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삼각관계, 살인청부 불렀다”


최근 ‘저승길 동무’를 모으는 자살 커뮤니티가 유행처럼 번지는가 하면 죽음을 원하는 이들에게 극약을 팔아넘기며 사실상 죽음을 부채질하는 장사꾼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바야흐로 ‘죽음을 권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과거부터 사람 목숨을 거래하는 사냥꾼은 존재해왔다. 1980년대 초 본격적으로 언론지상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청부살인’이란 용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청부업자로 불리는 이들은 살인을 꿈꾸지만 직접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을 고객 삼아 대가를 받고 기꺼이 손에 피를 묻힌다. 개인적인 분노와 뭉칫돈에 눈이 먼 고객들은 갖가지 루트를 통해 ‘자객’을 물색하고 일부는 목적을 달성하기도 한다.

35년차 베테랑 형사 출신 손진태 경감(74)은 인간의 욕망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청부살인극을 뽑아 기자에게 건넸다. 은밀한 삼각관계의 비극을 담은 사건 속으로 들어가 보자.

1965년 경기도경 감식계 창설멤버이자 인천시경 강력주임, 부평경찰서 강력계장을 거친 손 경감을 만난 곳은 구도심(舊都心)의 흔적이 물씬 풍기는 인천 제물포의 한 찻집이었다.

손때 묻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손 경감은 칠순을 넘겼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동안이었다.

현장감식(현 과학수사계)요원 출신으로 35년 간 수사파트에서만 근무한 그는 20여 년 전 사건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너무 ‘깨끗한’ 시신

“1991년 5월로 기억합니다. 부평경찰서 형사계장 시절이었는데 아침 댓바람부터 비상출동 명령이 떨어져 후배들과 함께 현장으로 나갔지요.”

인천 효성동 인근 한 단독주택 앞은 구경꾼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었다. 개발 전이라 시골티가 적잖이 나는 곳이었다.

손 경감이 주민들 사이를 헤치고 들어서자 칠이 약간 벗겨진 철제 대문 앞은 시커먼 피바다였다. 진득한 피 웅덩이 가운데 남자가 등을 보인 채 엎어져 있었다. 숨이 끊어진 게 확실했다.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30대 중반 여인이 형사들을 맞았다. 숨진 남자의 아내 P여인(당시 34세)이었다. 대문 앞에서 주검이 된 남편을 맞은 그는 반쯤 혼백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어린 아들을 붙들고 연신 몸을 덜덜 떠는 P여인은 형사들의 동정을 사기에 충분했다.

“부인이 최초 신고자이자 유일한 목격자였습니다. 남편이 간밤에 외박을 해 기다리다가 선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대문 밖에서 비명이 들리더랍니다. 여자 홀몸으로 나가보기가 너무 겁나 귀를 막고 버텼다더군요. 비명이 그치고 한참 뒤에야 문을 열어봤는데 남편이 쓰러져 있더랍니다. 비명의 주인공이 바로 남편이었던 거지요.”

확인결과 피해자는 당시 36세의 K씨로 인근에서 제법 큰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었다.

K씨는 예리한 흉기로 복부와 가슴을 각각 2군데씩 찔린 뒤 실혈사(과다출혈)한 것으로 밝혀졌다. 중산층의 평범한 가장인 그가 집 앞에서 칼을 맞았다면 돈을 노린 강도 소행이거나 원한에 의한 범죄일 수 있다. 그러나 손 경감은 섣불리 단언할 수 없었다.

“시신이 생각보다 너무 깨끗하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먼저 강도를 당했다고 보기엔 없어진 물건이 전혀 없었습니다. 또 원한관계라고 하기엔 범인이 피해자를 너무 ‘곱게’ 다뤘더군요. 보통 피해자에게 악감정을 가진 경우 시신을 참혹하게 도륙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김씨 사건에서는 이런 특징이 전혀 없었습니다.”

원한과 치정, 강도행각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탐문이 시작됐다.


얕은 관계 속 유일한 키워드 ‘女’

손 경감은 김씨 품에서 나온 작은 수첩 한권을 시작으로 피해자의 인맥도를 만들었다. 문제의 수첩에서 나온 전화번호는 10여개에 불과했다. 부동산중계업으로 다양한 인맥을 다질 만도 한데 김씨는 의외로 인간관계가 좁았다.

