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리콜 사태의 본질은 ‘살계급후간(殺鷄給猴看)’


최근 도요타 리콜 사태가 설상가상이다. 도요타 측에서 가속 페달을 ‘자발적 리콜’한다고 발표할 때까지만 해도 통상적인 자동차 회사의 리콜 조치로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미정부의 폭로로 예측 못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레이 러후드 미 교통장관은 리콜 조치를 위해 일본 본사까지 가서 설득하여 얻어낸 결과라며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지 않았으면 리콜을 했을지 의문”이라며 잠잠해 지는 여론에 휘발유를 부었다. 신뢰의 대명사였던 도요타는 치명적인 일격을 당한 것이다. 일개 기업 활동에 대해 미국 정부가 전례 없이 전면에 나서면서 그 배경이 주목되고 있다.

차길진 회장(사단법인 후암미래연구소)은 도요타 리콜 사태에 대해 ‘살계급후간(殺鷄給 看)’이라며 운을 뗐다.

‘살계급후간’이란 닭을 죽여 원숭이를 잡는다는 중국 속담이다. 사람 머리 위를 날아다니며 시끄럽게 꽉꽉거리는 나무위의 원숭이를 어쩔 수 없을 때, 원숭이 보는 앞에서 산 닭의 목을 비틀어 바닥에 내동냉이쳐서 원숭이들을 공포에 질려 조용하게 만든다는 뜻으로, 본보기를 보여 여러 상대방을 제압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차 회장은 “사람이 만든 기계는 완전할 수 없으며, 반드시 결함이 있기 마련”이라며 “그래서 자동차는 리콜을 통해 이를 보완했다. 그래서 리콜은 오히려 신뢰의 상징처럼 여겨왔다. 하지만 그동안 수천 건이 넘는 도요타 리콜 사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문제 삼는 건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 말했다.


경제계 일각에선 도요타가 미 자동차 ‘빅3(제너럴모터스, 포드, 크라이슬러)’와 공존하지 못하고 이를 삼키려한 것에서 화(禍)가 비롯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즉 ‘선을 넘은 대가’라는 것이다. 이번 리콜 사태는 자동차 회사 도요타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미국의 모든 무역 상대국과 동맹국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라고도 볼 수 있다.

도요타 리콜 사태 후 빅3는 기다렸다는 듯 파격적인 도요타 자동차 교체 리베이트와 무이자할부 혜택을 발표하며 매출액 목표를 60%이상 늘려 잡았다. 최근 판매량은 실제로 20~30% 급증했다.


‘절인 연어 알’ 너무 먹은 도요타

오바마 정부의 행보는 이 사태를 예고한 것이나 다름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동차노조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오바마는 작년 6월 제너럴모터스(이하 GM)을 파산시키면서 사실상 국유화를 선언했다. 미 보수주의자들은 시장원리에 따라 GM을 공중분해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오바마는 대량실업을 막기 위해 막대한 재정적자를 감수하며 GM을 인수했다.

차 회장은 “미국은 경제적 우위를 선취할 목적 뿐 아니라 정치적인 무역보복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며 “도요타를 희생양으로 더 많은 원숭이들(경쟁 무역국과 동맹국)에게 경고하는 효과를 극대화하는 한편, 새로 들어선 일본 정부에 대한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차 회장은 도요타 자동차 사태를 두고 “시작을 알면 끝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차 회장은 “지금 도요타는 소금에 절인 연어 알을 너무 많이 먹었다”며 ‘북극 곰 사냥하기’를 예로 들었다.

사냥꾼이 엄청난 힘을 가진 북극곰을 정면으로 어찌할 수 없기 때문에, 소금에 잔뜩 절인 연어 알을 미끼로 던지면 곰은 사냥 대신 연어 알을 계속 먹고는, 나중에 목이 타서 물을 먹으면 곰 뱃속으로 들어간 연어 알이 불으면서 배가 불러와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되고, 그때 사냥꾼이 달려들어 잡는다는 곰 사냥법이다.

차 회장은 “미국=GM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도요타가 작년에 78년 만에 미국 제너럴모터스(GM)를 누르고 세계 자동차 1위 업체로 등극했던 게 화근”이 되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것. 하지만 지금의 리콜 사태는 ‘자동차 왕좌’를 둘러싼 신경전 이상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차 회장은 “도요타가 사냥감이 아니다. 도요타는 미끼에 불과하다. 새로 들어선 일본 정권이 궁극적 사냥감”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이유 있는 제동

차 회장이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이렇다.

일본의 만년 제1야당이었던 민주당이 54년 만에 정권을 교체한 이후 굳건했던 미일 동맹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오키나와현에 있는 주일미군 후텐마 비행장 이전을 둘러싸고, 일본이 2006년 미국과의 합의를 뒤집고 백지화하려는 데서부터 표면화되었다.

전후 일본은 미국의 세계 전략에 적극 동참했으나, 작년 자민당이 집권에 실패함으로써 독자적 목소리를 내려는 일본과 미국 간의 갈등이 예견되었다. 주일미군의 재편까지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미·일 ‘핵밀약’을 폭로하는 등 일본 민주당은 태평양 전쟁 후 굳건했던 미일동맹의 행보에서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차 회장은 “미국은 도요타의 약진을 방관하면서, ‘신뢰의 상징’이라고 더욱 부추겼고, 도요타는 기고만장하며 방심했다”며 “도요타 리콜은 GM 회생과 일본과의 동맹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미국의 노림수다. 일본은 미국의 연어 알 미끼를 먹고만 셈이다”라고 말했다.

또 차 회장은 “미국은 사회주의 붕괴 후 본격적인 신자유주의를 내세웠다가 모기지론 사태를 시작으로 한 금융자본주 자체 모순에 빠지자, 도요타를 희생양삼아 대내적으론 자국의 경제를 살리고, 대외적으로는 동맹국과 무역상대국들에게 본보기를 보여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기회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 자동차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자동차 업체들은 미국에서 10%이상 매출이 오르는 등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그러나 차 회장은 “‘이삭줍기’에 만족할 일도, 남의 집 불구경할 때도 아니다. ‘금지타사(今之他事)는 후지아사(後之我事)’다. 남의 일이 곧 내게 닥칠 일”이라며 “한국의 자동차도 다음의 타깃이 될 수 있다. 이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 미일 동맹이 흔들리는 틈을 타서 동북아 역학 균형에 실리적인 대응을 할 때”라고 충고한다.

참여정부의 공백기에 미·일은 전 세계의 시샘을 받을 정도로 밀월을 즐겼다. 그러나 일본은 정권이 바뀌면서 양국 관계가 금이 가고 있다. 미국은 반세기 이상 절친한 일본 같은 동맹국도 동맹에서 이탈하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를 보이려 하고 있다. 차 회장은 “(우리나라는)통일을 앞둔 시점에서 국익을 앞세운 가장 실리적인 외교로 동북아 역학 균형을 참여정부 이전으로 복원해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리=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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