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라시(사설정보지)는 ‘정보흉기’다. 음성적인 정보에 대한 지속적·과학적인 단속이 필요하다.”

6·2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사설정보지’(이하 찌라시)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2008년 故 최진실 사건이후 수사기관의 대대적인 단속 탓에 뜸해졌던 ‘찌라시 발(發)’ 악성루머가 지방선거를 기화로 정치권을 들쑤시는 까닭이다.

지난 9일 정병국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찌라시에 대한 당국의 단속 강화를 주문했다. 일각에서는 정 총장의 발언이 최근 일부 찌라시를 통해 여당에 불리한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세종시 문제와 친이·친박 간 공천 다툼으로 여권 내 파열음이 커지는 상황에서 유력인사를 둘러싼 ‘질 낮은’ 소문까지 여과 없이 다뤄지자 이에 제동을 걸 속셈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찌라시 내용 중 일부가 사실인 경우도 있다는 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아예 수사기관의 ‘찌라시 단속’ 목적은 유언비어 차단이 아닌 ‘진실은폐’라는 추측까지 불거지고 있다.

이달 초 유포된 찌라시에는 사설정보지와 ‘전쟁’을 선포한 정 총장 본인의 이름도 올라 있다. 그가 사무총장직을 울며 겨자 먹기로 떠맡았으며, 차기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MB, 유해진·김혜수, 장진영도 ‘사실’

찌라시에는 청와대 등 권력 기관의 인사 막후나 재벌 총수의 근황, 연예인 스캔들 등 사회 전 분야를 아우르는 내용이 담겨있다. 지난 2008년 배우 최진실을 자살로 몰고 간 ‘25억 사채설’도 찌라시를 통해 확산된 것이다.

대부분 확인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첩보, 루머 등으로 채워져 있지만 이 가운데는 수사기관에 의해 사실로 드러나는 것들도 적지 않다. 이건희 회장의 퇴진을 불러온 ‘삼성그룹 비자금설’과 ‘이명박 후보의 BBK 연루설’ 등은 ‘찌라시 발(發)’ 첩보가 진실로 확인돼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최근 열애사실을 인정한 유해진-김혜수 커플의 교제설도 지난 2007년 찌라시를 통해 처음 전해졌다. 또 지난해 세상을 떠난 장진영의 위암 말기 투병소식 역시 그의 입원 사실이 처음 언론보도를 탄 직후인 2008년 9월 찌라시를 통해 퍼진 것이다.

소속사는 당시 “아직 위암 초기이기 때문에 충분히 완치 가능하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고인이 사망한 뒤 “그땐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인정했다. 찌라시 내용이 그야말로 ‘팩트(fact)’였던 셈이다.

이처럼 찌라시에 실린 연예관련 루머들은 시간이 지난 뒤 사실로 드러날 때가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예 관계자는 기자가 건넨 찌라시 중 몇몇 항목을 짚어 “이건 사실이다. 많은 내용이 요약된 형태지만 기본적인 줄거리는 맞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보지 수준에 따라 다르지만 실제 업계 종사자들이나 기자들이 정보지 제작에 참여하는 만큼 ‘100% 거짓말’이라 몰아 부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선거 규모만큼 ‘찌라시’ 난립

정치·경제계 관련 루머가 수사기관에 의해 사실화되는 경우도 있다. 모 정치인의 학력위조설과 또 다른 인사의 제2금융권 비리 연루설 등은 검찰과 국세청 내사 결과 상당부분 진짜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엔 유명 언론인의 혼외자식설, 유부녀 톱스타와 거물 정치인 사이 ‘밀약’설 등에 대한 소문도 파다해 사실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근래 발행되는 찌라시에는 현 단체장들과 정치인들을 음해하는 내용이 넘쳐나고 있다. 여당 중진의원 몇몇의 비리 연루설과 정운찬 총리 조기 경질설, 한명숙 전 총리 출마와 검찰수사 관련 내용 등이 담겨있다. 사정 당국자들인 이귀남 법무장관, 김준규 검찰총장, 조현오 서울경찰청장 관련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한나라당 소속 모 광역단체장의 경우, 불법 자금 6억원을 여권 핵심인사로부터 건네받아 썼고 이를 모 언론매체가 기사화하려고 하자 광고로 틀어막았다는 소문도 최근 찌라시를 타고 광범위하게 퍼졌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 흠집 내기가 극성을 부리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지나친 정보수집이 ‘찌라시 폐해’를 더 키운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MB정부의 정보수집 활동이 상대적으로 왕성해지면서 일선 직원들의 정보보고 부담감을 키웠다는 것.

이 때문에 최소한의 여과절차도 거치지 않은 뜬소문이 확대 재생산되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불거지고 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pot.co.kr



#국정원 직원, 기자 등… ‘선수들은 안다’

한편 찌라시 제작 과정은 생각이상으로 복잡하다. 서울 여의도와 광화문을 중심으로 일주일에 ‘선수’들이 모여 모임을 갖고 본인들이 가진 정보를 교환해 각자 문서로 정리하는 식이다. ‘선수’의 출신성분도 다양하다. 기업체 정보 담당, 전·현직 국정원 직원, 국회의원 보좌관과 주간지 기자 등이 포함된다.

의원들이 청문회나 국정감사 등에서 ‘폭로’하는 내용 가운데 상당수는 해당 의원의 보좌관이나 비서관이 이 같은 정보모임에서 얻은 것들을 기반으로 한다. 모임 참석자들은 각자 4~5개씩의 정보를 갖고 모인다. 10~15명 규모의 모임에서 이들이 갖고 있는 정보를 모으면 60~70여개에 달한다.

찌라시 제작과정에서는 대부분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첩보’ 수준의 정보를 교환하며 필요할 때는 추가취재를 통해 내용을 보충하기도 한다. 이렇게 모인 정보는 참석자들이 또 다른 정보 모임에 참가해 내용을 재구성하고 살을 붙이며 시장에 유통된다.

과거에는 무료로 배포되는 정보지도 있었지만 ‘쓸만한’ 정보지는 한달에 30만~50만원 사이의 구독료를 지불하거나 수준이 비슷한 정보와 맞교환하는 식으로 손에 넣을 수 있다.

정치권과 수사기관이 찌라시 시장에 대한 단속의지를 더욱 강화하고 나선 가운데 업계에서는 가격 폭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기적으로 찌라시를 받아보는 한 기자는 “무분별한 루머가 퍼지는 것은 막을 필요가 있지만 자칫 더 은밀한 곳에서 비싼 가격으로 정보가 거래되는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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