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강덕수·이재현 등 잇따라 무죄 판결 ‘시끌’

[일요서울|강휘호 기자]배임 혐의로 기소된 기업 총수들이 잇따라 무죄 판결을 받아 논란이 예고된다. 이석채 전 KT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 등이 배임 혐의에 대해 일부 무죄를 선고 받은 주인공이다. 또 이를 두고 “기업 총수들의 전횡을 막지 못하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목소리와 “배임죄의 적용범위와 기준을 완화하고 검찰의 기소남발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검찰 줄줄이 기소…법원 줄줄이 번복
배임죄 처벌 규정도 각계각층 대립각

우선 이재현 회장은 조세 포탈과 횡령·배임 등 혐의로 기소됐지만 현재 파기환송심 첫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해당 파기환송심은 오는 11월 10일 열리게 된다. 이재현 회장은 국내외 비자금을 차명으로 운용하면서 조세를 포탈하고 법인 자산을 빼돌린 혐의를 받은 바 있다.

이후 2013년 구속 기소돼 1·2심에서 각각 징역 4년과 3년을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은 지난 9월 10일 이 회장의 조세포탈·횡령 혐의 대부분을 원심과 같이 인정했지만 배임으로 얻은 이득액을 특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법원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상 배임죄가 아닌 형법상 배임죄를 적용해야 한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한마디로 배임죄 적용 오류로 인한 재심리를 받는 사례다.

특경가법상 배임은 자신의 이득액 또는 회사의 손해액이 50억 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하도록 돼 있지만, 형법상 업무상 배임은 액수와 관계없이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형량이 상대적으로 낮다.

이석채 회장도 잘못된 투자로 회사에 100억 원 대 손해를 끼치고 회삿돈을 유용한 혐의(특경가법상 횡령·배임)로 불구속 기소된 바 있지만 무죄를 선고 받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배임의 고의를 갖고 있었거나 비자금을 불법영득 의사로 사용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석채 전 회장은 2011년 8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KT가 이 전 회장의 친척과 공동 설립한 ㈜OIC랭귀지비주얼(현 ㈜KT OIC) 등 3개 벤처업체의 주식을 의도적으로 비싸게 사들이게 해 회사에 총 103억5000만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1년 반 심리 끝에 “당시 KT의 투자 결정은 합리적 의사결정이었다”고 봤다. 투자에 앞서 내부 논의·외부 컨설팅 결과 등 정식 절차를 밟았으며 이 전 회장의 강압적 지시는 없었다는 것이다.

또 “검찰이 각 회사의 가치를 낮게 잡아 배임혐의를 적용했지만 현재보다 미래가치를 보는 벤처투자의 특성을 간과했다”며 “기업 가치를 낮게 보는 의견을 따르지 않았다고 배임이라 인정할 수 없다”고 전했다.

강덕수 회장도 마찬가지로 지난달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풀려났다. 지난해 5월 구속된 지 1년5개월 만이다. 그는 1심에서 징역 6년의 실형이 선고된 바 있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김상준)는 지난 14일 강덕수 전 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1심과 달리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160시간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횡령·배임 범행 모두 부실 계열사의 경영 정상화와 회생을 위해 STX그룹 회장으로서 불가피한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되고 개인적 이익을 의도한 것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강덕수 전 회장에 대해 3000억 원대 횡령·배임과 2조 원대 분식회계 등으로 STX그룹에 손실을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사기 등)로 기소했다.

도대체 왜…

그렇다면 이들은 왜 모두 무죄일까.

이와 관련해서는 법원의 법리 적용이 일관되지 않거나 대기업 인사 봐주기를 하고 있다는 눈초리와 검찰이 무리한 기소로 인한 자업자득이라는 지적이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2005년부터 4년간 특경가법상 배임과 형법상 배임죄의 무죄율은 각각 평균 11.6%와 5.1%로 전체 형사범죄의 무죄율(1.2%)보다 훨씬 높다. 정치권은 이를 고려해 배임죄의 처벌 규정을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우선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배임죄 개정에 대해 다소 부정적이다. 김현웅 장관은 앞선 국정감사에서 “(배임죄가)회사 경영자의 부정을 방지하고 소액주주를 보호하는 측면도 있다”고 답했다.

아울러 “배임죄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에만 적용되지 않는다”며 “일반 개인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에 개정은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듣고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보였다.

대부분의 시민단체 역시 계열사 수십 개를 한 명의 총수가 지배하는 대기업 중심의 우리나라에서는 총수의 전횡을 주주들이 견제할 장치로서 배임죄가 존재해야 방만 경영을 막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특히 검찰은 이러한 판결 등에 대해 대부분 상소한다는 계획이다. 검찰은 이석채 전 회장이나 강덕수 전 회장 등 기업인의 불법과 비리 행위를 재판부가 눈감아준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다만 반대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은 배임죄와 관련해 “적용 범위와 기준이 애매하고 포괄적이기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비아냥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어 “독일, 일본 등과 같이 정상적인 경영활동은 배제하고, 고의성을 가질 때만 형사처벌하도록 개선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기업이 원활한 기업 경영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경제가 산다”고 덧붙였다.

대기업 총수들의 계속되는 배임죄 무죄 판결은 앞으로도 수많은 대립을 낳을 전망이다.

hwihols@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