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


한국 프로야구 원년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봐야할 책이 있다.

박민규 장편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유쾌하면서도 냉소적인 필체로 ‘야구인생’을 말한다. 하지만 작가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야구만이 아니다. 야구 속에 담겨진 진정한 인생이다. 소설을 읽는 동안 ‘어려운’ 소설과는 사뭇 다른 매력에 빠져든다. 작가의 유머러스함 때문이다.

그의 유쾌한 입담은 설탕 빠진 자판기 커피에 스타벅스 시럽이 들어간 것처럼 달콤하다. 그렇다고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작가는 1980년대 프로야구에 대한 기록을 상세히 기록했다. 작가는 소설속 주인공이 인생을 살면서 겪게 되는 사랑과 인생을 야구로 그려냈다.

소설은 1982년 1월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12살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소설 속 주인공 ‘나’와 동네 친구 ‘조성훈’은 3단 컬러로 인쇄된 ‘어린이 팬클럽 회원 대 모집’이라는 전단지를 보게 된다. 내용은 이렇다. <삼미 슈퍼스타즈 어린이 팬클럽 회원 대 모집, 중략… 어린이 팬클럽 회원께는 자랑스러운 어린이 회원 카드와 함께 다음의 선물을 드려요. ①삼미 슈퍼스타즈 스포츠가방 ②삼미 슈퍼스타즈 야구모자 ③삼미 슈퍼스타즈 야구잠바 ④삼미 슈퍼스타즈 선수 사인볼 ⑤삼미 슈퍼스타즈 컬러 스타카드 ⑥삼미 슈퍼스타즈 대형 브로마이드 ⑦삼미 슈퍼스타즈 선캡 ⑧삼미 슈퍼스타즈 방수 돗자리>.

이렇게 나와 조성훈은 인천을 대표하는 야구단 ‘삼미 슈퍼스타즈’의 초대 팬클럽 회원으로 활동한다. 나와 조성훈은 당시의 팬클럽 가입의 영광을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의 마음은 한 배에 오른 선원들처럼 단결해 있었고, 우리의 배는 저 망망대해를 갈로질러 영원한 영혼의 보금자리인 슈퍼의 세계를 찾아가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도 거센 폭풍우도 우리를 막진 못하리. 태양이 작열하면 삼미 슈퍼스타즈 선캡을 쓰고, 태풍이 몰아치면 삼미 슈퍼스타즈 방수 돗자리를 펼치리라’. 이들의 열망과는 달리 삼미는 연전연패를 한다. 이어 삼미는 프로야구 창설 이래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해 낸다. ‘기별 최저 승률(0.125 삼미 82년 5승 35패)’, ‘시즌 최저 승률(0.188 삼미 82년 15승 65패)’, ‘팀 최다 실점(20점)’, ‘국내 최초 사이클 히트’, ‘최대 득점차 역전승’, 말하자면 끝도 없다. 하지만 한번 마음에 둔 팀은 배신 안한다는 나와 조성훈. 결국 많던 팬클럽 회원들은 모두 떠나고 이들 둘만 남는다.

‘그것은 자장면 위로 영롱하게 머리를 내민 완두콩 끼리의 교신과도 같은 것이었다’, ‘우리의 슈퍼스타즈는 마치 지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온 패배의 화신과도 같았다. 오늘도 지고, 내일도 지고, 2연전을 했으니 하루를 푹 쉬고, 그 다음 날도 지는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삼미를 회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나와 조성훈은 각자의 인생을 살게 된다. 나는 명문대학에 진학했다. ‘소속이 인간을 바꾼다’는 그의 강한 신념 때문이다.

어린 시절 야구에 대한 기억은 사라졌다. ‘인간의 천성은 일자형 바지의 디자인만큼이나 클래식한 것이다’라며 나는 ‘질, 클리스토퍼, 신입생, 혹은 말로만 들은 게 아닌 귀두, 고환, 신입생이 있다’는 말을 뒤로하고 굳이 연설을 듣거나 투표를 하지 않았다. 10년 후에 분명 국회의원이 되어 있을 놈을 추대하기 위해, 저마다 노선이 중요하다는 둥 연설을 듣고 결심하겠다는 둥 법석을 떠는 모습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서다. 작가의 유쾌하면서 비판적인 시각이 잘 들어난 대목이다.

나는 대학시절 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난 첫사랑의 아픔을 뒤로하고 직장인이 된다. 결혼도 했다. 하지만 97년 외환위기는 그를 직장에서 내몰았고, 결국 이혼 뒤 혼자 남게 된다. ‘인생은 참으로 이상한 것이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들고, 쉽다고 생각하면 쉽다’

나는 이혼을 하고 실직을 당한 그 시점부터 인생을 쉽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하나씩 하나씩 할 일들이 생겨났다. 나는 하릴없이 하늘을 쳐다보는 습관이 생겨났고, 어느새 산보를 하며 하늘을 즐기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일과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하늘을 즐기면서 점점 낙천적인 인간으로 변해간다. 갑작스럽게 찾아와 함께 살게 된 어릴적 친구 조성훈은 삼미에 대한 해석을 늘어놓는다.

‘당시 정권은 이세상을 프로화 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그걸 눈치챈 유일한 존재는 삼미 슈퍼스타즈라고 설명한다. 그러다 삼미는 이미 스프링 캠프로 향하던 그 순간 이 야구가, 이 세상이, 모두의 삶이 어떤 판도로 흘러갈 것인가를 전부 예측했다고 덧붙인다.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며 조성훈은 갑자기 예전의 팬클럽을 다시 창단하자는 황당한 제안을 한다. 그렇게 탄생된 것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나와 조성훈은 이때부터 다시 어릴적 자신들의 삶처럼 ‘허접한’ 아마추어를 동경하게 된다. ‘진정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면서 삼천포로 떠나기도 한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정말 과거 삼미의 야구를 실제 구현하기로 한다. 10명의 ‘선수’가 모였다. 모두가 주변 인물들이다. 거의 한동네에 모여 살았다. 구성원 대부분이 건실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는 조기축구회와는 달리, 사회활동을 하지 않거나, 거의 하지 않거나, 무척이나 꾀죄죄한 사회 활동을 벌이는 인간들이다.

작가는 그것이 키포인트라고 말한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를 재현한다는 남다른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야구를 못할수록, 직장이 없을수록 대환영이었다. 허접해도 괜찮다.

작가의 말처럼 “치기 힘든 공은 안치면 그만”이니까. 2003년 발표된 박민규 장편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개미처럼 숨 가쁜 삶을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다시 한번 주목해볼 만한 작품이다.

소설가 박민규는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뒤 해운회사와 광고회사, 잡지사에서 일하다 지난 2000년부터 전업 작가로 나섰다. 이후 2003년 장편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지구영웅전설’로 한겨레문학상과 문학동네신인작가상을 동시 수상했고, 2007년 이효석문학상과 2009년 황순원문학상, 2010년에는 단편소설 ‘아침의 문’으로 제34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차지했다.

[전성무 기자] bukethead@nate.com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