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구 날아갈라’ 의원들 조마조마…

 “선거구 사수하라!” 공직선거법 원칙 흔드는 법안 발의하기도 
  통폐합 여부 민심은 ‘뒷전’…20대 총선 당선 여부만 집중

[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 지난 11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공직선거법심사소위원회가 가동돼 선거구 획정 기준 마련 논의에 착수했다. 특히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에서 현행 선거구에 대해 헌법불일치 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이번 정개특위에서는 선거구 조정에 나서야 한다. 현재까지 선거구 획정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지만 오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인구 미달로 지역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여야 의원들의 움직임은 빨라질 수밖에 없다. 지역구가 사라지면 금배지마저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 스스로가 이해당사자가 된 지금, 당내에서의 눈치싸움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내막을 살펴봤다.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는 현행 선거구에 대한 헌법불일치 판결을 내릴 당시, 표의 등가성을 주된 이유로 인구편차 기준을 최대 2대 1을 넘지 말 것을 제시했다. 이를 토대로 하면 인구 하한선이 대략 선거구당 최소 13만 8000명이 되고 인구 상한선은 최대 27만 7966명이 기준이 된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29일 공직선거법 개정에 따라 선거구 획정은 국회 외부의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결정하기로 했다. 국회는 선거구 획정 기준을 정하는 데까지만 관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큰 관심을 끄는 것은 정개특위에서 선거구 획정 기준이 어떻게 되느냐다. 우선적으로 국회 정개특위는 지난 11일 정개특위 전무위원실의 검토의견을 기반으로 획정 기준에 대한 논의를 할 예정이다.

정개특위에 제출된 검토의견에 따르면 전문위원들은 인구 기준을 7월 31일로 제안했다. 인구기준을 올해 7월 31일로 하면 선거구 획정위원회가 인구 기준을 최소 2개월 이상 검토가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헌법소원부터
법안발의까지

또 자치구·시·군 일부 분할 등에 관한 사항도 법안에 포함시키자고 제안했다. “자치구·시·군의 일부를 분할해 다른 지역선거구에 속하게 할 수 없다”는 내용을 법에 신설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다만 인구범위(인구비 2대 1)를 충족시키기 위해 두 개 이상의 자치구·시·군의 관할구역 전부를 포함하는 방법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경우는 예외로 두자고 했다.

문제는 인구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선거는 전체 246개 중 총 62개다. 인구 상한 기준에 초과하는 선거구는 37개며, 인구 하한 기준은 25개 정도다. 가장 예민한 쪽은 인구 하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선거구를 둔 의원들이다. 선거구 조정에 따라 지역구가 분리되거나 없어질 수는 있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영호남 의원들이다. 

그렇다보니 인구미달로 지역구가 사라질 위기에 놓인 농어촌 출신 여야 의원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농어촌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이 선거구별 인구 편차를 3대 1에서 2대 1이하로 바꾸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부당하다며 지난 1일 헌법소원을 냈다. 특히 13명의 의원이 ‘선거구 농어촌 지방 주권 지키기 의원모임’을 결정하기도 했다.

특히 선거구 사수를 위한 모든 아이디어를 법안으로 만들어 국회에 쏟아내고 있다. 선거구 획정을 하면서 원칙을 어기고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일명 ‘게리맨더링(181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지사 E 게리가 소속당에 유리하게 선거구역 선을 그었는데, 그 모양이 샐러맨더(도롱뇽)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으로 불린다.

실제 선거구 조정대상인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강원도 홍천·횡성)은 선거구 면적이 전체 선거구 간 평균 면적의 2배를 초과하지 못하게 하는 개정안을 냈다. 지난해 10월 헌재에서 선거구 간 인구편차가 2대 1을 넘으면 ‘표의 등가성’에 위배돼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을 이용해, 면적 기준을 내세워 농어촌 통폐합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또 인구미달 선거구인 경북 영주에 지역구를 둔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은 3개 이상의 시·군·구를 묶어 1개 선거구를 이룬 경우, 인구가 부족하더라도 헌재 결정과 무관하게 현행 선거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도 냈다.

심지어 게리멘더링도 모자라 주민등록지를 기준으로 인구수를 산정하도록 하는 공직선거법의 원칙까지 무너뜨리려는 꼼수를 동원하기도 했다. 이른바 ‘고향투표제’ 법안까지 발의됐던 것.

