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민간인 사찰의혹 수사 못한 게 아니라 안한 것”

총리실 공직지원윤리지원관실의 불법사찰 의혹과 관련해 이른바 ‘윗선’의 한명으로 알려진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지난 6일 조사를 받은 뒤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에 관한 검찰 수사가 지난 11일 마무리됐다. 검찰은 이인규 전 지원관 등 핵심 관계자 3명을 기소하는 것으로 수사개시 38일 만에 사건을 일단락 했다.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직후 정치권과 여론은 졸속수사, 부실수사, 봐주기 수사 등등 검찰 수사를 한목소리로 비난했다. 권력눈치를 본 검찰의 전형적인 용두사미형 수사라는 것이다. 검찰은 이 전 지원관 등의 구속기간이 끝나 우선 기소를 한 것이지 수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로 추가수사의 여지를 남겼지만 사실상 수사를 종료한 것이어서 사회전반에는 “더 이상 검찰에 기대할 것은 없다”는 분위기가 짙게 깔려있다. 검찰수사의 종료와 더불어 일각에서는 “검찰이 의도적으로 사건을 덮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지원관실의 조직적인 불법행위를 입증할 물증을 찾는데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물증을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발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조사대상자가 증거를 인멸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다는 것이다.

검찰수사에 기대를 걸었던 것은 지원관실의 불법행위규명과 더불어 ‘윗선’개입 의혹의 해소였다. 하지만 검찰은 불법행위규명에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반면 사찰을 지시한 ‘몸통’의 실체규명에는 실패했다.

민간인 사찰파문의 발단이 된 김종익 전 NS한마음 대표에 대한 지원관실의 불법 사찰활동은 대부분 사실인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이 전 지원관 등 지원관실 관계자들이 대통령 비방 동영상을 게시한 김씨의 블로그를 문제삼아 2008년 7∼9월 김씨의 회사를 불법 압수수색하고 김씨 회사의 원청업체인 국민은행에 압력을 넣어 김씨의 대표이사직 사임과 지분 처분을 유도한 혐의가 모두 입증됐다.


지원관실의 치밀한 증거인멸

또 검찰은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의 부인 이모씨가 연루된 고소고발 사건의 경찰 수사 상황 등을 지원관실에서 사찰한 사실을 새롭게 밝혀내기도 했다. 지원관실은 2008년 중순 남 의원 부부의 비위를 적발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경찰과 주변 인물을 탐문해 이씨 연루 사건의 고소장, 수사 서류, 이씨 회사의 자료 등을 함부로 입수했다는 혐의를 추가로 확인할 수 있었다. 검찰은 미처 삭제되지 않은 컴퓨터 자료의 정밀 분석 등을 통해 이같은 사실들을 캐냈다.

하지만 이 전 지원관 등으로부터 ‘윗선’의 개입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물증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 부분을 두고 검찰에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검찰은 총리실로부터 수사 의뢰를 받은 지 나흘만인 지난달 9일 지원관실과 이 전 지원관 등 관련자 자택 등 모두 6곳을 전격 압수수색했지만 성과는 거의 없었다. 지원관실이 내부 컴퓨터 10여대의 자료들을 삭제하거나 하드디스크를 철저히 파괴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망가진 컴퓨터 중 3대는 하드디스크에 자성 물질을 대는 수법으로 아예 부팅이 안 되는 상태였다. 또 다른 3대는 전문 삭제 프로그램을 활용해 데이터를 완전히 지워진 것으로 드러나 계획적이고 치밀한 증거인멸 작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검찰에 따르면 기획총괄과에서 추가로 제출한 컴퓨터도 마찬가지로 손상돼 있었고 지원관실 내 보고 문건 등의 각종 문서자료도 대부분 파쇄기를 통해 누군가 미리 없애버렸다. 게다가 이 전 지원관 등이 청와대 등에 몰래 ‘비선 보고’를 했다는 의혹을 추적하던 검찰은 이들의 개인 이메일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에서 기각했다.

지원관실의 증거인멸도 문제지만 여론은 검찰이 신속한 압수수색에 나서지 않은 것을 문제 삼고 있다. 전문 프로그램을 통한 데이터 삭제는 검찰의 수사 착수 이전에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지만, 하드디스크 4대를 물리적으로 훼손하거나 문서를 파기한 시점은 수사의뢰 이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윗선’으로 지목되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을 참고인 신분으로 한 차례만 소환조사한 것도 검찰이 수사의지를 갖고 있었는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검찰의 발목을 잡는 것

이와 함께 검찰 사전 ‘불법사찰 확인 파일' 확보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12일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 수사결과 발표와 관련, “검찰은 (불법사찰 내용을 담은) 컴퓨터 파일이 전부 삭제됐다고 하지만 검찰이 온전한 파일을 일부 확보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와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 ‘MB정권 국민뒷조사 진상규명특위’ 위원장인 박영선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회의에서 “그 물증으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실이 공직윤리관실로 발신한 서류가 있다”며 해당 공문을 제시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박 의원은 “공문에는 ‘컴퓨터에서 한글파일을 열어본 증거가 발견돼 이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효과적 답변을 위해 수사기록에서 서류들을 찾아 사본을 보내니 답변해 달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는 검찰이 온전한 일부 파일을 갖고 있다는 증거라는 게 제보내용 중의 하나로, 검찰은 시간 끌기 작전으로 수사를 종료해선 절대 안된다”며 특별검사제 도입 및 국정조사 실시를 거듭 촉구했다.

박기춘 원내수석부대표도 “검찰은 의심을 받아온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과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에 대해선 조사조차 안했다”며 의혹에 무게를 더했다.

또 검찰 수사 결과를 전해들은 김종익 전 대표 측도 검찰의 민간인불법사찰 사전 인지 의혹을 제기했다.

김종익 전 대표 측은 이번 수사에 앞서 2008년 동영상 유포와 관련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을 당시, 이미 검찰이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의 불법성을 사전에 인지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동시에 검찰의 직무유기에 대한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 브리핑에서 “김종익 전 대표 얘기만 듣고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봐서 조사하기엔 무리가 있었다”고 말한데 대해 김종익 전 대표의 변호인인 최 변호사는 “검찰 수사기록만 봐도 총리실을 언급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 내용을 몰랐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이에 김종익 전 대표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압수수색 시기도 늦어져 공직윤리지원관실 관계자들이 증거인멸 할 시간을 충분히 줬고, 이제는 검찰이 증거가 없어서 수사를 못한다는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며 “직무를 유기한 검찰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덧붙여 향후 그의 행보와 검찰의 대응이 주목된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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