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쉬해온 군 내부 비리 해군 당연시 돼온 엽기 횡령관행

김영수 소령이 언론사와 사정기관에 뿌린 고발장과 사건경위서 비리당사자들의 실명, 계급, 직책등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김소령 리스트’라 불릴 만하다.

현역 해군장교인 김영수(해군대학 교관)소령의 양심선언으로 촉발된 군 비리에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김 소령이 폭로한 비리의 실체에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아울러 이 사건을 수사해온 국방부 검찰단이 수사과정에서 협박과 회유 등 수사방해를 받았다고 밝혀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국방부는 최근 계룡대 근무지원단 납품비리에 특별 조사단을 구성해 이른바 ‘김 소령 파일’을 다시 집중 조사하기 시작했지만 그동안 내부 비리를 관행적으로 은폐해 왔던 군이 제대로 된 결과물을 보여줄지는 미지수다. 김 소령 파일은 ‘계근단·해본 납품비리 사건에 대한 진행 경과서’와 ‘군납비리, 직권남, 성상납 요구 등에 관한 고발’ 등 두 가지로 구성돼 있으며 파일 하나 당 13~ 15쪽으로 분량이다. [일요서울]은 정치권을 비롯해 사회 전반에 파장을 일으키며 거센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는 김 소령 파일을 입수, 전격 공개한다.

김 소령의 고발 내용을 요약한 고발장은 군 내부의 비리가 얼마나 심각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 소령이 고발한 비리는 모두 7가지로 ▲계룡대근무지원단(계근단), 해군본부(경리과)에서 비품 구매·계약 과정 중 위조견적서를 이용해 특정업체(○○상사, 팀○○○, ○○전자 등)에게 고단가로 수의계약을 체결해 주고 현금 및 계좌이체의 방법으로 뇌물을 수령한 사실 ▲군 수사기관들(국방부 검찰단, 해군 헌병/법무)이 뇌물수수 수사과정 중 공범사실 등을 은폐하기 위해 직권을 남용한 조직적인 수사방해·축소·은폐 행위 ▲비리 수사과정 중 국방부 검찰수사관(공군준위 손○○)이 이를 고발인에게 철저한 수사를 해주겠다며 향응제공 및 성 상납요구와 이를 제공받은 사실 ▲전 해군 경리병과장 ○○○, 행정군무서기관 이○○ 등이 해군보급상상 김○○ 명의의 차명계좌를 통해 불법비자금(계약관련 이익제공 대가)을 모집하고 이러한 불법비자금을 활용하여 해군 고위 장교들과 해군 수사기관들(헌병, 법무)에게 청탁성 향응접대 및 뇌물을 지속적으로 제공한 사실 ▲해군 수사기관들(현병, 법무)이 구매·계약담당자들(보금/ 경리병과 장교, 부사관)과 업체로부터 청탁성 향응접대 및 뇌물을 지속적으로 제공받을 사실 ▲전 해본 군수참모부 물자처 물자과장(해군대령 김○○)이 근무평정 권한을 이용하여 고발인 등 4명에게 향응 및 성 접대를 강요하고 제공받은 사실 ▲해군 장성(예비역 포함)들이 장성관사의 비품(군수품)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전출에 따른 이사 시 군외로 불법 유출한 사실 등이다.


김 소령 파일 충격파

군 일부에선 “김 소령 파일이 나오는 게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오히려 시대상황에 비해 늦게 나온 느낌”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군 내부가 썩어 있다는 이야기다.

김 소령이 파일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김 소령이 2006년 2월 8일 계근단에 부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김 소령은 “부임 이전부터 계근단 구매·계약 과정에 불법적인 업무처리가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을 여러 경로를 통해 들었다”며 “전임자인 보급병과 선배들도 간접적으로 이런 사실들을 여러 차례 전한 바 있다”고 털어 놓았다.

