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 박경철, 캠프 전략까지 흔들었다”

“박경철, 당시 야당 정치인들 오피스텔로 불러 접촉”
“文, 安과 단일화 구상, 대안 없이 文 ‘양보’에 기대”

[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의 ‘측근’이었던 금태섭 변호사의 자서전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에는 대선 기간 내 안철수 캠프에서 있었던 일들이 상세히 드러난다. 금 변호사는 안 대표의 리더십 및 비화들을 책을 통해 공개했다. 제대로 된 반성과 올바른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눈길을 끄는 것은 공공연하게 거론됐던 ‘안철수 비선실세’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책을 통해 비선실세였던 박경철 원장과의 대화 내용은 물론이고 ‘안철수-문재인 단일화’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까지 소개했다. 흥미로운 것은 비선조직이 움직이면서 공조직은 허수아비가 되다시피 했다는 점이다. 비선조직이 활발히 움직이면서 기본적인 전략에까지 혼선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 책 내용의 진위를 떠나 ‘안철수 박경철 VS 금태섭 권력투쟁’으로까지 번지게 만든 금 변호사의 자서전. 이를 통해 안철수 캠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살펴봤다.

금태섭 변호사는 검사직을 그만둔 후 자신이 진행하던 책 소개 프로그램에서 박경철 원장과 처음 만났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2009년 또는 2010년 즈음 박 원장이 긴히 할 말이 있다며 저녁식사를 제의했다. 두 사람은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고 한다.

“박 원장은 자신이 만나본 많은 사람들 중에 안 전 대표만큼 훌륭한 사람을 못 봤으니 그를 도와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을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다만 ‘박 원장이 말하는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고 회고했다. “아직 이 일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며 처음부터 같이하면 ‘핵심’이 될 수 있다.”

금태섭-박경철 인연
지쳐가는 安사람들

금 변호사는 단순히 ‘사람을 모으기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박 원장은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안 전 대표를 돕는 모임을 만드는 작업까지만 한 뒤 그 이후엔 빠지겠다고 했다. 안 전 대표와 너무나 친하고 피를 나눈 형제와 같은 사이라서 직접 참여할 경우 ‘측근’이니 ‘숨은 실세’니 하는 말을 들을 위험이 있어서 그렇다.”

납득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금 변호사는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고 답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대선 때 박 원장의 주선으로 안 전 대표를 만났고, “청춘콘서트를 통해 수천 명의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힘. 그것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며 합류를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이 과정에서 안 전 대표 대신 박 원장이 도와달라고 부탁했던 것.

하지만 안 전 대표가 출마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자 안 전 대표를 도우려던 사람들도 지쳐갔다. 출마를 선언하겠다는 것인지 안 하겠다는 것인지, 봄에 시작한 모임이 한여름이 되도록 지지부진하자 그만두겠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게다가 언론이 출마를 전제로 ‘안철수 검증’에 돌입했고, 검증 보도에 대응하는 것도 한계에 부딪혔다. 뾰족한 묘수가 필요했다. 바로 대선 출마 선언이 바로 그것이다.

“안 전 대표에게 출마 여부를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회의할 때뿐 아니라 따로 만나서 간곡히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 전 대표는 그때까지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고민만 계속하고 있었다.” 

당시 심경을 금 변호사는 이렇게 표현했다. “8월 말, 9월 초가 되면서는 이대로 주저앉는 것인가 하는 절망감마저 들었다.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던 기회가 이토록 허무하게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미칠 지경이었다”고 적었다.

박: 서초동 모임 부인
금:  거짓말이라 직감

가장 충격적인 것은 ‘안철수 비선실세’로 지목된 박경철 원장에 대한 내용이다. 금 변호사는 캠프에 참여하지 않겠다던 박 원장이 별도의 모임을 만들어 안 전 대표와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또 금 변호사는 박 원장이 선거운동의 모든 면에 영향력을 행사했을 뿐만 아니라 민주당 정치인들을 자신의 오피스텔로 불러들여서 접촉하고 있다고도 기술했다.

