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은 국회의원 재적 298명중 160석으로 전체 의석의 53.7%를 확보하고 있다. 그에 반해 새정치민주연합은 130석에 43.6%로 그친다. 의회정치의 기본은 과반수를 차지한 다수당이 입법을 주도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의회정치는 거꾸로 가고 있다. 다수당이 소수당에 끌려 다닌다. 다수결 원칙은 죽었고 소수가 지배한다.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새누리당이 바른 입법을 관철시키려는 소신도 없고 싸울 투지도 없으며 안일한 웰빙만을 추구한다는 데 기인한다. 새누리당에는 야당에 맞서 당의 정체성을 밀고 갈 근육질의 남자가 보이지 않는다. 마치 한 여름 해변가에 산책 나온 연인들 같다.

국회는 29일 행정부 시행령에 대해 수정과 개정을 통제할 수 있도록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는 이 5.29 국회법 개정에 따라 앞으로 행정시행령이 ‘법률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국회의 상임위원회는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고 행정기관은 그 요구를 처리하고 결과를 보고하여야 한다.’고 묶었다. 국회가 행정입법에 대한 새로운 통제 장치를 만든 것으로서 “행정입법권 침해“ ”입법부 독재“란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원래 5.29 국회법 개정 이전에는 행정부 시행령이 법률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국회는 행정부에 ‘통보’하고 행정부는 그에 대한 처리 계획과 결과를 관련 상임위에 보고하는 것으로 그쳤었다. 그러나 새 개정안은 국회의 ‘수정·변경을 요구’한 사안에 대한 ‘변경 처리 결과를 보고’토록 규정했다. 국회가 수정 ‘통보’에서 ‘수정 결과 보고’로 통제함으로써 행정입법권을 침해한 것이다. 제정부 법제처장도 “위헌 소지가 있다”고 했다.

자유민주 국가는 입법·사법·행정 3권분립 원칙에 기초한다. 국회는 독자적인 법률제정권을 갖는다. 그러면서도 행정부는 법률을 집행하기 위해 국회가 입법한 모법에 따라 시행령 법조항을 만들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행정시행령 입법권이다. 하지만 5.29 국회법 개정안은 국회가 기존의 행정부 시행령에 대해 수정 변경을 통제함으로써 행정입법권을 침해하게 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일 5.29 개정안이 발효되면 “국정은 결과적으로 마비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해질 것”이라고 반박하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야당이 행정부 시행령에 사사건건 수정 변경과 결과 보고를 요구함으로써 행정부 발목을 잡는다는 우려에서 였다.

더욱 문제는 160석의 새누리당이 “국정을 마비상태”로 빠트릴 5.29 개정안을 130석의 새정치연에 휘둘려 졸속으로 합의해 주었다는 데 있다. 이미 한 달 전 국회 운영위 소위에서 위헌성이 제기돼 논의를 보류했던 사안이었다. 새누리당이 집권정당으로서 책무를 포기한 것이다.

3년 전인 2012년 5월에도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켜주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법은 국회의원 60% 이상이 동의한 법안만 본회의 통과가 가능하도록 했고 국회의장의 의안 집권상정도 엄격히 제한했다. 야당의 허락이 없으면 여당은 과반수를 확보했어도 입법할 수 없게 했다. 그 때 정의화 국회의장은 선진화법이 통과되면 “국회기능은 마비“된다고 경고했지만, 새누리당은 소수당과의 몸싸움이 두려워 이 법에 찬성했다. 비굴한 작태였다.

새누리당은 지난 3년 동안 두 번에 걸쳐 국회와 행정을 마비시키는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국회선진화법”으로 입법부를 “식물국회”로 전락시키더니 5.29 국회법 개정으론 행정부 마저 “식물정부”로 몰아갔다. 새누리당이 야당에 맞설 투지도 소신도 없고 일신상 개인적 안일만 추구함을 반영한다. 나라의 장래가 걱정이다. 새누리당엔 남자다운 근육질의 정치인이 없다. 집권당의 망국적 치부이며 국가적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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