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통은 숨고 깃털만 남았다

▲ <뉴시스>

사정기관 내부정보까지 접근…수사정보 사전 입수
여권실세와 연결된 검은 머리 외국인 거액 챙겨 잠적

[일요서울 | 김재현 프리랜서] 검찰 등 사정기관이 방산비리를 수사하고 있는 가운데 그 비리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청와대는 성역없는 수사를 통해 방산비리 척결작업을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일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거대한 비리 집합체인 방산비리조직을 청와대가 상대하기 역부족일 것이라는 말이 적지 않다. 심지어 이미 몸통은 자취를 감추고 깃털만 남아 있어 이번 방산비리 수사에서 실제 방산비리의 핵심은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방산비리 조직이 사정기관 내부 정보까지 접근가능하며, 검찰 수사정보도 사전에 입수하고 대책을 세웠을 것으로 보고 있다.

통영함 납품비리 사건으로 ‘지휘책임’ 논란에 시달려온 황기철(59·해사 32기) 해군참모총장(대장)이 지난 2월 23일 전격 교체되면서 그 내막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부는 후임에 정호섭(57·해사 34기·사진) 해군참모차장(중장)을 내정했다. 정 내정자는 해군작전사령관, 해군교육사령관, 국방정보본부 해외정보부장, 해군본부 인사참모부장 등을 역임했다.

오는 9월 임기 2년이 되는 황 총장은 임기 만료 7개월 전에 군복을 벗게 됐다. 그가 2009년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문제가 된 통영함 음파탐지장비 등이 계약됐다. 앞서 지난해 12월17일 감사원은 통영함·소해함 음파탐지장비의 성능 문제와 관련해 업체와의 계약 당시 함정사업부장이었던 황 총장이 장비 획득 관련 제안요청서 검토 등을 태만하게 한 책임이 있다며 한 국방장관에게 황 총장의 인사조치를 요구했다.

황 총장 교체와 관련, 청와대 주변에서는 명목상 사의 표명 수용이지만, 사실상 경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4월 군 정기인사를 한 달 이상이나 남긴 상태에서 예정에 없던 조치를 취했다. 통영함 납품비리 사건이 황 총장 교체에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게 군 소식통들의 관측이다.

방산비리 브로커 어디로?

방산비리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지만 검찰 주변에서는 거물급 로비스트나 브로커는 건드리지 않고 종합한 ‘생계형 방산비리’만 파헤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해외거래를 수반한 규모가 큰 방산비리도 이번 수사의 중점 대상이며 이미 내사자료도 갖고 있다”며 “그러나 해외무기거래 수사는 해당국의 협조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검찰 합동수사단의 방산비리 수사는 지난 20006년에 발족한 방위사업청에 맞춰져 있어 이 같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군 관계자는 “과거 군납비리는 고위급들의 ‘권력형 비리’였다면 방사청의 방산비리는 ‘생계형 군납비리’라며 방사청의 구조상 비리가 생성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방위사업청은 주요 무기사업에서 무기중개업자들의 집중적인 로비를 받아왔고 무기 시장에서 ‘갑중의 갑’으로 행세하면서 일부 대령·중령으로 구성된 실무 군공무원은 물론 민간공무원들도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사청은 '고위급 군납비리'를 막는다는 목적으로 노무현 정권때 세워졌으나 이명박 정부때부터 시작된 대규모 육·해·공 각종 무기소요·획득 사업에서 비리가 곪어 터져나오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 일부에서 “검찰이 방산비리와 연결된 브로커와 로비스트를 이미 다 놓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합수단은 “로비스트의 실체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검찰 주변에서는 “이미 방산비리 브로커와 로비스트의 신상을 파악하고도 해외 도주를 방치했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

방산비리 수사를 통해 드러난 대표적 인물이 구속된 강모씨다. 통영함에 군작전수행능력이 불가능한 불량 소나를 납품했다가 구속된 강모씨는 미국 뉴저지주에 ‘하켄코’라는 페이퍼컴퍼니 성격의 회사를 세웠다.

강 씨는 국내 무기중개업체인 O사의 부사장인 김모 전 해군대령을 동원해 방사청 최 전 중령을 포섭한 뒤 소나를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 강씨는 전형적인 검은 머리 외국인이다.

군 관계자는 “강 씨 같은 검은 머리 외국인이 현지에서 미 방산업체들을 동원할 수 있는 것처럼 사무실을 차려놓고 국내 지사도 만들어놓은 다음 무기중개상을 동원해 방사청 직원들을 집중 공략하는 것이 방산비리의 한 방식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터져나온 통영함 비리로 구속된 방사청 상륙함사업팀 최모 전 중령(구속)도 해군사관학교 출신으로 대위 때부터 방사청으로 들어와 무기 중개업자의 집중 로비를 받은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고 있다.

최 전 중령은 같은 해사 출신이자 국내 4대 무기중개업체로 알려진 O사의 김 모 부사장(대령출신·해사 29기)으로부터 집중관리를 받아 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해사 동기인 전직 해군참모총장과도 깊은 교분을 가진 것으로 군 안팎에서 알려져 있다.

검찰이 조사하고 있는 전력증강 문제점과 방산비리 의혹은 40여건에 이른다. 국방부 조사 결과 이 중 25건이 사실로 드러났는데 통영함의 ‘선체고정음파탐지기비리’(HMS소나는 대표적 사례다.

이번에도 용두사미 우려

강 씨는 미 방산업체에서 생산한 것으로 볼 수 없는 일반 어업용 어군탐지기를 마치 군용 소나인 것처럼 위장해 납품했고 해군에서 문제를 지적하자 ‘참치·고등어 잡이용 어군탐지기’를 다시 납품하는 등 한국 해군은 강 씨와 중개업자들 사이에서 어처니구없는 농락을 당하고 말았다.

