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에 넘어가는 동국제강 페럼타워 뒷얘기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서울 강북 도심 내 유명 입지에 터를 잡은 기업들의 명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동국제강이 서울 을지로에 신축한 본사 페럼타워를 삼성생명에 매각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본래 해당 자리는 청계천을 끼고 있어 기업들이 흥하는 명당으로 소문나 있었다. 하지만 오너의 검찰조사 등 각종 수난을 겪는 동국제강을 보면 고개가 절로 갸우뚱해진다. 이에 일대 기업들의 역사가 다시 한 번 재조명되고 있는 실정이다.

시중은행 본점부터 사채업까지 금융의 명당
새 사옥 징크스 생길까긴장하는 하나은행

풍수지리에 정통한 이들에 따르면 물은 곧 돈을 뜻한다. 물이 흐르는 것은 곧 돈이 흐르는 것과 같다는 의미다. 서울에서 한강을 포함해 물이 흐르는 곳은 꽤 있지만 그중 청계천에 대한 평가가 으뜸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청계천의 물은 북악산, 인왕산, 남산의 물이 모여 만들어졌다. 셋 다 예로부터 기가 좋기로 유명한 산들이다. 또 청계천은 다른 곳과 달리 서에서 동으로 물이 흐른다. 여타 강과 하천들은 지형상 대부분 동에서 서로 흐른다. 시작부터가 범상치 않은 것이다.

삼성증권이 여의도에 
가지 않는 이유

때문에 서울 강북 도심에서도 사대문 안 청계천이 흐르는 곳은 황금 노른자위로 손꼽힌다. 세부적으로 보면 광화문과 명동, 을지로 및 종로 라인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일대는 기업은 물론 전 금융권이 눈독 들이는 입지로 손꼽힌다.

현재는 증권가를 낀 여의도의 세가 드높긴 하다. 그러나 예전만 해도 모든 금융은 주로 명동에서 이뤄졌다. 시중은행 본점부터 제3금융권으로 분류되는 사채시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명동에 기반을 뒀을 정도다.

아직도 일부 풍수학자들은 여의도의 입지가 금융권이 자리하기에는 다소 나쁜 것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한강이라는 물이 있지만 그 위에 인위적으로 만든 모래섬인 데다가 강바람이 심하고 사방이 뚫려 있어 돈을 담기에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일각에서는 동여의도를 기점으로 돌아가는 국내 증시가 부침을 겪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더불어 서여의도에 자리한 국회의사당과 당사 등 정치권이 피로감을 형성하는 것 역시 이와 관련 있다는 농담까지 나오고 있다.

들여다보면 대형증권사 중 삼성증권은 유독 본사를 여의도에 두지 않고 있다. 삼성이라는 기업 특성상 다른 대형증권사들보다 풍수지리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삼성증권 본사는 기존 종로타워, 현재 태평로 삼성본관으로 모두 청계천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증권업계 빅3인 삼성·대우·NH투자증권 중 모기업이 건재해 인수·합병(M&A) 이슈에 휘말리지 않은 곳은 삼성증권밖에 없다.

실제로 현 NH투자증권은 LG투자증권과 옛 우리투자증권 시절 타 금융사에 매물로 팔리면서 간판을 계속 바꿔달았다. 또 대우증권은 아직 산업은행 산하에서 매각이 이뤄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잘 나가는 증권사 중 삼성증권만 숨은 고민이 없는 셈이다.

센터원 등 신규사옥
풍수관과 다른 길 가

하지만 이 같은 풍수관에 금이 간 사례도 있다. 특히 한때 이름을 날렸던 미래에셋증권의 경우에는 다소 애매한 경우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성공신화는 펀드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만 해도 개인투자자들은 펀드에 가입한다면 무조건 미래에셋만 선호할 정도였다.

그러나 2007년 미래에셋의 대표상품이었던 인사이트 펀드 등 해외펀드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원금 대비 반토막이 났다. 이에 펀드의 대표격이던 미래에셋은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었고 고민 끝에 여의도에 남기기로 했던 증권사를 을지로 신사옥인 센터원으로 보냈다.

그럼에도 증권업계에서는 미래에셋이 다시금 전성기를 맞이할 것이냐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미 미래에셋이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본사를 옮겼어도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서다.

또 앞서 언급했던 센터원 옆 페럼타워도 풍수권의 예상을 약간 빗나간 경우로 분류된다. 동국제강의 본사인 페럼타워는 사명과 건물명에서 알 수 있듯이 철을 상징한다. 일반적으로 금()과 물()의 상생은 매우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동국제강은 전 세계적인 철강업종 불황이 지속되면서 근래 유동성 문제가 불거졌다. 여기에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의 비자금 논란과 부실 계열사 지분 문제로 직격탄을 맞기에 이르렀다.

결국 동국제강은 야심차게 지었던 페럼타워를 삼성생명에 매각하기로 했다. 주인이 바뀌면서 청계천 일대의 금융타워가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장 회장이 애초 선친 故 장경호 창업회장의 유지를 어기면서까지 옛 사옥을 허물고 새 사옥을 올린 것이 잘못이라는 이야기도 나돈다. 이쯤 되면 청계천의 좋은 입지를 끼고도 새 사옥 징크스가 탄생할 법하다.

옛 의금부 터 두고
발 뺀 KB금융

사실 새 사옥 징크스가 생긴다면 긴장해야 할 쪽은 하나은행이다. 현재 하나은행은 대운을 가져다 준 옛 하나은행 본점 사옥을 허물고 같은 터에 새 사옥을 짓고 있다.

알려져 있듯이 하나은행은 민간사채인 단자회사에서 시작해 을지로에 입성한 후 은행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이후 자신보다 큰 충청·보람·서울은행을 비롯해 외환은행까지 잇달아 인수하며 대표 시중은행 중 하나로 몸집을 불렸다.

이에 하나은행의 성장은 김승유 전 회장의 역할뿐 아니라 본점 입지도 다소 영향을 미쳤다는 소문이 돌곤 했다. 은행 내부에서도 이러한 이야기를 의식한 것은 과거 여의도로 잠시 금융지주를 이전하면서다. 당시 외환은행을 인수하려던 이른 시도가 여의도 이전 시기에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다.

현재 하나은행은 사옥을 짓는 동안 잠시 임대하는 은행 본점 사무실을 종각 그랑서울로 하는 등 청계천 주변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누구보다도 청계천을 낀 을지로의 효과를 체험했었던 하나은행이기에 택한 결정이라는 후문이다.

그렇지만 일대에 정통한 풍수학자들 사이에서는 하나은행이 그리 풍수를 중요시하지는 않는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임대한 그랑서울 자리가 조선시대 의금부가 있던 곳과 가깝다는 점에서다. 이들에 따르면 과거 고문 받다 죽어간 중죄인들의 원혼이 있어 해당 터의 기운이 세다고 한다.

이 때문에 타 대형금융지주인 KB금융은 원래 통합사옥으로 그랑서울을 점찍었다가 무산시킨 바 있다. 당시 경영진은 해당 자리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돌려 임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하나금융이 지주 일부를 제외한 은행 본점을 그랑서울로 잠시 자리잡게 한 것이다. 얄궂게도 원래 의금부 터에는 현재 스탠다드차타드은행 본점이 위치하고 있다.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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