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하면 ‘D의 공포’ 온다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연초부터 쏟아지는 각종 경제지표가 나름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분위기는 회복과 거리가 먼 상황이라는 것이 경제연구원들의 진단이다. 현재 전문가들은 경제지표와 실물경기의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에 대해 여러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중 힘이 실리는 것은 불황형 흑자의 진입국면에 있다는 주장이다.

경제지표와 실물경기의 온도차 극심 
내수 부진 여전체감지수 보강 언제쯤

날씨예보에서 실제온도와 체감온도의 차가 있듯 국가경제에도 경제지수와 체감지수의 간극이 존재한다. 현재 국내 경제지표와 실물경기의 온도차가 바로 그러하다. 각종 수치는 좋아졌다고 하는데 국민들의 실제 살림살이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는 모습이다.

사상 최대 경상 흑자 
물가상승률은 최저치

일례로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경상수지는 8942000만달러로 사상 최대치 흑자다. 또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지난해 국내 물가상승률은 1.3%. 이는 8년 만에 주요 7개국(G7) 평균치를 밑돈 이례적인 일이다.

통상적으로 경상수지 흑자는 수출 증가세에 힘입어 나타난다. 그러나 이번 흑자는 사실 수출증가보다는 수입 감소에 따른 것이다. , 실제 양의 증감보다는 국제유가 하락과 내수 부진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실제로 국제유가는 최근 40달러대로 바닥을 찍는 듯하다. 그러나 석유를 기반으로 하는 국내 제조업은 여전히 침체에 빠져 있다. 오히려 국내 원유 소비량이 월별로 줄어들고 있고 꽁꽁 언 소비심리도 살아날 줄 모르는 상황이다.

다른 산업군도 닫혀버린 내수 지갑에 신음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명 ‘D의 공포로 불리는 디플레이션 우려가 짙어지면서 한껏 움츠리는 모습이다.

물가상승률 역시 아무리 낮더라도 국민들에게 느껴지는 벽은 여전히 높다. 특히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0.8%대로 지난해 12월에 이어 2개월 연속 0%대다. 그것도 담뱃값 인상 요인 0.6%를 제외하면 실상승률은 0.2%로 사상 최저치다.

그렇지만 연말연시에도 내수가 살아나기는커녕 체감경기가 제자리걸음하는 수준에 그쳤다. 세부적으로 보면 국내 물가상승률이 2년 연속 1%대에 머무른 것은 사상 처음이다. 또 국내 물가상승률이 G7보다 낮았던 것은 1990년대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직후인 1999년과 2006년 단 두 해뿐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측은 공급 측면의 유가 하락과 수요 측면의 경기 부진이 동반적으로 사상 최대 경상수지 흑자의 요인이 됐다면서 불황형 흑자의 모습이 일부 있다고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한은은 연속 부인
그러면서도 전망치 낮춰

그러나 한은은 이를 부인하기에 바쁘다. 한은 측은 연간성장률이 3%대 중반으로 잠재성장률에 부합하는 상황에서의 경상 흑자를 불황형 흑자로 보기는 어렵다면서 기준금리 2%대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은은 올해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성장률 전망치는 3.9%에서 3.4%0.5%포인트 낮췄다. 또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도 기존 2.4%에서 1.9%0.5%포인트 낮췄다. 이에 따른 요인은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예상치를 밑돌기 때문이라는 원론적인 단서를 달아 실소를 자아냈다.

이에 대해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수출이 지속적으로 정체한 가운데 수입 감소 폭이 커진 지금 상황은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라고 할 수 있다면서 한은은 부인하고 있지만 디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이미 진행 중인 것으로 봐야 한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올해 경상수지 흑자도 최대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졌다. 이렇게 되면 넘쳐나는 달러가 원화의 몸값을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해 수출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렇잖아도 수치뿐인 흑자에 가려진 수출 정체가 악순환을 거듭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상수지 흑자가 너무 많으면 환율 절상 압력이 생기기 때문에 올해 흑자 폭을 작년보다 낮은 수준으로 관리되도록 하겠다고 발언하기도 했으나 세부적인 계획은 미지수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유가 하락이 소비로 이어지도록 공업제품 가격 인하를 이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저유가가 실물경제로 전이돼야 경기가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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