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BC급 전범’ 148명
조선인 ‘BC급 전범’ 148명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1-01-03 14:49
  • 승인 2011.01.03 14:49
  • 호수 871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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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 감시원들 아픔 아무도 모른다
▲ 전범으로 기소된 조선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동남아시아 침략과정에서 포로감시원 등으로 강제 동원됐던 조선인 148명이 종전 이후 연합국 국제전범재판을 통해 전범으로 간주돼 실형에 처해진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2월 28일 정부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지난 2005년부터 시작한 ‘조선인 BC급 전범 진상조사’를 완료하고 보고서를 펴냈다. 이 보고서를 통해 일본에 의해 포로감시원으로 동원되고 국제전범재판에서 전범으로 사형되는 등 이중의 피해를 입은 BC급 전범들의 질곡의 세월을 들여다봤다.

위원회에 따르면 일본이 조선인을 연합군 포로감시원으로 동원한 배경은 우선 일본 자체 전투 병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포로의 가혹한 노역 등 학대 문제가 종전 후 문제시 될 것을 우려해 포로감시원을 조선인으로 충당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마디로 전쟁책임을 조선인에게 전가시키려고 했던 셈이다.

실제로 종전 이후 조선인들은 포로 학대 등을 이유로 국제전범재판에서 BC급 전범으로 실형이 언도됐고, 심지어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이에 반해 일본은 포로학대와 관련된 일본인들을 종전 직전에 다른 곳으로 전출 시켜 책임을 회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연합군이 작성한 국제군사재판조례는 범죄의 형태를 A항 ‘평화에 반화는 죄’, B항 ‘통상의 전쟁범죄’, C항 ‘평화에 반하는 죄’로 규정했다. 이 중 B항과 C항의 죄를 범한 자를 BC급 전범이라고 불렀다.


지원과 모집 허울 쓴 강제 동원

일본은 1940년 9월 북부 베트남에 대한 공격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 침략 과정에서 발생한 30여만 명의 연합군을 포로로 잡았다. 이들은 포로를 관리한다는 명목 하에 태국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만주, 대만, 한반도 등에 포로수용소를 설치했다.

조선인들은 1942년 5월부터 포로감시원으로 동원됐다. 포로감시원 출신으로 BC급 전범으로 처벌받았던 이학래씨는 “마을에서 두 사람을 내놓으라는 상부의 압력도 있고 해서 포로감시원 모집에 응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당시에는 많은 청장년층이 탄광 혹은 제철소로 끌려가는 상황이어서 포로감시원 모집공고에서 제시한 50원의 월급은 조선인들에게 상당한 유혹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위원회에 따르면 이 모집은 접수·전형·장행회(출정식)·군 최종심사 등 네 단계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조선인 청년들을 상대로 지속적인 선전과 선동, 회유와 협박, 지역 할당 등의 수단이 동원됐다. 위원회는 “포로감시회 모집이 지원과 모집의 허울을 쓴 강제 동원이었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일정 학력 이상을 갖추고 특히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우대했다. 포로감시원 선발은 표면상으로는 모집 형식을 취했지만 실제로는 조선총독부가 지역별 전형으로 각 지역간 할당과 경쟁을 조장한 강제 동원이었다.

포로감시원으로 뽑힌 조선인 3000여 명은 2달 간 군사훈련을 거친 후 동남아시아 일대에 세워진 포로수용소에 배치됐다.

포로감시원이 된 조선인들은 일본군과 연합군 포로 사이에서 가해자이자 피해자의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일제에 의한 강제동원 피해자였으며 포로수용소에서도 일본군의 명령을 받는 처지였다.


가해자이자 피해자 역할 수행

2차대전이 끝난 후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은 전범으로 처벌됐다. 포츠담 선언의 제10항 ‘우리들의 포로를 학대한 자를 포함한 일체의 전범에 대하여 엄중한 처벌을 가한다’에 따른 것이었다. 3000명의 포로감시원 중 129명이 국제군사제판에서 처벌됐다.

전범판결을 받은 조선인은 모두 148명으로 게릴라전을 수행한 군인 3명, 중국전선에서 통역한 16명의 일본군 통역자, 포로감시원으로 일한 군무원 129명이다. 이 가운데 23명은 사형됐고 나머지 125명은 1947년부터 1957년에 걸쳐 만기 또는 감형으로 석방됐다.

위원회는 “조선인들의 연합군 포로 학대 행위가 사실로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사실에 대해 일정 책임을 감수해야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면서도 “이들이 모든 책임을 지고 사형까지 당해야했는가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제국주의 시대의 강제동원 굴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위원회에 따르면 BC급으로 처벌된 조선인들 중 위원회에서 지난해 12월까지 총 87명이 피해판정을 받았다. 129명의 포로감시원 중에는 86명이 피해판정을 받았다.


일본정부도 이들 외면

BC급으로 처벌된 조선인들은 ‘동진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일본 정부에 억울함을 호소하고 배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은 현재까지도 이들을 외면한 채 어떠한 응답을 주고 있지 않고 있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패전국의 멍에를 벗었지만, 포로감시원으로 동원된 이들은 여전히 전범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위원회는 “위원회가 BC급 전범들을 강제동원 피해자로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은 한국정부가 전범재판의 결과와 관계없이 이들의 피해사실을 공식화 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전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