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 외설이냐 예술이냐

최근 화제가 됐던 연극 의 한장면

최근 문화계의 화두는 누드다. 한 사진작가는 자신의 누드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전시회를 갖는가 하면 자신의 세미 누드를 사진으로 남기는 일반인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일본에서는 임산부들이 자신의 몸매를 사진으로 남기는 열풍이 불기도 했다. 연예인들의 원색적인 화보 사진도 이제는 누구나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일부 연예인들의 경우 세미 누드 촬영도 불사하는 대담함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복귀작으로 누드 촬영을 선택 하기도 한다. 지상파 드라마에서도 낯 뜨거운 장면들이 연일 방송되면서 선정성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성의 상품화가 극에 달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공연계에서는 이제껏 누드에 관대해 왔던 게 사실이다. 연극 <미란다>를 시작으로 해서 최근에는 연극<논쟁>, <교수와 여제자>까지 많은 작품들에서 배우들의 알몸 연기가 화제를 낳고 있다. 대한민국에 불고 있는 성의 상품화 바람. 그 내면을 들여다봤다.

대중문화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선정성 논란이다. 영화의 경우 나이 제한을 두고 관람객을 들여보내기 때문에 다소 나은 편이다. 하지만 지상파 드라마의 경우는 다르다. 누구나 TV를 켜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시작한 한 방송사의 월화미니시리즈의 경우 방송 첫 회부터 선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수위 높은 베드신 장면과 술집 장면 등에서 시청자들의 강한 비난을 샀던 것. 여주인공이 술집 테이블 위에 올라가 민망한 춤을 추는 장면과 남녀 배우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정사 장면 등이 고스란히 전파를 타고 안방을 파고 들었다.

한 대중문화 전문가는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지상파 드라마에 너무 조잡한 장면이 포함돼 있어 바람직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지킬 선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비단 TV 드라마에서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연예인들의 수위 높은 화보집은 이미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해 누구나 손쉽게 볼 수 있는 하나의 컨텐츠로 자리 잡았다. 김완선, 권민중, 이혜영 등은 자신의 상반신을 그대로 노출한 화보집을 낸바 있다.

1990년대 까지만 해도 누드집은 에로배우들의 몫이었다. 그것도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아주 가끔씩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정보통신의 발달은 연예인들의 화보집을 이끌어 냈다. 누구나 갖고 있는 휴대폰을 통해 연예인들의 다소 과한 비키니 화보집을 다운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문화연대 이동연 차장은 “과거에는 이미지를 이유로 연예인들은 옷을 벗는 게 금기시 되어왔다. 하지만 인터넷과 모바일의 발달로 누드와 같은 성적 상품을 이제 소비의 한 형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화보집은 이제 하나의 컨텐츠로 자리 잡았고 이는 곧 연예인들의 대박신화로 이어져 더욱 부채질 하고 있는 상황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바일 화보집을 내놓고 있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연예인들을 시작으로 레이싱걸, 일반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바일 화보집을 내면서 성의 상품화에 일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화보집 관련 관계자는 “화보집은 단계별로 나눌 수 있다.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의 경우 다소 노출이 적은 상태에서 화보를 찍는다. 하지만 그 외에는 수위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연예인들의 누드화보 촬영은 이제 일반인들에게까지 불고 있다. 지난 여름 일본에서는 임산부들의 누드 사진 찍기 열풍이 불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평생 한명의 자녀만을 출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신의 임신한 몸매를 간직하기 위한 임산부들이 늘어난 것이다. 일본의 이 같은 현상도 일본의 모 배우가 임신 7개월 만삭의 몸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사진을 찍어 공개하면서 더욱 증가했다는 게 일본 전문가들의 판단이었다.

한 대중문화 평론가는 “연예인들이 누드화보집을 찍으면서 누드가 더 이상 연예인들만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생각을 일반인들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더 이상 누드는 넘지 못할 선이 아닌 자신만의 표현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공연계 누드는 이미 오래전 일

공연계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누드 공연이 올려진 바 있었다. 1990년대 연극 <미란다>는 당시 가학적인 성행위 장면 등 선정성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결국 경찰 조사를 받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일으키기기도 했다. 당시 연출과 주연을 맡은 문신구 감독은 “당시 내 공연은 공연법에 걸린 것이 아니라 미풍양속을 헤친다는 이유로 풍속법에 걸렸다. 이는 말도 안되는 것이다. 이후 많은 공연에서 누드 공연이 이뤄져 왔다. 하지만 누드는 절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작품성과 완성도가 어떤가가 문제일 뿐이다”고 말했다.