기자를 통해서 이 모임의 존재를 알게 된 금 변호사는 사실 확인 과정에서 “순간 멈칫하다가 박 원장이 ‘서초동에 간 일이 없어요. 기자가 소설 쓰는 거예요’라고 답하는 순간 거짓말이라는 직감이 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 원장을 제지할 수 있는 명분이 있어야 했다. 검사 시절의 경험을 살려서 은밀히 조사했다. 혼자 여기저기 찔러보면서 확인을 한 끝에, 사실이었다. 어떤 의논이 이뤄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정기적인 모임이 있는 것은 확실했다.”

금 변호사는 또 “만일 알려진다면 언론에 대단히 부정적인 기사가 실릴 수도 있는 경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사업적인 특혜를 주고받은 일도 있겠느냐’ 등의 의혹을 살 수도 있었다”고 했다. 특히 금 변호사는 박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모임을 중단하라’고 했다고 적었다.

금 변호사는 이후에도 ‘안철수-문재인 단일화’ 협상팀에 가게 된 사실을 알린 사람이 박 원장이었다며 “인사를 미리 알려주는 것처럼 영향력의 크기를 보여주는 일은 찾기 어렵다. 박 원장은 자신이 피하겠다고 한 바로 그 길, 즉 숨은 실세의 길을 그대로 걸어갔다”고 주장했다.

금 변호사는 ‘안철수-문재인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했다고도 폭로했다. 금 변호사는 안 전 대표에게 후보 단일화 구상을 물었다고 한다.

“안 전 대표는 ‘나에게 생각이 있습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라고 말했다. 심중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무언가 계획이 있구나 싶었다. 이후 단일화 압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 박 원장을 찾아갔다. 안 전 대표와 많은 일을 의논하는 가장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에 안 후보가 말한 ‘나에게도 생각이 있습니다’는 뜻을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박 원장은 ‘안 전 대표와 문 대표 사이에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깊은 교감이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은 숨겨둔 대책이 없고, 문 대표의 양보를 의미 하는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대선 단일화 협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측 제안에 대해 비판할 뿐 안 전 대표 측은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게다가 ‘버티라’는 지시만 내려왔다고 한다. 한마디로 체계적인 전략도 없었고 경쟁력을 내세우면서 단순히 양보만을 기대했던 셈이다.

이에 대해 금 변호사는 “단일화 협상이 실패한 데는 문 대표 캠프 측보다 안 전 대표 캠프의 책임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대선 때 안 전 대표의 발목을 잡았던 제안인 ‘의원 정수 축소’도 박 원장의 아이디어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조직 vs 비선조직
박경철에게 당했다?

이로 인해 안철수 캠프의 공조직은 점차적으로 힘을 잃어갔고, 비선조직이 장악하다시피 했다. 후보 연설이나 캠프에서 나오는 메시지에 정작 캠프 구성원들마저 의견을 제시할 기회가 없어졌다. 게다가 기본적인 전략의 혼선은 물론 본부장들마저 안 전 대표의 발언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안 전 대표의 대선 후보 사퇴 결정이 바로 그것이다.

“본부장이었던 장하성 교수는 후보 사퇴 발표 날까지도 선거 운동을 독력하기 위해 광주로 내려갔다. 그처럼 중요한 일에 대한 논의와 결정이 비선에서 이루어졌고, 공식적인 라인에 있던 사람들은 제대로 의견도 내지 못했다.”

금 변호사는 사퇴 결정에 대해 “워낙 갑작스러운 결정이었고 후보의 말은 이미 상의가 아니라 통보였다”며 “반대 발언도 그냥 듣고 있었을 뿐 딱히 설득하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금 변호사는 야당의 근본적인 문제, 2013년 창당 과정과 2014년 민주당과의 통합 과정 등의 비화도 담았다.

한편, 이와 관련해 안 전 대표는 비선 논란 등과 관련해 “대선에서 패한 사람이 말하는 것은 구차하다”면서 “선거캠프에는 내외부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박 원장이 안철수 캠프의 중요한 결정을 좌지우지했다는 금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정면 반박한 것이다.

안 의원은 또 “원래 캠프라는 것이 선거를 치러보면 캠프 내부, 외부 많은 사람이 같이 선거를 치르게 된다”며 “외부에 계신 분들이라고 해서 모두 비선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박 원장의 조언은) 의견 중 하나”라며 “제가 정치를 처음 시작할 때 여러 조언을 들었던 사람 중 한 사람이고, 지금 민주당과 통합한 이후에 만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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