. 

슈틸리케 감독도 기성용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주장을 맡을 때 경기력이 더 좋아지는 선수가 기성용”이라고 강조했다.

포스트 이영표, 김진수
공수조화 완벽

▲ <뉴시스>
아시안컵 베스트 11에 후보까지로 거론됐던 김진수(23·호펜하임)는 아시안컵이 끝난 뒤 곧바로 소속팀으로 돌아가 경기를 뛰고 있다. 그 만큼 팀 내에서의 확고한 입지를 자랑한다.

이번 그는 아시안컵에서 축구대표팀 선수 중 유일하게 전 경기 풀타임을 소화하며 엄청난 체력을 과시했다. 다만 호주와의 결승전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범해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지만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김진수는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정확한 크로스로 손흥민의 결승골을 도왔고 이라크와의 4강전에서 칼날 크로스로 이정협(24·상주 상무)의 골을 만들어냈다. 그를 두고 일각에서는 한국 축구의 ‘레전드’ 이영표의 현역 시절이 떠오르게 한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영국 매체 ‘저스트 풋볼’은 김진수에 대해 “한 가지 불운했던 순간으로 그를 평가하지 말라”며 “영리하고 공격 센스도 뛰어나다.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전문적인 활약을 펼쳤다. 그는 준우승이라는 결과보다 주목할 부분이 많은 선수”라고 평가했다.

김진수는 “첫 메이저대회에서 결승에 올랐지만 우승을 못해 아쉽다. 앞으로 독일로 돌아가서 더 열심히 해서 손흥민 만큼 팀 내 입지를 다지겠다. 다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예선을 위해 뛰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부활한 김영권
브라질 아쉬움 씻어

이번 대회를 통해 지난 브라질월드컵의 설움을 깨끗이 씻어낸 선수가 있다. 다름 아닌 김영권(25·광저우 헝다)이다. 그는 2009년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8강행을 이끌었고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브라질 월드컵에서 평소에 기량을 보이지 못하면서 수비가 흔들렸고 한국은 1무2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결승전을 제외하고 무실점 행진의 일등공신이었고 이라크와의 4강전에서는 깜짝 골을 선사했다. 더욱이 김영권의 골은 이번 대회 수비수가 처음 넣은 골로 기록됐다. 김영권이 절치부심 끝에 재도약하자 그를 향했던 비난은 격려와 칭찬으로 바뀌었다.

김영권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가슴으로 받은 공이 내 앞으로 뚝 떨어졌다. 그래서 아무나 맞고 들어가라고 찼다. 3년 6개월 만의 A매치 골이었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싶었다”면서 “시즌에 집중할 것이다. 광저우에서 트레블(3관왕·정규리그, 축구협회컵, 대륙별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도전할 것이다. 국가대표팀에서는 월드컵 예선이 6월부터 시작된다. 지금까지 안 좋은 모습을 많이 보였다. 이제 좋은 모습만 보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은퇴한 차두리
K리그서 제2전성기

▲ <뉴시스>
슈틸리케호 재발견의 백미는 단연 차두리다. 그는 아시안컵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리며 대표팀 은퇴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차두리는 아시안컵 참가 한국선수 중 최고령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의 활약은 여느 20대 선수와 다르지 않았다. 특히 그는 결승전까지 크로스 2도움을 기록하며 오른쪽 측면을 지켰다. 결승전에서도 그는 호주의 건장한 선수들을 상대하면서도 월등히 앞서는 경기를 펼쳐 눈길을 끌었다. 비록 우승을 거머쥐지는 못했지만 차두리에게는 어느 은퇴무대보다도 훌륭했다.

그는 아시안컵 결승전 직후 “이제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뛸 일은 없다”며 “우승보다 값진 후배들의 하겠다는 의지, 태극마크의 자부심을 느껴 행복하다”고 은퇴소감을 전했다. 

그러나 차두리의 활약은 K리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은퇴하려던 그는 FC 서울에서 중심축을 맡으면서 지난 시즌 맹활약을 펼친 바 있다. FC 서울을 이끌고 있는 최용수 감독은 아버지보다 낫다며 차두리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차두리는 완전한 체력을 위해 휴식을 취한 뒤 오는 11일쯤 팀의 국내 훈련에 합류할 계획이다.

군데렐라
조커에서 선발로 우뚝

▲ 김영권, 이정협(왼쪽부터) <뉴시스>
 ‘군데렐라’로 불리며 이번 대회의 스타가 된 이정협은 어느새 대표팀 원톱 자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출국 때만 해도 조커 역할을 기대했던 이정협은 조별리그 3차전 호주전부터 선발 출격한 뒤 결승까지 4경기 연속 최전방 공격수 선발로 나서 활약을 펼쳤다. 그는 매 경기마다 부쩍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이동국, 김신욱, 박주영의 공백을 말끔히 씻어냈다. 또 깜짝 발탁으로 인한 우려를 실력으로 입증했다.

이정협 최고의 경기는 호주와의 결승전이었다. 그는 호주 장신 수비수 사이를 해집으며 공중볼, 동료들과 연계 플레이, 패스 등에서 한결 나아진 모습을 과시했다. 더욱이 중앙은 물론 좌우를 흔드는 그의 수준급 플레이는 인상적이었다. 다만 다리에 쥐가 나 후반 42분 교체된 것이 옥의 티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정협에 대해 “우리는 아직 이정협의 최고 모습을 보지 않았다. 시작도 잘했고 점점 발전해갔다. 경기력뿐만 아니라 정신력도 그랬다. 결승전에서 득점하지 못했지만 좋은 정신력, 경기력을 보여줬다”고 좋은 평가를 내리면서도 “분명한 점은 기술적으로 더 많이 발전해야 한다”고 숙제를 내줬다.

슈틸리케 최대 수확물
GK 김진현

▲ <뉴시스>
이정협과 함께 슈틸리케가 발굴한 최대의 보석으로 골키퍼 김진현이 자리잡고 있다.

김진현은 이번 아시안컵 5경기에서 15개의 세이브, 88.2%의 선방률을 기록했다. 그의 활약은 눈부시다. 조별리그 2차전을 제외하고 5경기에 출전해 510분 동안 단 2실점만을 허용했다. 특히 위기 때마다 보여준 김진현의 ‘슈퍼 세이브’는 한국이 아시안컵 5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의 만족감도 높다. 그는 “한국에도 이런 골키퍼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수비 안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만 김진현의 신들린 듯한 선방에도 불구하고 매 경기 2~3차례 킥 실수로 위험한 순간을 내주는 모습은 개선점으로 지적받고 있다. 또 공격 작업을 펼치다 나오는 실수도 없애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김진현은 아시안컵을 마치면서 “이번 대회에선 내가 주전이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성룡이 형, 승규와의 경쟁은 계속 된다. 나도 더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슈틸리케 감독은 축구를 즐기는 문화로 이끌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더욱이 새로운 인재를 2~3명 더 발굴할 뜻을 내비치면서 특정선수에 갇혀 있던 한국축구에 유연성을 갖추겠다는 뜻도 전했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까지는 수많은 문제들이 쌓여 있다. 특히 그가 말한 FIFA랭킹 30위권 이내의 현실적인 목표를 이루기까지 순탄치 않다. 다만 이번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공정한 과정과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이 하나가 되는 투지와 투혼을 이어간다면 제2의 한국축구 전성기를 이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치지 않고 뚝심 하나로 전진하는 슈틸리케호를 기대해본다. 

todida@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