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법당서 합숙, 28억 바쳐...

▲<뉴시스>
[일요서울 | 김현지 기자] 스승과 제자의 갈등이 불거졌다. 법당에서 20년간 ‘금강경’ 공부를 함께 한 사제지간인 박은주(58) 스타출판인과 김강유(개명 전 김정섭·68)가 그 주인공.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각 집에 이 출판사 책은 꼭 있다’는 출판사인 ‘김영사’를 만들고 성장시킨 장본인들이다. 박은주 김영사 전 사장이 김영사 설립자이자 회장인 김 씨를 지난 23일 350억 원 규모의 배임 및 횡령,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정의란 무엇인가>, <먼 나라 이웃 나라>, <식객> 등 다양한 장르의 도서를 출판해 대중의 신뢰를 받던 김영사가 왜 갈등의 중심이 된 것일까. 

 박은주 스타 출판인의 고소 그리고 김강유 회장
“20년간 28억 법당서 바쳐” vs “돈 바치라 강요 안했다”

지난해 5월 31일 한국 출판계에서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는 대표적 여성 CEO(최고경영자)인 박은주(당시 57) 김영사 대표가 사퇴 의사를 밝혔다. 김영사 관계자는 “박 대표가 최근 사재기 의혹 논란 등 유통 관련 문제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고 당시 밝혔다. 지난해 4월 모 서적 도매업체가 직원들에게 김영사 계열 브랜드인 ‘김영사온’이 출간한 책을 한 권씩 사도록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는데, 이게 사퇴의 표면적인 이유라는 것.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출판유통심의위원회가 조사를 벌이기도 하는 등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김영사 관계자는 박 대표가 사임함으로써 사재기 의혹에 도의적인 책임을 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퇴 배경을 놓고 당시에도 뒷말이 무성했다. 출판계를 중심으로 박 대표 사임 배경에 회사 경영권, 매출 하락 등 내부적인 문제가 있다는 말이 나왔다. 김영사 설립자인 김정섭(현 김강유)씨가 지난해 4월 경영에 복귀해 박 대표의 결재권을 회수하는 등 갈등이 불거졌다는 것이다. 특히 회사 매출 하락을 놓고 두 사람간의 갈등이 심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출판계 불황이 계속 이어진 터라 2014년 김영사의 매출액은 전년에 비해 20%가량 떨어진 277억 원이었다. 사실 출판업계의 부진은 김영사만의 문제는 아니었고 오히려 하락 폭이 타 출판사에 비해 크지도 않았기 때문에 매출 부진이 이유는 아닐 거란 말이 돌았다. 오히려 회사 지분의 60% 이상을 가진 김 회장 측이 약 40%의 회사 지분을 보유하던 박 전 대표를 퇴진시켜 경영권을 회수할 목적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무성한 추측을 뒤로 하고 박 대표는 말없이 떠났다.

폭탄은 올 7월에 터졌다. 23일 박 전 대표가 김 회장을 검찰에 고소했고, 서울중앙지검 조사1부(부장검사 조종태)는 27일 사건을 배당받아 수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고소의 주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김 회장이 ▲출근을 하지 않으면서 월급 등으로 36억 원을 받았고 ▲박 전 대표에게 보상금 45억 원을 준다고 했지만 박 전 대표 소유의 회사 주식과 가회동 사옥, 퇴직금까지 모두 포기하는 식으로 285억 원을 잃게 만들었으며 ▲형의 회사에 김영사 자금 35억 원을 적절한 채권회수조치 없이 빌려줘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내용이다.

세간에 ‘김영사 사건’이 알려지면서 박 전 대표의 입에 시선이 몰렸고, 26일 진행한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속사정이 알려졌다.

결국 돈이 문제?

인터뷰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83년 입사 이후 김 회장의 권유에 따라 용인의 법당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월급을 부모에게 보내는 대신 법당에 바쳤다. 84년 법당에 들어가 2003년 나올 때까지 김 회장에게 바친 돈은 총 28억 원. 이는 20년 동안 받은 월급, 보너스, 주식배당금 전액 등이다.

박 전 대표가 2003년 법당을 나오며 보시를 중단한 후인 2006년, 김 회장이 박 전 대표에게 돈을 요구했다고 한다. 박 전 대표는 비자금을 만들어 2008년부터 매월 1000만 원씩 김 회장에게 송금했다. 또 김 회장의 형 회사를 지원하라는 요구에 물질적인 도움을 줬다. 김 회장에게 준 비자금과 형님 회사에 준 돈은 대략 70억. 김 회장 측이 주장한 ‘200억대 횡령’은 사실 그에게 준 70억이고, 나머지는 꾸며진 것일 뿐이라는 것. 

특히 작년 10월 경영진이 바뀐 뒤 직원 3명이 회사 돈 208억 원 횡령 혐의로 고소당했다. 올 4월 법원에서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박 전 대표는 이를 두고 김 회장 측에서 ‘그들 편을 들어줬다’며 자신을 협박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김 회장 측이 박 전 대표를 회유한 정황도 드러난다. 주식, 김영사 건물, 퇴직금 등 박 전 대표가 김영사와 관련해 소유한 모든 것을 포기하면 보상금을 주겠다고 한 것. 하지만 김 회장 측은 이를 지키지 않았고, 이에 박 전 대표가 고소를 하게 됐다고 한다.

김 회장은 이를 반박한다. 오히려 박 전 대표가 1995년부터 1998년 7월 미국 유학할 당시 학비와 체재비를 자신이 부담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부 횡령과 배임 혐의는 인정하고 있다. 다만 출판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일을 항상 하고 있었다는 점, 자신이 8000만 원을 받을 때 박 전 대표는 연봉 8억 원을 받았다는 점 등을 들며 의구심을 표출했다.