“지인, 친구들을 모두 수소문했는데 하나같이 피해자에 대해 잘 모른다며 빼더군요. 그런데 한 명으로부터 피해자에게 숨겨둔 여자가 있는 것 같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유일한 돌파구라는 생각에 강력반원 16명을 총동원해 피해자 주변을 뒤졌지요. 알고 보니 본가 지척에 있는 아파트에 내연녀를 숨겨뒀더군요.”

수많은 가설 가운데 하나, 치정관계라는 힌트가 더해졌다. 수사는 급물살을 타는 듯 했다. 그러나 내연녀 B여인은 피해자와의 관계를 처음부터 잡아뗐다. 25세의 회사원인 그녀는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터였다.

“설마 형사들이 사건 관계자의 말만 믿었겠습니까. 이웃 주민들을 통해 B여인과 그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앞서 파악했지요. 이웃들 증언에 따르면 아파트에 피해자로 보이는 남성이 한달에 몇 차례씩 수시로 드나들었다하더군요.”

이 같은 정황을 확보한 수사팀은 B여인을 통해 김씨의 죽음과 관련한 미스터리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피해자가 살해되기 얼마 전 낯선 남성 2명이 B여인의 아파트 현관 열쇠를 따는 모습을 봤다는 제보도 접수된 상황이었다.

“결국 B여인이 실토를 했는데 3년 전부터 김씨에게 생활비를 받아가며 내연관계를 유지했다는 겁니다. 문제는 B여인의 집 문을 딴 남자들이 과연 누구냐는 거였습니다. B여인은 열쇠수리공을 부른 적이 없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얄팍한 피해자의 인간관계를 뒤지다 발견한 유일한 키워드는 내연녀였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녀의 사생활을 엿보려는 시도를 했다. 수사팀은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곧장 부평구 일대 열쇠수리공을 총동원해 용의자를 추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건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수리공만 10000명 가까이 수소문했는데 나오는 게 없더군요.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 피해자와 가장 가까운 곳부터 수사를 되짚어가기로 했지요. 그제야 결정적인 단서가 손에 쥐어졌습니다.”


170만원 짜리 ‘은밀한’ 간이영수증

피해자 김씨의 자택 압수수색이 결정되자 수사팀은 배수의 진을 쳤다. 피해자의 연고지이자 사건 현장이기도한 그곳은 사건해결을 위한 최후의 보루였다. 아내 P여인은 남편의 소지품이라며 책과 일기, 편지 등을 알아서 내놓았다.

“P여인은 수사에 비교적 협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지요. 형사 중 한 명이 안방 화장대 서랍을 열려고 하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반색을 하는 겁니다. 이미 수색영장을 받은 상황인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안에서 수상쩍은 ‘간이 영수증’ 하나가 나온 겁니다.”

손으로 대강 흘려쓴 간이 영수증 한 장. 형사들은 구겨진 종이조각 하나도 넘겨볼 수 없었다. 더구나 영수증엔 당시로서는 거금인 170만원이 영수금액으로 적혀 있었다. 영수증을 발급한 업체는 실체가 없었다. 이름만 있는 유령회사였다는 얘기다.

“그때야 의심이 제대로 가기 시작하더군요. 혹시 청부살인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든 겁니다. 당시만 해도 한창 불법 심부름센터나 흥신소가 활개 칠 때니까요. P여인을 족쳤지만 모르는 일이라는 답만 돌아왔습니다.”

결국 수사팀은 인천 일대의 칼잡이를 비롯해 뒷골목 인맥을 들쑤실 수밖에 없었다. ‘백사장에서 김 서방’ 찾기나 다름없는 탐문에 지쳐갈 무렵 문제의 ‘유령업체’를 안다는 인물이 나타났다. 영수증을 발급한 곳은 예상 그대로 무허가 흥신소(심부름센터)였다. 의뢰인은 피해자의 부인 P여인이었고 그는 이미 반년 전 남편의 외도를 눈치 채고 있었던 것. 문제는 P여인이 흥신소에 의뢰한 ‘내용’이었다.


“누가 죽이라고 했어!?”

