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과의 전쟁 4년

지난 8월 멕시코 모렐로스 주(州)의 주도(州都)인 쿠에르나바카에 위치한 철도 아래에서 참수형을 당한 남성 시신 2구가 매달려 있다. 쿠에르나바카에서는 지난해 12월 멕시코의 한 주요 갱단의 지도자가 멕시코 해병대에 의해 사살된 이래, 마약 조직단 간의 교전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 8월 말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 시티에서 남쪽으로 70km 떨어진 모렐로스주의 한 교각에 심하게 훼손된 4명의 시신이 거꾸로 매달린 채 발견됐다. 끔찍한 이 광경을 본 주민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곧바로 경찰이 출동해 수사에 나섰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말은 못하면서도 사건 내막은 추측할 수 있었다. 바로 이 지역 마약 조직 간의 주도권 싸움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쯤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 멕시코는 마약과 전쟁 중이다. 멕시코의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은 지난 2006년 12월 취임 이후 수천 명의 병력과 경찰을 동원해 마약 조직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성과는 아직 미지수다. 지난 4년 동안 3만 명에 가까운 인명이 희생됐으며 당국은 마약 관련 범죄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휴양도시인 멕시코 서부 아카풀코시 당국은 시 외곽에서 집단 매장된 채 발견된 시신 18구를 발견했다고 지난 8일 발표했다. 피해자들은 서남부 미초아칸주에서 올라 온 관광객들로 당시 호텔을 찾아 돌아다니다 괴한에 납치됐으며, 일행 중 2명이 극적으로 탈출해 당국에 신고하면서 피랍 사실이 알려졌었다.


세계적 휴양지 아카풀코서 관광객 납치 살해

현지 경찰은 심하게 구타당한 남자 2명이 미초아칸 주민들을 살해했다고 진술하는 인터넷 동영상을 발견한 뒤 영상에 나타난 지점을 수색해 시신들을 발견했다. 영상 속의 피투성이 남성들은 경쟁 갱단인 ‘라 파밀리아’에 대한 복수라고 주장한 바 있다.

아카풀코는 멕시코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지역의 외국인 관광객들도 자주 찾는 휴양지 중 하나지만 올해 들어 온갖 잔혹한 범죄가 벌어지며 마약 갱단이 아카풀코마저 접수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앞서 지난 3월 13일 13명이 총격 등에 피살됐으며 이중 시신 4구는 머리가 잘려나간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다른 희생자 5명은 순찰 중이던 경찰로 확인됐다.

그런가 하면 지난달 27일 수도 멕시코시티에서도 거리를 지나던 7명이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현지 방송인 밀레니오 TV는 지난달 27일 자정 멕시코시티 모랄레스에서 괴한들이 탄 차량 2대가 행인 7명을 막아선 뒤 총기를 난사해 모두 살해했다고 보도했다.

마약과의 전쟁 속에서도 비교적 안전한 것으로 알려졌던 수도에서 이같은 살해극이 벌어지면서 멕시코에서 마약 갱단으로부터 안전한 곳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들 마약 조직들은 군도 경찰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서부 할리스코주 공공안전부는 지난달 29일 오후 칠라탄댐으로 가는 도로에서 차량 5대에 나눠 타고 있던 경찰관 20명이 마약 갱단의 공격을 받아 9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다고 밝혔다. 피해 경찰관 수를 압도했던 갱단들은 수류탄과 자동소총으로 공격을 벌인 후 10대의 차량을 타고 도주했다.


습격당한 경찰서 경관들 갱단 무서워 모두 사직

지난달 14일에는 멕시코 할리스코주 멕스티카칸 시 경찰서장이 무장괴한에게 살해당하기도 했다. 마리오 메하 루발카바(33) 멕스티카칸 경찰서장은 지역 경찰서장 회의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공격을 당했다. 그가 길을 찾기 위해 잠시 도로가에 주차를 한 사이 갑자기 차량이 불길에 휩싸였고 복면한 무장괴한은 빠르게 그 현장에서 달아났다.