정확한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독자들의 실망은 커지고 있다.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서 등단을 준비하는 시민 정모(26·여)씨는 “어느 쪽의 말이 사실이고 누가 피해자인지를 떠나, 대형 출판사에서 이런 문제가 불거졌다는 게 실망스럽다”며 “특히 돈 문제가 사건 발단의 중심이라면 실망이 더욱 클 것”이라 말했다.

불륜녀, 내연남…
사생활까지 

박 전 대표가 2003년 법당을 나오게 된 계기로 김 회장의 불륜녀를 지목했다. 김 회장이 유부녀였던 여성과 동거를 시작한 이후 법당을 나오게 됐다고. 2003년 공동 교주와 김 회장이 법당을 팔았고, 박 전 대표는 20년 만에 집으로 돌아갔다고 언급했다.

김 회장은 유부녀 여성과의 불륜설에 바로 반박했다. 자신은 3년 전 다른 사람과 결혼했고, 해당 여성은 현재 자신의 용인 건물에서 카페를 하고 있다는 것. 만일 불륜이 맞는다면 한 건물 안에서 함께 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해명이 많은 이들의 궁금즘을 푸는 데엔 역부족인 것 같다. 불륜 관계였어도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할 수 있고, 심지어 한 직장 안에서 불륜 관계인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갈등의 과정 중에 등장한 박 전 대표의 내연남도 그렇다. 모욕감을 주기 위해 김 회장 측은 세 명의 내연남을 거론했지만, 박 전 대표는 그들을 오히려 ‘출판사를 도와줬던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개인의 사적인 이야기가 퍼지는 데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출판사와 관계된 법적 문제는 접수된 사실관계만을 봐야지, 개인의 사적인 내용까지 들춰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서로가 자극적인 이야기로 상대방을 더욱 몰고 가는 모양새는 보기 좋지 않다는 여론도 높다. 사적 내용에 대해 ‘진흙탕 싸움’이라며 김영사 자체의 이미지가 깎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이비 종교 논란

인터뷰 중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또 다른 내용은 ‘법당에서 김 회장을 살아있는 부처님으로 떠받들었다’는 대목이다. ‘그에게 삼배를 해야 했고, 그의 말을 들으려면 무릎 꿇고 두 손 모으고 들어야 했다’는 박 전 대표의 인터뷰 내용에 일각에선 ‘사이비 종교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출했다. 일반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을 부처님처럼 떠받들거나 그에게 삼배를 하는 행위 등은 대중이 익히 잘 아는 불교 내에선 벌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특히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표가 김 회장을 ‘교주’라고 칭했다는 점 역시 이상하다는 목소리가 높고,  박 전 대표도 인식했는지 인터뷰 중 이를 ‘외부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에 따르면 법당을 나오며 김 회장에게 준 보시를 끊은 해가 2003년. 84년부터 20년간 법당에서 지내며 보시를 낸 계기로 ▲김 회장이 법당에서 수행에 정진하라고 했다는 점 ▲김 회장과 공동 교주인 한 여성이 박 전 대표에게 ‘이 곳은 몸과 마음과 재산 모든 것을 바치는 곳’이라 했다는 사실을 든다.

많은 이들은 이 같은 사실에 의문을 품는다. 대표적인 불교 종파 중 하나인 대한불교조계종의 한 관계자는 “조계종 내에서는 한 개인에게 교주라는 표현을 절대 쓰지 않는다. 또한 20년 동안 법당에서 살았다는 얘기를 조계종 내에선 들은 적이 없다”며 “다만 다른 종파에서의 구체적인 사례는 잘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일각에선 둘 사이의 갈등 원인으로 종교적 문제도 거론하고 있다.

김 회장은 사이비 종교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박 전 대표가 20년간 살았던 법당은 하나의 종교가 아니라 단순히 금강경 공부를 하기 위한 모임이라는 점. 단지 깨달음을 위한 ‘수행 차원’의 모임이라고 언급하며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사이비 종교 논란에 대해 해명을 했다. 또한 박 전 대표가 20년 동안 법당에서 산 것도 자발적인 행동이었다고 말했다. 보시 역시 강요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표도 불교에 대한 남다른 관심 덕에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 진학했다는 점 외엔 특별한 점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에도 신흥 종교 관련설 등의 루머는 끊이지 않고 있다. 한 개인을 교주라고 부른 점, 부모를 버리고 법당에서 살 수 있는 지 등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특히 이번 사태의 원인을 단순히 배임·횡령 문제가 아니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만일 박 전 대표가 법당을 나왔더라도 꾸준히 보시를 냈다면 이런 사태까지 오지 않았을 거란 관측도 있다. 

yon88@ilyoseoul.co.kr

 ‘미다스의 손’ 박은주는?

김정섭 회장의 개인 소유였던 김영사 사장으로 32세에 발탁된 이후 소규모 출판사였던 김영사를 국내 굴지의 출판사로 성장시킨 장본인이다. 89년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국내 최초의 밀리언셀러가 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정의란 무엇인가>, <식객>, <닥터스>, <먼 나라 이웃 나라> 등 수많은 히트작들을 만들며 ‘출판계의 여왕’, ‘미다스의 손’ 등으로 불렸다.

김영사

1983년 설립된 이후 현재까지 총 3000여 종의 책을 낸 국내 대형 출판사. 개인 소유의 작은 출판사였지만 80년대부터 고속성장하면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가장 많은 추천 도서를 가진 출판사이면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 읽었을’ 책들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때문에 이번 송사는 대중에게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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