치졸한 대질심문이 이어졌다. 170만원의 현금을 지불하고 남편의 뒷조사를 부탁한 사모님과 젊은 내연녀의 뒤를 밟던 심부름센터 직원과의 공방이었다.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같은 질문을 해도 서로 ‘저 X에게 물어보라’며 눈을 부라리더군요. 결국 자리를 옮겨 유도심문을 벌였지요. 그 결과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습니다.”

손 경감에 따르면 사건은 의뢰인과 흥신소의 ‘소통부족’이 부른 비극이었다. 사건 발생 6개월 전인 1990년 11월 P여인은 남편의 행동이 수상쩍다는 것을 눈치 채고 알음알음으로 흥신소 문을 두드렸다.

처음 P여인이 의뢰한 것은 남편에게 정말 다른 여자가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후 직원이 두 남녀의 밀애 장면을 포착한 사진을 들고 오자 P여인은 이성을 잃었다. ‘당장 두 연놈 중 아무나 좋으니 혼내주라’며 착수금 외에 170만원을 건넸던 것.

그러나 전업주부였던 P여인은 거액을 한꺼번에 지출하는 것이 꺼려져 흥신소 측에 차용증을 써줄 것을 요구했다. 그렇게 작성된 게 화장대 서랍에서 발견된 구겨진 간이영수증이었던 것이다.

“사건을 의뢰한지 수개월이 지나도록 남편의 행동이 변하지 않으니 P여인도 조바심이 났겠지요. 그 동안 흥신소 직원이 내연녀의 아파트에 침입해 겁을 주려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했다더군요. ‘죽이라’는 요구는 없었지만 의뢰인 성화에 못 이겨 흥신소 직원은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었던 겁니다.”

피해자의 금품이 온전했던 이유도, 살해 과정이 덜 잔혹했던 것도 목적을 위한 ‘청부살인’이었던 까닭이었다.

은밀한 삼각관계를 벗어나고자 했던 조강지처의 염원은 남편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돌아온 셈이다.

“참고인 조사만 1000명이 넘은 사건이 마침내 해결은 됐지만 속은 쓰리더군요. 35년 간 ‘인생막장’이라 불릴 법한 순간을 수없이 봐왔지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과거의 사건파일을 털어놓은 손 경감은 깊은 한숨과 함께 최근 세태에 대한 일침을 잊지 않았다. 과거에는 이처럼 불법 심부름센터와 조직폭력배 등 베테랑들이 ‘해결사’ 노릇을 한 반면, 최근에는 돈이 궁한 철부지들이 ‘초보킬러’로 분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상당수다.

“증오와 질투,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악감정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지만 적어도 남의 생명을 돈 몇 푼으로 좌지우지할 수는 없지요. 더 충격적인 사건을 다루기 전 은퇴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못난 생각입니까?”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1980년대 ‘희대의 청부살인’

청부살인이라는 용어가 신문지상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희대의 청부살인사건을 꼽아봤다.


‘회사 찬탈음모’
서울관광사장 청부살해 사건 (1980. 12)

지난 1980년 12월 9일 서울 성북경찰서는 당시 진기식 서울관광사장을 살해한 혐의로 문모씨와 살인을 교사한 서울관광 상무 김모씨를 구속했다. 당대 굴지의 관광회사를 무대로 한 상무의 회사 찬탈음모는 상당한 화제였다.

김씨는 진 사장을 살해하는 조건으로 문씨에게 900만원의 현금과 진 사장의 사진, 자택 약도 등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세금 90만원 더 낸 게 억울해서”
서울 세무원 청부 살해사건 (1981. 8)

국가 공무원이 청부살인의 목표가 된 경우도 있었다. 지난 1981년 8월 당시 서울 북부세무서 공무원 강정근씨 살해사건은 94만원의 세금을 추징당한 직물상인의 청부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

서울 동대문 경찰서는 1981년 8월 강씨에 대한 살인을 의뢰한 동대문시장 직물상 김모(당시 35세)씨와 살해과정을 총괄한 부동산업자 이모(당시 36세)씨를 비롯한 하수인 3명을 검거했다.

당시 김씨는 “신고한 금액 외에 세무사찰을 받는 바람에 94만원을 더 추징당하자 악감정이 생겼다”고 범행동기를 밝혔다. 김씨는 수사망이 좁혀오는 중에도 부산에서 느긋하게 해수욕을 즐긴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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