또한 문 감독은 “이를 욕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관객들 뿐이다. 외설이라고 욕을 먹고 지탄을 받는다고 해도 재미가 있으면 관객들은 찾을 것이다. 관객들의 평가에 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후에도 연극계에서는 노출과 관련된 선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여름 초연을 시작해서 2번째 연장 공연을 성황리에 끝마친 연극 <논쟁>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교수와 여제자>라는 다소 농염한 타이틀의 연극도 관객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공연계의 누드 바람에 예술로서 봐야 한다는 시각과 다른 한편에서는 관객들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외설이라는 엇갈린 의견을 내놓고 있다. 연극계의 외설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성의 나체 모습이 무대 위에서 보여진 바 있다. 이럴 때마다 각종 언론에서는 외설이냐 예술이냐를 놓고 날선 공방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냥 벗긴다고 해서 공연이 성공하지는 않는다. 그 만큼 완성도도 높아야 한다.

개그맨 출신 제작자인 백재현씨가 내놓은 <오!제발>은 애초 과감한 노출 수위를 바탕으로 마케팅을 해 화제를 모은바 있다. 하지만 실제 공연에서는 다소 맥 빠진 노출로 관객들의 항의를 받았고 결국 5일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최근 무대에 오른 <교수와 여제자>는 교수와 여제자의 은밀한 사생활에 대한 테마를 중심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포스터에도 이를 말해주듯 선정적인 문구로 관객들을 자극시키고 있다.

지난 8월 초연을 한 이후 연일 매진을 기록하고 있는 연극 <논쟁>의 폭발적인 관객동원은 가히 놀라울 따름이다. 4명의 남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 1시간 가량 무대 여기저기를 누비는 이 공연은 처음부터 외설논란이 일었다.

연극계의 한 관계자는 “연극 <논쟁>은 4명의 남녀가 알몸으로 출연해 화제를 낳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단지 옷을 벗었다는 것만으로 관객들이 찾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 많은 의미를 내포하면서 관객 스스로에게 자극적이라기보다는 누드는 하나의 수단일뿐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고 평했다. 연극 <논쟁>을 보러 온 많은 관객들은 거의 대부분 호기심에 공연장을 찾았다고 말한다. 지난 21일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연극 <논쟁>의 극장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누드 공연을 보러 가는 사람들

자영업을 하는 54세 이 모씨는 “언론에서 처음 이 공연을 목격하고 호기심에 한 번 보고 싶었다. 집사람에게 함께 가자고 했더니 부끄럽다고 거절해 혼자 오게 됐다. 이제껏 한 번도 공연을 본 적이 없어 인터넷으로 예매하는 방법을 물어 보기까지 했다. 기대 반 호기심 반에 공연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다른 한쪽에는 직장인들로 보이는 남녀가 간단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 대기업의 예술동호회원들이었다.

한 회원은 “궁금증과 호기심에 공연을 보러 왔다. 오랜만에 공연을 보러 와서 기대감도 있다. 워낙 인기가 많은 공연이라 더욱 기대 된다”고 말했다.

간혹 여성들끼리 공연을 보러온 관객들도 보였다. 30대 영등포에 거주하는 이 여성은 “<논쟁>에서 남녀의 알몸 연기에 대한 찬반 논쟁이 뜨겁다고 들었다. 외설이냐 예술이냐는 결국 관객들의 평가에 달렸다고 본다. 과연 극의 완성도가 얼마나 좋을지 유심히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호기심에 공연장을 찾았다는 반응이었다.

연극 <논쟁>은 인간의 아주 원초적인 질문을 던진다. ‘남 녀 중 누가 먼저 변심할까’라는 질문을 토대로 공연은 시작된다. 4명의 주연 배우들은 모두 알몸으로 연기를 펼쳐 첫 공연부터 외설 논쟁이 일었다.

하지만 공연을 본 대다수의 관객들은 외설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공연을 본 후 40대 부부 관객은 “처음엔 누드라는 것 때문에 호기심에 공연을 보러 왔는데 누드는 이 연극에서 꼭 필요한 수단이었다. 배우들의 집중된 연기력이 외설이라고 생각 들지 않게 만들었다”고 극찬했다. 50대의 한 남성도 “내 나이 또래 사람들에게 누드 공연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연극 <논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알몸 연기를 한 배우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공연이 끝난 후 연극 관계자는 “솔직히 우리도 이렇게 성황을 이룰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자칫 오해를 받아 외설 연극으로 비쳐질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연을 본 많은 관객들과 전문가들이 좋은 평가를 내려서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누드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극의 완성도를 높인다면 관객들은 이를 외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강내희 중앙대 교수는 “사회가 개방되면서 영화 등에 과거보다 욕설이 많이 등장하는 것처럼 누드도 이제 공개해도 큰 문제가 없다는 사회적 내성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문화의 누드 바람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런 누드 열풍이 성의 상품화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더욱 확실한 경계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상준 기자] sky0705in@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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