전임자들의 말을 들은 김 소령은 부임 후 과거 2003년~ 2005년 구매계약 관련 자료들을 세부적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계근단은 조달청 등록(G2B) 품목의 품질이 훨씬 좋음에도 조달청 위탁조달을 통해 구매하지 않고 시중의 특정 업체와의 수의계약을 통해 고가로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시중가 대비 약 40%이상 비싸게 물품을 구입했다. 더 가관인 것은 물건의 품질도 기준 이하였다. 아예 제품사양서와 실제납품 품목이 다른 경우도 적지 않았다.

김 소령은 이런 사실들을 그냥 덮을 수 없다고 판단, 군 검찰 등 사정기관에 고발조치했다. 김 소령은 파일을 통해 “2007년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결과 특정업체가 제출한 타 업체들의 위조견적서를 이용, 고단가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적정단가 대비 약 150% 수준이상이었다”며 “이로 인해 2003년~2005년간 9억4000만원의 국고손실이 발생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모진 고난의 바람은 비리관련자들이 아니라 김 소령에게 불어 닥쳤다. 수사기관에서는 이 사건을 은폐하려했고 고발자인 김 소령은 군내에서 인격이상자, 군 업무 적응미숙자로 몰려 인사상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


한통속 군 수사기관

비리 행위에 동참하거나 비리 관련 지시를 따르지 않을 시에는 인사상 불이익을 주려했다. 김 소령에 따르면 2006년 상급자로부터 계약관련 불법업무지시를 받은 김 소령이 이를 거부하고 지휘계통상으로 보고하였으나 오히려 계근단장은 심한 질책과 함께 타 부대로 강제전출을 지시했다. 이에 김 소령은 다시 상관의 불법행위 사실을 헌병대 등에 수사의뢰했으나 ‘완성되지 않은 범죄’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수사불가 입장을 밝혔다.

더 놀라운 것은 헌병 관계자는 김 소령에게 “이런 일로 사건이 불거져 문제가 된다면 해군 병리과 존립이 위태롭게 되고 고소인이 오히려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으니 조용히 마무리하자”며 침묵을 종용 했다는 점이다. 결국 김 소령은 2006년 전반기 근무평정에서 최하위 등급(0점처리)을 받고 ‘계근단 업무적응 미숙’이라는 명목으로 같은 해 9월 29일 타부대로 전출됐다.

김 소령은 포기하지 않았다. 군의 썩은 부위를 도려내기 위해 계약주관부서에 “업체가 부당 이득을 취한 예산을 국고환수해야 한다”며 환수요청을 했다. 하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참다못한 김 소령은 국방부 감찰단에 정식으로 수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더 끔찍한 사건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담당검찰관인 김모 중위는 형식적인 조사만 한 뒤 증거부족으로 조사를 종결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수사관인 손모 준위는 김 소령에게 “철저한 수사를 해 주겠다”며 향응접대와 성접대를 요구했다고 김 소령은 주장했다.

김 소령은 “어쩔 수 없이 그의 요구를 들어줬다”고 고백하면서 “주요 향응 장소는 국방부 근처 용산의 주점과 대방동 주점이며, 성접대 장소는 신사동의 한 불법안마시술소에서 이뤄졌다. 손 준위는 금전도 요구했으나 이는 거부했다”고 폭로했다.

이어 김 소령은 “이에 대한 증거로 당시 결제에 사용한 김 소령 명의의 카드 영수증을 증거로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손 준위는 이러한 접대를 받고도 정작 수사는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전역했다.


최상위 조직부터 썩은 해군

결론적으로 김 소령의 주장을 정리하면 해군본부와 계근단에서 고질적인 부정행위가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모두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눈감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들춰내는 이에게는 응분의 대가가 간다는 것이다. 김 소령에 따르면 부정행위수법은 크게 5가지로 ▲특정업체물품을 집중구입 ▲특정업체물품을 적정 시장가격보다 고가로 구입 ▲수용비로 카드결제 후 자산취득비 물품으로 수령 ▲구매물품을 전부 수령하지 않고 일부만 수령 ▲미구입한 물품을 카드로 결제한 뒤 이를 현금으로 바꿔 수령하기 등이다.