5억 원이 넘는 돈을 받은 방사청의 최 전 중령의 뇌물 수수 방법 또한 교묘했다.

일부는 현금으로 받고 일부는 직불카드(체크카드)로 받는가 하면 심지어 나머지는 자신의 부인을 위장취업한 것처럼 속여 월급 수령으로 가장해 돈을 받은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그러나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방위비리 수사가 원전 수사처럼 가짜 납품이나 불량품, 서류위조 등의 ‘용두사미 수사’가 될 가능성을 더 높게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 1999년 무기거래는 아니지만 경부고속철도 차량 선정 과정에서 TGV(떼제베)의 제작사인 프랑스 알스톰사로부터 1,129만 달러(110억 원가량)의 로비자금을 받은 재미교포 로비스트 최만석(64) 씨는 본격 수사가 시작되기 전에 해외로 잠적해 버렸다.

심지어 군 안팎에서는 이번 방위비리 수사가 판은 크게 벌렸지만 초대형 무기사업 비리를 찾기보다는 무기 수주의 내부거래를 집중적으로 파헤침으로써 군무기를 방사청이 아닌 다른 곳에서 다루도록 하기 위한 사전포석이 아닌가 하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방위산업을 지배하고 있는 거물급 로비스트와 브로커들이 아직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과 관련해 검찰 주변에서는 “이미 수사 정보를 입수하고 자취를 감춘 지 오래”라는 말이 무성하다.

합수부의 조사과정에서 밝혀진 방산비리 내용을 살펴보면 ‘군피아(군+마피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방산업체-예비역 장성 및 간부와 현역 장성·장교가 연결된 비리 사슬고리는 그 뿌리가 깊어 합수단 수사가 미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방산비리 수사가 정부 차원에서 전방위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들이 사정기관 주변에서 나온다. 일부에서는 역대 정권 때마다 불거진 방산비리가 대부분 권력형이었던 점을 들어 “합수단이 이명박 정권과 무기브로커의 커넥션 정황을 잡은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내놓고 있다.

지난 정권이 대규모 국방사업을 추진한 배경에 린다김이나 조풍언 같은 로비스트 또는 무기브로커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번 방산비리 수사에서 정치권에 줄을 댄 국제급 로비스트가 드러날 경우 수사가 정치권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파다하다.

감사원 소식통에 따르면 방산비리 연루 정황이 포착된 일부 예비역 인사들은 지난 정권 핵심 인사들과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돼 정치권 로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관계자는 또 “이명박 정부 때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온 외국인과 교포 등 ‘로비스트’로 의심되는 무기
로비스트들이 자취를 감추거나 해외로 도피했다는 첩보가 업계 관계자들을 통해 입수되고 있다”고 말했다.

숨겨둔 정치적 목적

그에 따르면 모 업체와 연결돼 방산 로비를 해온 A씨 등은 합수단이 현판을 걸기도 전에 이미 국외로 피신했다. A씨는 MB정권 때 정치권 유력인사들과 극비리에 접촉을 한 것으로 알려져 대표적 방산로비스트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합수단의 한 관계자는 “방산비리 내용을 살펴보면 방산업체 로비와 예비역들이 로비스트로 활동한 내용 그리고 현역들과 방산업체들 간의 유착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며 “현재 조사는 군과 방산업체들 간의 거래 내용에 모여 있지만 향후 사안에 따라 로비스트들의 행적도 추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는 로비스트들의 정치권 로비 내용에 대해서도 조사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어서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미 지난 정권에 줄을 댄 거물급 로비스트들은 대다수 몸을 피했다”는 말이 무성하다. 정부가 감사원 조사를 추진하고 방산비리 수사를 위한 합수부를 설치하기 전 이미 해외로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지난 정권 때 국방사업에 관여했던 거물급 무기중개업자들의 소재가 잘 파악되지 않고 있다. 추측건대 해외 등지로 이미 종적을 감춘 게 아닌가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번 방산비리 수사가 ‘권력형 거물’들은 잡지 못하고 깃털만 단속하는 수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번 방산비리 수사는 미처 충분한 내사를 벌일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는 게 사정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규모가 큰 무기중개상과 중개업자들이 그에 대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방산사업은 해외거래가 많아 방산비리 수사는 사전 준비와 핵심인물 확보가 매우 중요한데 이 부분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수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한편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방위력개선사업에 사용된 자금은 40조원 정도다. 당시 MB는 2020년까지 국방산업 및 기술 분야 세계 7대 수출국이 되겠다고 호언장담하며 예산을 지원했다. 하지만 최근 감사원과 합수단 조사에 따르면 공문서위조·부실부품사용으로 세월호 참사에 출동도 못해 방산비리의 대표격이 된 통영함, 공군전투기 시동장치 중고부품사용 비리, 병사들 호주머니에서 800억대 부당이득을 취한 군 PX납품비리 등 그야말로 비리백화점에 다를 바 없다.

이처럼 비리가 만연하려면 윗선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실제로 2012년 이명박 정권 말 추진된 14조규모의 해외무 기도입 추진과정도 복마전이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감사원이 최근 방위사업청 등 무기획득 체계 분야 종사자들에 대한 재취업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고위직인 취업승인 대상자 7명 중 6명이 승인 대상이 아닌데도 방산업체에 취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중 2명은 퇴역 후 현역에 종사했던 업무와 연관된 방산업체에 재취업했다.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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