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유출 11조 원, 개인도 46억 원씩 드러나


재벌 총수, 연예인, 유명 스포츠 스타 등이 주류 이뤄
성실신고 유인하고 미신고자에 대한 처벌 강화한다


국세청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해외금융계좌 신고 결과’에 따르면, 1년 동안 해외계좌 잔액이 단 하루라도 10억 원 이상 유지했다고 신고한 건수는 총 525건, 금액으론 11조4819억 원에 달했다. 이중 법인(기업)을 제외하고 해외금융계좌를 신고한 개인은 211명(신고액 9756억 원)에 불과했다. 더욱이 국세청이 2000명의 개인들에게 안내문을 발송했지만 10.1%의 저조한 신고율을 보여 아직도 대부분의 ‘검은 계좌’는 드러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미신고 해외금융계좌에 대해 역외(域外) 탈세와 관련한 의혹으로 부유층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이에 [일요서울]이 그 현황을 파악해 봤다.

국세청은 지난 6월 역외 탈세를 막기 위해 한 달 동안 해외금융계좌의 자진신고제를 실시했다. 하지만 개인 중 자진 신고한 비중이 10%선에 그쳐 양성화를 목표로 한 ‘검은 계좌’ 색출에는 미흡해 본래의 취지가 퇴색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게다가 상당 부분 해외에 탈세목적으로 금융자산을 도피시켜 세금을 내지 않는 해외계좌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은 국세청의 새로운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신고한 개인 중에는 연예인, 재벌 총수, 유명 스포츠 스타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러한 부류에 속하는 미신고자들은 공인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납세의무를 회피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강남보다 용산에
해외계좌 도피자 더 많았다


국세청은 해외금융계좌에 거액을 맡기고도 신고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제도를 추진하는 한편, 재산을 해외계좌에 숨겨놓고 이번에 신고하지 않은 38명을 대상으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번에 해외계좌를 신고한 사람들을 거주지별로 살펴보면, 서울 용산세무서에서 23건, 금액으로는 1773억 원이 신고돼 해외계좌 신고건수와 신고금액 기준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용산의 한남동·이촌동에는 재벌 총수와 연예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또한 압구정동·청담동·논현동 등을 관할하는 강남세무서에 21건이 신고됐고, 삼성·대치·개포동을 관할하는 삼성세무서에 19건이 접수됐다.

국세청 관계자는 “개인 신고자 중에는 재벌 총수와 인기 연예인, 해외 스포츠 스타 등이 포함돼 있다”며 “납세자 비밀보호 규정이 있어 명단을 공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해외계좌는 1인당 평균 3.6개, 총 46억 원씩을 예치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한 사람이 35개의 해외 계좌를 가진 경우도 있었고, 신고금액으로 따지면 최고액이 601억 원이었다고 국세청은 전했다.

나라별로 해외계좌를 살펴보면, 미국이 가장 많았으며 408개 계좌에 총 4973억 원이 예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이 캐나다 68개, 일본 63개, 홍콩 59개, 싱가포르 48개 순이었다. 신고된 금액은 미국에 이어 싱가포르가 1509억 원이었으며 두 번째로 많았다.

국세청 관계자는 “미국과 캐나다, 일본에는 유학생들이 많아 해외계좌 수가 많은 것으로 보이며, 홍콩과 싱가포르는 이자소득세가 없거나 낮아서 부자들이 해외금융계좌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예금주 비밀보호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인 스위스의 경우, 개인 2명이 2개 계좌에 70억 원을 예치했다고 신고했고, 법인 5개 기업이 9개 스위스 계좌에 1000억 원을 예치한 것으로 신고했다고 국세청은 밝혔다.

법인의 경우 중동의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405개 계좌가 신고돼 가장 많았다. 이는 중동 지역에 진출한 건설사들이 금융 중심지인 두바이 소재 은행에 계좌를 트고 거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중소업체 진출이 활발한 베트남(389개)과 중국(364개)에 법인들의 해외계좌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은 이번에 미신고한 납세자 가운데 기업 비자금과 국내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킨 법인사업자 24명과 개인 14명 등 탈루혐의자 38명에 대해 지난달 30일 고강도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미신고자 38명 세무조사 받아

한 금형업체 사장은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를 설립하고 자신의 해외공장 지분을 페이퍼컴퍼니로 옮겨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은 채, 여기서 발생한 소득을 차명으로 국내로 들여온 혐의를 받고 있다. 국세청은 이 회사가 지난 5년간 탈루한 소득이 1200억 원 가량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국세청은 이번 세무조사 대상에 대기업은 없으며 대부분은 중소업체와 자영업자,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라고 밝혔다. 국세청은 올 상반기에도 권혁 시도상선 회장을 포함해 역외탈세 혐의자 87명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해 6365억 원을 추징한 바 있다.

박윤준 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은 “성실신고를 유인하고 미신고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기획재정부와 협의하는 한편, 엄정한 세무조사를 통해 ‘미신고 계좌는 언젠가 적발된다’는 인식을 꾸준히 확산시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진우 기자] voreolee@dailypot.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