실제 새정치민주연합 황주홍 의원은 유권자가 주민등록지와 관계없이 출생지나 가족관계등록지에서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자는 내용의 법안을 내놨다. 이럴 경우 대도시의 출향 인사들을 끌어오면 선거구를 합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구 부족으로 지역구가 없어지는 사태까지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통폐합 대상이 많은 농촌 지역구 의원들 사이에서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왔던 것이 정식 법안으로 제출된 셈이다. 
 
인구 기준 시점 전
“인구수 늘려라!”

또 인구 기준을 어느 시점을 할지에 대해서도 아직 확정되지 않은 만큼 인구 통계 기준일 역시 큰 변수다.
실제 헌재 결정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인구 상·하한선에 어긋난다고 밝힌 62곳 중 3곳은 분구에서 빠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인천 부평을, 전북 군산, 세종시가 해당된다.

문제는 행정자치부의 2월 말 기준 인구통계를 보면 총 인구수가 늘어나 인구 상·하한선도 높아졌다. 27만 8376명, 13만 9189명으로 높아지면서 위기의 선거구까지 늘어나는 실정이다. 따라서 인구 통계 기준 일에 따라 일부 지역에서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인구 하한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국회의원들은 ‘인구 끌어 모으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심지어 지역구를 지키려는 의원과 지방자치단체가 합심하는 모양새도 보인다. 강원 철원·화천·양구·인제군이 지역구인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의 경우 대대적인 주민등록주소 옮기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군부대와 지자체가 나서 군 장병, 공무원 주소 이전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

또 충북 보은·옥천·영동 지역구인 새누리당 박덕흠 의원은 ‘인구 늘리기 결의대회’를 가졌고, 경북 군위·의성·청송에 지역구를 둔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오갈 데 없는 교도소를 청송으로 보내 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인구 늘리기 차원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유리한 구도 만들자!
의원간 신경전 치열

심지어 통폐합으로 인해 의원들 간의 신경전도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통폐합이 불가피하다면 20대 총선에서 유리한 선거구를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실제 경북 영주에 지역구를 둔 장윤석 의원은 “선거구 획정이 이루어진다면 같은 문화권인 영주와 봉화가 하나의 선거구로 뭉쳐야하지 않겠느냐”며 ‘영주-봉하’가 합쳐지길 바라고 있다.

문제는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을 지역구로 하는 새누리당 강석호 의원은 헌재가 결정한 인구수 하한선을 가까스로 넘기고 있는 실정이라 난색을 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더구나 영주와 봉하가 합친다면 경북 영양·영덕·울진은 접경지역인 의성과 청송을 합쳐야 한다.  

그런가 하면 새누리당 이한성 의원의 지역구인 경북 문경과 새누리당 김종태 의원의 지역구인 경북 상주를 하나로 묶는 방안이 나오고 있다. 검찰청과 법원 등 공동 관할 지역인데다 지역주민들 역시 좋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경북 예천의 경우 신도시가 조성되기 때문에 경북 안동·예천이 통합하는 게 순리라는 얘기가 지역주민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문경·예천에 지역구를 둔 이 의원으로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이 의원은 ‘문경·예천’을 쪼개기보다는 영주와 통합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에 반해 상주에 지역구를 둔 김 의원은 문경과 합쳐도 인구수에서 앞서기 때문에 손해 볼 장사가 아니라는 것. 이 의원으로서는 20대 총선에서 출마하더라도 당내 경선에서 패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이 의원은 문경·상주가 한 지역구로 묶이는 것보다는 의성과 한 지역구로 묶이는 것을 바라고 있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이에 반해 김재원 의원은 친박 실세로 불리고 있고, 지난 지방선거에서 공천심사 부위원장을 했다는 점이 강점이다. 이 때문에 20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장을 받는 데 지차체단체장의 입김이 중요한 만큼 이들이 김 의원에게 ‘빚’을 갚을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선거구 획정으로 각축전이 예상되는 지역도 있다. 충남 부여·청양(새누리당 이완구), 공주(새정치연합 박수현)가 그렇다. 이 전 총리의 지역구인 부여·청양은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하고, 세종시와 인접한 공주는 야당 성향이 강하다.

따라서 이 선거구가 하나로 묶이게 되면 여야 간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어떤 의원의 선거구가 남아있고, 사라질지를 두고 정치권의 시선이 ‘정개특위’를 향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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