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경사 ‘왕따 낙인’에 두 번 죽었다

지난 14일 전도유망한 현직 경찰관이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일 언론은 일제히 숨진 A(33) 경사가 동료들의 ‘왕따’를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보도했다. 민족의 명절인 설날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에 누리꾼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일요서울] 취재결과 A 경사의 죽음 이면에는 또 다른 내막이 숨어 있었다. 유족들과 경찰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왕따로 인해 자살을 결심했다’는 보도내용은 처음부터 ‘오보’였다. 현재 A 경사의 자살 동기를 놓고 유족과 경찰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유족들은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경찰 측은 “가정생활에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맞서고 있다. 한편, A 경사는 지난해 6월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승진 가도를 달리던 현직 경찰관은 왜 명절날 세상을 등져야 했을까. 사건의 내막을 집중 취재했다.

[일요서울]이 확인한 결과 A 경사는 동료 사이에서도 매우 신임이 두터웠다. 업무적으로도 뛰어날 뿐 아니라 과묵한 성격으로 좀처럼 힘든 내색을 보이지 않는 우직한 성격이었다는 것이다. ‘경찰 내에서 왕따를 당했다’는 언론 보도는 사실과 매우 다른 셈이다.


“과묵한 성격에 일 잘하는 재원”

A씨는 지난 2002년 9월~지난해 4월까지 청와대 경비대에서 근무했다. 비간부 경찰관들 사이에서 소위 ‘엘리트 코스’로 여겨지는 이곳에서 A 경사는 탁월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다. 지난해 4월 경사로 승진한 그는 서울 망원지구대로 자리를 옮겼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경사 진급까지는 보통 10~15년 이상의 경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30대 초반의 A 경사는 경비대 근무 6년여 만에 진급해 동료에 비해 승진이 빨랐다. 그러나 유족들은 A 경사가 경비대 소속으로 근무하던 중 과중한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다고 전했다. 빠른 승진 이면에 업무와 관련해 엄청난 중압감이 있었다는 얘기다.

A 경사의 고모부 C씨는 “조카가 숨진 것은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과로사로 봐야 한다”며 “경찰 조직이 조카의 죽음을 개인적인 문제로만 몰고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C씨가 공개한 A 경사의 정신과 상담 기록에는 ‘갑작스런 업무 환경 변화와 직책에 대한 중압감으로 인해 스트레스성 과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돼 있다.

그러나 A경사가 근무했던 망원지구대 측 주장은 달랐다. 근무 여건이 열악하지도 않을뿐더러 동료들끼리 관계도 좋았다는 것이다. 지구대 관계자는 “이곳(지구대) 업무가 자살을 결심할 만큼 과중하지 않다”며 “경사 직급이 그리 높은 직책도 아닌데 따돌림을 당하거나 압박감을 느낄 만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A 경사가 평소 조용했고, 일에 대해 힘든 내색도 전혀 하지 않았다”며 “그가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왕따설’ 부인이 언급?

그렇다면 언론에는 왜 A 경사가 ‘왕따’에 시달리다 자살한 것으로 보도됐을까. 언론에 ‘왕따설’을 처음 언급한 것은 A 경사의 부인 B씨였다. 그나마도 B씨의 말이 와전되면서 오해를 불러온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기자를 만난 B씨는 “남편이 경사로 진급하면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B씨는 “남편이 동료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말은 한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일부 매체가 초고속 승진을 한 A 경사의 상황을 토대로 ‘추측성 기사’를 쓴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 A 경사의 정신과 상담내용 중 동료들과 불화를 언급한 대목은 전혀 없다. C씨는 “(A 경사가)왕따를 당할 아이도 아니고, 상담 기록에 사람들에게 시달렸다는 내용이 없다”며 “경비대에서 일했던 애를 갑자기 지구대로 발령 낸 경찰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못 박았다.

A 경사와 청와대 경비대에서 함께 일한 동료 D씨는 “그가 종종 ‘경비대 시절이 좋았다’고 이야기한 적은 있다”고 전했다.

A 경사의 죽음을 둘러싸고 유가족과 경찰 측 주장이 엇갈리는 부분은 또 있다. A 경사가 가정문제로 고민하는 것 같았다는 동료들의 증언이 나온 것이다. 이에 유족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고 있다.

A 경사 사망사건을 조사 중인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일부 동료 경찰들이 A 경사가 가정불화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본지 취재에 응한 A 경사의 동료들은 그의 ‘가족문제’를 거론했다.

D씨는 “그와 겨우 하루 일해 봤기 때문에 잘 알지 못 한다”면서도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A 경사가 마포서 근무를 시작한 첫날 그의 가족이 심각한 분위기로 찾아왔었다”고 말했다.

D씨에 따르면 지난 8일 A 경사는 동료들과 당구 한 게임을 즐긴 뒤 중국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그런데 A 경사의 부인과 자녀, 처제 등이 식당으로 그를 찾아왔고 A 경사는 그 길로 귀가했다는 것. D씨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마포경찰서의 또 다른 관계자도 가정불화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이 관계자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가족 문제가 있었지 않나 싶다”며 “설 연휴인데도 A 경사의 부인이 친정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유족들의 반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 관계자는 “장례식장에서 부인과 A 경사 부친이 우리(경찰)에게 ‘고맙다’며 ‘이번 사건이 크게 공론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A 경사의 부친 역시 오랫동안 공무원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살 1주 전 가족들 찾아와”

그러나 유족 대표인 C씨는 “경찰이 터무니없는 억측으로 고인과 유족을 모함하고 있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가정불화는 결코 없었다. 정신과 상담 내용에도 이런 내용은 단 한 마디도 안 나온다”고 못 박았다.

C씨는 또 “조카는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그런데 경찰은 가정불화 운운하며 사태를 호도하려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이 과중한 업무 부담감으로 야기된 ‘순직’을 개인 신상문제로 치부하려 한다는 얘기다. A 경사의 자살동기를 둘러싼 조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처음 논란이 된 ‘왕따 설’은 오보였던 것으로 일단락 됐지만 유족과 경찰 측의 갈등은 여전하다. 유족들은 A 경사의 정신과 상담기록을 근거로 그의 죽음이 ‘업무상 재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C씨는 “일하다 사망한 사람이니 당연히 ‘순직’으로 처리돼야 한다”며 “만약 이런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경찰에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정 기자] hohokim@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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