멕시코는 올해 10명의 시장, 타마울리파스주 주지사 후보 1명 등을 포함해 많은 수의 공무원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달 25일 멕시코 북부 누에보레온주의 로스라모네스시 경찰서는 갱단의 공격을 받아 순찰차 6대가 모두 파괴되고 건물도 크게 부서졌다. 경찰들이 건물을 비운 뒤인 밤 9시 30분쯤부터 갱들의 공격이 시작된 덕분에 다친 경찰관은 없었다. 하지만 이 경찰서에 근무하던 경관 14명은 이튿날 모두 사직서를 내버렸다. 언론은 “급여도 장비도 열악한 멕시코 지방 경찰들은 갱들의 공격을 받으면 집단으로 사직하는 일이 잦다”고 전하고 있다. 시 당국은 “당분간 주 고속도로 경찰이 도시의 치안을 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마약 조직들과 4년 째 전쟁을 벌이고 있는 멕시코 정부는 최근 마약 조직 두목들을 잇달아 사살 또는 체포하면서 한 때 개가를 올리는 듯 했다.

지난 6일에는 악명 높은 멕시코 마약왕을 사살하기도 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멕시코 해군은 이날 멕시코 북부도시인 마타모로스에서 마약 밀매 혐의를 받고 있던 마약 갱단 ‘걸프’의 두목인 카르데나스 기엔을 사살했다.

카르데나스 기엔은 마약 밀매 혐의로 미국 당국에 의해서도 기소된 상태로 미국과 멕시코에서 각각 500만 달러, 200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그의 죽음은 갱단 두목들이 잇따라 군에 체포되거나 사살된 가운데 나온 것으로 멕시코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듯이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마약조직 우두머리들 잇달아 사살·체포했지만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멕시코 최대 갱단 중의 하나인 벨트란 레이바의 아르투로 벨트란 레이바가 수도 멕시코시티 외곽에서 사살됐고, 올해 7월에는 시날로아의 우두머리 가운데 한명인 이그나시오 코로넬이 군 총격에 숨졌다. 8월에는 미국 출신의 갱단 두목 에드가르 발데스 비야레알이 연방 경찰에 체포되었고 9월에는 벨트란 레이바의 또 다른 두목인 세르히오 비야레알 바라간이 멕시코 해군에 붙잡힌 바 있다.

그러나 기엔이 사살된 직후 아카풀코에서 20명의 관광객들이 마약 조직에 의해 납치 사살되면서 마약과의 전쟁이 얼마나 어렵고 험난한지를 말해 주고 있다.

멕시코는 실제로 어둠 속에서는 마약 조직이 지배하는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멕시코 국민들은 오랫동안 마약조직에 의해 고통을 받아왔다.

멕시코 국영 석유생산회사인 페멕스 근로자 5명은 6개월 전 미국 텍사스 접경 부근의 가스압축공장 작업장에 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이 외신은 그 곳에서 활동하는 마약카르텔의 조직원으로 보이는 복면한 남자들이 페멕스 근로자들에게 더 이상 이 지역에 들어오지 말라고 이미 경고한 터였다고 전했다.

지난 5월 그와 비슷한 시기에 멕시코 환경부의 검사관 3명도 오염 관련 민원을 조사하려고 멕시코시티 서부의 산림지역으로 향했다 고문을 당한 후 그 다음날 시체로 발견됐다. 멕시코 당국은 이들이 우연히 마약제조공장을 지나쳤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2010년 멕시코의 4개 주에서 페멕스 직원과 하도급업자 10명이 납치됐다. 지난 2009년에는 1명, 2008년 2명, 2007년엔 3명이 납치됐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페멕스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난 6월 투부타마의 감사관들과 토목국장이 탑승한 차량들이 강도들의 공격을 받았고, 관리들은 총에 맞아 숨졌다. 멕시코-애리조나 접경 지역에 사는 한 목장주는 “검침원이 이곳에 오지 않아 전기를 거저 쓴다”고 말할 정도다.

의사들은 투부타마의 진료소에 나오지 않고, 거리의 총격전으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이 안전하지 않자 지난해 학교들은 일찍 휴교했다. 또 인구 1500명의 작은 마을에 물품을 실은 트럭이 오지 않아 가게의 선반은 텅 비어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수법 더욱 잔혹해져 고문당한 피해자만 798명

이렇게 되자 마을 주민의 70%는 정부가 자신들을 보호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을을 떠났다. 텍사스-멕시코 접경의 치우다드 후아레스와 이보다 작은 마을들의 주민 상당수도 떠났다.

실제로 멕시코 연방정부의 프란시스코 블라케 모라 내무장관은 지난달 27일 “전국 지방자치단체 2439곳 가운데 400여 곳이 사실상 갱들의 지배 아래 있어 마약 조직 소탕전에서 현지 경찰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라고 실토한 바 있다.