더 큰 문제는 해군과 국방부의 어떤 사정기관과 지휘관도 이를 문제 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를 들춰내는 것을 죄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군이 총체적으로 부패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김 소령이 폭로한 내용을 봐도 군의 부패실상은 잘 드러난다. 김 소령은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도 믿을 수 없다고 판단, 2007년 2월 20일 국가청렴위원회에 내부고발 했다. 위원회는 같은 해 4월 국방부 조사본부에 수사를 의뢰했고 조사본부 수사 결과 불법적인 구매·계약으로 9억 4000천만원의 국고손실이 발생한 사실을 확인했다. 또 관련자인 해군 김모 대령 등 16명이 업체와 유착관계를 맺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처벌토록 사건 결과를 해당부대에 이첩했다. 그러나 해군본부 수사단은 “통보 받은 사실을 조사했으나 국고손실을 증명할 수 없고 관련자들의 업무절차 미준수 사항이며 관행적으로 이뤄진 행위이지 불법행위가 아니다”라는 기막힌 이유를 대며 수사를 종결했다.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이 사건의 조사필요성을 김 소령만 주장했던 것은 아니다. 해본 수사단이 수사를 마무리하자 해본 법무실 해양법제과장은 해본 수사단의 수사가 의도적인 사건은폐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해군참모총장에 사건을 재수사해야 한다고 건의 했으나 승인을 받지 못했다고 김 소령은 주장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해군의 최상위부터 대대적인 메스를 대야할 것으로 보인다. 김 소령은 고발장 말미에 “이 사건의 실체를 밝혀 조직의 체질이 좀 더 건강해지길 바랬지만 사건 축소·은폐를 위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수사방해가 있어왔다. 그 방해세력이 군의 권력기관이라는 사실에 몸서리가 쳐질 뿐”이라고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또 김 소령은 “고발장의 기술내용이 사실과 다르거나 사적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고발장에)언급된 사람들에게 해를 끼쳤을 경우 어떤 처벌이라고 기꺼이 감내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군측은 “자세한 사항은 국방부에서 조사 중이다. 그쪽에서 관계자들을 철저히 조사해 문제가 확인될 경우 강력히 처벌할 것이다. 해군의 입장에선 달리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양심선언 해군 김영수 소령 인사비리도 폭로

지난 13일 MBC PD수첩을 통해 해군 현역 장교 김영수 소령이 제기한 계룡대근무지원단(계근단)의 비리와 관련, 국방부가 군 물품 구입과정 비리의혹에 대해 재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김 소령은 과거 고발장을 통해 해군의 인사비리에 대해서도 언급한 적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김 소령은 고발장에서 “해군의 모 인사가 근무평정권한을 이용해 향응과 성접대를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김 소령의 주장에 따르면 2005년 12월 중하순경 당시 해본 군수참모부 물자처 물자과에서 연료담당으로 근무하던 중 직속상관인 김모 대령이 근무평정과 관련, 김 소령에게 “내가 너의 평정점수를 망쳐 놓을 수도 있다”며 압박했다.

이를 견디지 못한 김 소령과 또 다른 한 장교는 김 대령에 식사를 대접하고 도박을 한 다음 룸살롱에서 유흥접대를 했다. 이어 업소아가씨를 김 대령에게 붙여 성 접대를 하도록 했다. 당시 사용된 비용은 약 200만원 정도다. 김 소령은 접대에 사용된 영수증을 증거로 갖고 있다.

김 소령은 고발장에서 “마지막까지 감추고 싶었던 사실까지도 고발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주고 평생 원망을 들으며 살아야 하고 내 자신에게도 뼈저린 선택이 될 수 밖에 없는 이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한편 지난 16일 국방부 관계자는 "김용기 국방부 인사복지 실장을 단장으로 한 30여 명의 국방부 특별조사단이 수사에 착수했다"며 “감찰결과는 이달 말경 나올 수 있지만 최종 수사결과는 구체적인 시기를 정할 수 없다. 올해 말까지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 특별조사단은 국방부 검찰단으로부터 계좌추적 및 관련자 대질신문 자료를 넘겨받아 군 납품 비리를 다시 조사한다. 동시에 과거 군 수사기관이 사건을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관련자 징계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감찰조사도 병행한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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