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수퍼달러로 대변되는 달러 강세에 국내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에 촉각이 쏠리고 있다. 현재는 전 세계적인 경기 불황 속에서 유독 미국만 회복세를 나타내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에 글로벌 유동성이 미국으로 집중될 가능성이 나타나면서 국내에 유입된 자금도 빠져나갈 공산이 커졌다. 여기에 국내 기준금리 인하라는 변수가 겹치자 기존의 단순한 셈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복잡한 시뮬레이션이 연출되고 있다.

회복되는 미국과 수퍼달러떨고 있는 신흥국들
한은 기준금리 깜짝 인하원화 약세 가속도 붙어

현재의 강달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해 양적완화 종료를 선언한 데 이어 이달 금리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탓이 크다. 글로벌 경제에서 미국을 뺀 대부분의 나라가 아직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달러의 급부상은 신흥국들에 다소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만약 미국 연준이 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곧 기준금리를 인상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하면 달러가치는 더욱 치솟게 된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에 따르면 달러화 상승 속도는 최근 40년을 통틀어 두 번째로 빠를 정도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사상 최초의 1%대 금리시대를 맞게 됐다. 한국은행이 지난 12일 기준금리를 1.75%로 깜짝 인하한 것이다. 이는 내수 경제를 조금이나마 받쳐주는 기전으로 작용하나 기존 달러 강세에 원화 약세를 더욱 부추길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원화 하락 속도는 아시아 국가 중 톱을 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금융시장에 따르면 원화는 이달 초부터 지난 10일까지 달러당 1096원에서 1122.6원으로 움직였다. 이는 열흘 만에 2.39%의 변동폭으로 같은 기간 일본 등을 제치고 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속도였다.

게다가 기준금리 인하 발표 전후로는 더욱 큰 변동폭을 기록했다. 금리 발표일인 지난 12일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5.0원 오른 달러당 1131.5원으로 시작했다. 이는 18개월 만에 달러당 1130원대에 진입한 수치다.

또 금리 발표 직후에는 달러당 1136.4원까지 치솟는 모습도 보였다. 이후 차익 실현을 원하는 달러 매도 물량이 대거 나오면서 1126.4원으로 마감하긴 했지만 향후에도 원·달러 환율 상승세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수출 확대 효과
셈법 복잡해

통상적으로 원·달러 환율 상승은 그간 국내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해왔다. 수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국내 산업구조에서 원화 약세는 곧 수출 확대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 세계적인 경기불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만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 단순한 셈법이 통하지 않을 요량이다. 이에 전문가들도 지속적인 달러 강세가 궁극적으로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기대보다 수출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고 글로벌 자금이 신흥국에서 빠져나갈 수도 있어서다.

한국금융연구원은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의 통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수출 확대 효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도 신흥국으로부터의 자본유출 우려가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 확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짚었다.

또 일본의 엔저 기조가 겹치면서 국내 기업들이 수출이 늘어나더라도 바로 반감될 가능성도 언급했다. LG경제연구원은 달러에 대한 엔화 절하가 원화 절하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강달러로 인한 엔저가 자동차·철강·화학 산업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반면 달러 강세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증권가에서 강했다. 이영원 HMC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달러 강세 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원·달러 환율의 상승 기조 역시 연장되면 낮은 유가와 더불어 국내 기업이익에 긍정적인 환경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더불어 류용석 현대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달러 강세 및 유로화 약세 조합이 이어진다면 수출 가격 경쟁 측면에서 환율에 민감한 대형주들의 의미 있는 반등 시점은 더욱 지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로화·엔화
동반 약세 언제까지

이 같은 달러 강세에 유로존과 일본의 자국통화 약세 전략이 겹치면서 글로벌 환율전쟁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도 관심사다. 이미 미국의 연내 기준금리 인상은 기정사실화된 상황이다. 더불어 유럽과 일본은 경쟁적으로 금리를 인하하는 등 양적완화를 더욱 확대하고 있다.

특히 유로화의 하락세가 뚜렷해지면서 곧 1달러와 1유로의 가치가 같아지는 ‘1달러=1유로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유로·달러 환율은 지난 121.05달러를 하회하며 12년 만에 유로화 최저치를 알렸다. 이는 달러화 강세에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가 겹쳐서 빚어낸 수치다.

이대로 가면 달러와 유로의 가치가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달러가 유로보다 비싸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독일 도이체방크는 향후 유로화 가치가 2016년 말까지 유로당 0.9달러, 2017년 말에는 유로당 0.85달러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외에도 모간스탠리, 골드만삭스, 씨티그룹 등은 달러와 유로의 1:1 패러티가 2016년에 나타날 것으로 일제히 예견했다.

한편 국내 기준금리 인하를 두고 의도적인 원화 가치 절하가 국내 경기부양보다는 수출경쟁력 향상을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일부 글로벌 이코노미스트들은 그간 한국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해온 것을 들어 이번 금리 인하도 원화 약세 유도와 관련 있다고 평가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한국 금리인하에 따른 내수 진작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수출 측면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지적했다.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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