앞서 멕시코 상원도 지난 9월 보고서에서 “갱단이 전체 지자체의 71%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중 195곳은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멕시코에서는 마약 범죄조직의 공격으로 올해 희생자가 1만 명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지 일간지인 레포르마는 지난 4일 자사 및 국가인권위원회 통계를 인용해 올해 1월부터 이달 3일까지 마약 폭력으로 숨진 사람은 1만 35명으로 남성이 9388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올해 사망자는 전임 정부인 폭스 대통령의 6년 재임기간 희생자 수를 뛰어넘는 것으로 2008년 사망자수(5207명)에 비해서도 두 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지역별로는 미국 접경지역인 북부지역에 피해가 집중돼 치와와주가 2797명으로 사망자수가 가장 많았고, 인근 시날로아주도 1795명에 달했다.

마약 폭력 희생자는 대부분 갱단원들이었지만 군인(52명)과 경찰(637명)도 상당수 희생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더욱 잔혹해지는 폭력 속에 피살자 중 고문피해자가 798명에 달했으며 목이 잘리는 참수가 326명, 갱단이 협박 문구를 몸에 새긴 경우도 674건에 달했다.

연도별로 보면 2007년 2275명이었던 희생자수는 2008년 5207명을 기록해 전년보다 두 배 넘게 늘어났고, 지난해에는 6587명을 기록했다

언론사의 경우도 올해 들어 최소한 언론인 11명이 피살됐으며 이 때문에 북부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일부 언론사들이 아예 마약범죄 취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인 사회도 위험, 납치 예고설도

이처럼 멕시코 마약갱단의 범죄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수도 멕시코시티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상대로 한 범죄도 잇따르고 있어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현지 발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한 언론은 주 멕시코 한국대사관 등을 인용, 지난 8일 오전(현지시간) 멕시코시티 델 바예지역에서 한인 남성 1명이 승용차를 빼앗으려는 괴한 2명에게 공격을 받아 허벅지에 총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앞서 5일에는 다른 한인 남성이 퇴근길에 괴한의 둔기에 맞은 뒤 납치될 뻔하다 목격자들의 경찰 신고로 위기를 모면했으며, 한 달여 전에는 한인이 운영하는 음식점에 무장 강도가 침입해 금품을 훔쳐 달아나기도 했다고 전했다.

게다가 한인들이 운영하는 상점이 몰려 있는 멕시코시티 도심지역에는 ‘한인 납치 예고설’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한인 동포들에 따르면 현지 범죄조직이 올 12월까지 한인 10∼20명을 납치해 몸값을 뜯어내겠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이다.

[이창환 기자]


#용감한 여대생 마약과의 전쟁 선봉에

전임 서장은 마약조직에 의해 살해돼

20대 여대생이 멕시코 최악의 우범지대 치안책임자로 부임, 기대와 우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AFP 등 주요 외신은 지난달 20일 한 아이의 엄마이자 범죄학 전공 대학생인 마리솔 발레스 가르시아(20)가 멕시코 북부 치와와주 과달루페 경찰서장으로 임명돼 일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가르시아가 이 지역에 부임하자 시민들은 20대 여자 경찰서장에 대해 신선하다, 용감하다는 반응과 함께 임기를 무사히 마칠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우려감을 내비치고 있다고 한다.

과달루페는 비록 인구 1만 명도 안 되는 소도시지만 멕시코 최악의 우범 지역이다. 이 지역은 미국 텍사스주와 국경을 마주한 까닭에 1년 내내 마약 밀매자들과 불법 이민자들이 들끓는다. 마약 갱단의 공격과 세력다툼으로 지난 4년간 치와와주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2만8000여 명이고, 올해 이 일대에서만 약 2500명이 살해됐다. 그의 전임자도 2009년 마약 갱들에 의해 살해됐고, 마을 주민들은 그 후 1년 이상이나 후임자를 찾지 못했다.

과달루페 시장은 가르시아 임명 배경에 대해 “(두려움 때문에)그녀 이외엔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렵지 않았느냐’ 기자들의 질문에 가르시아 신임 서장은 “나 역시 (서장직 신청을)한 달간 고민했을 정도로 두려웠다”면서 “두려움이 우리를 무너뜨리게 해선 안되며 나는 우리가 여러 변화를 만들어갈 때 두려움 또한 조금씩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당찬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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