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대신 거짓 자백했었다”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친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15년째 복역 중인 김신혜(38)씨에 대한 재심이 진행될 예정이다. 김 씨는 체포 당시 범행을 자백했지만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자 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는 고모부의 말에 동생을 감싸려고 거짓 자백을 한 것이라며 무죄를 호소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재판기록과 증거 등을 검토, 지난 1반인권적 수사가 이뤄졌고 당시 재판에서 채택된 증거는 현재 판례에 따르면 위법 수집 증거로 판단된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재심을 청구한 이후 다음 아고라의 재심 청원방에서는 29000여 명이 서명하고 시민 3200여 명이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재심 요구 여론이 들끓었고, 지난 513일 광주지법 해남지원에서는 김 씨가 참석한 가운데 재심개시 여부 판단을 위한 심문이 열렸다.
 
이후 광주지방법원 최창훈 해남지원장은 5개월간 기록을 검토한 끝에 18일 오후 직접 김 씨에 대한 재심 결정을 내렸다.
 
김 씨를 지원해온 대한변협 인권위 법률구조단 소속 변호인단은 재심이 결정된 이후 사법사상 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며 재심 개시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다만 변호인단은 형 집행정지를 하지 않고 김 씨를 석방하지 않은 데 대해서는 대단히 유감스럽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김 씨는 현재 청주여자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김 씨의 여동생 역시 이날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과 관련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재심 결정이 나 기쁘다. 언니의 재심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대한변협 변호사님 등 많은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하지만 형 집행정지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부분은 정말 유감이다. 앞으로 험난한 과정이 있겠지만 이겨내겠다고 말했다.
 
법원의 재심이 결정된 가운데 김신혜 씨가 경찰의 강압수사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한 내용이 다시 주목을 끌고 있다.
 
친부살해 혐의 무기수 김신혜씨는 지난 513일 오전 11시에 열린 김신혜 사건재심에 관한 심문기일에서 경찰의 수사과정 중 겪은 폭행과 가혹수사, 영장 없이 진행된 위법한 경찰의 압수수색 등을 주장했다.
 
김 씨는 이날 법정에 출석해 당시 강모 형사와 김모 형사는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마치 샌드백 치듯이 내 머리를 때렸다. 내가 따지거나 질문을 하면 , 질문은 우리가 하는 거야라며 아무 말도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 조사 때 경찰 수사과정에서 겪은 폭행을 이야기했는데 검사는 오히려 , 너 그렇게 진술하면 경찰 수사 다시 받아야 된다며 나를 협박했다고 울먹였다.
 
그러면서 김 씨는 주먹으로 때리지 않고 말로 나를 짓밟는 검사가 경찰보다 더 무서웠다고 호소했다.
 
사건의 시작은 15년 전인 지난 20003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3살로 서울에서 생활하던 김 씨는 남동생을 데리고 오기 위해 전남 완도 고향집으로 향했다.
 
그가 고향집에 도착한 날 아버지는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50대 초반으로 장애가 있던 김 씨의 아버지는 그날 오전 550분쯤 집에서 7가량 떨어진 버스정류장 앞 도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사건 현장에서는 깨진 방향지시등 잔해물이 발견돼 뺑소니 교통사고로 추정됐다.
 
하지만 경찰은 사체에서 출혈은 물론이고 외상이 발견되지 않은 점에 주목해 타살된 후 교통사고로 위장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부검 결과 사체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된 점도 이를 뒷받침했다.
 
또 김 씨가 아버지 앞으로 상해보험 8개에 가입했고 사건 당일 아버지에게 수면제가 든 술을 마시게 한 후 함께 드라이브를 간 사실을 타살의 증거로 들었다.
 
김 씨는 범행을 눈치챈 고모부의 권유로 사건 발생 하루 만에 자수했고 경찰은 김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긴급체포했다. 살해 동기에 대해 경찰은 아버지의 성추행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씨가 사건 발생 두 달 전 이복 여동생으로부터 아버지에게 강간당했다는 말을 들었고 자신도 중학생 때부터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한 기억을 떠올리며 아버지를 살해할 결심을 했다는 것.
 
그러나 김 씨는 조사가 진행되면서 남동생이 용의선상에 올라 경찰 조사를 받을 것을 우려해 대신 자백했다아버지가 성추행한 사실이 없고, 아버지를 살해한 일도 없다며 무죄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김 씨는 결백을 주장했지만 1심과 2, 대법원에서는 보험금을 목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 씨는 복역하면서도 줄곧 파렴치범이 된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싸우겠다며 결백을 호소했다.
 
또 보험건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사망하더라도 가입 2년 이내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아 살해 동기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법원은 김 씨의 재심 개시를 결정하면서 당시 경찰의 수사가 위법적이었고, 강압적으로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당시 이 사건의 수사 경찰관은 김 씨를 긴급 체포하고 법원의 영장 없이 김 씨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현장에는 김 씨의 남동생을 임의로 동행시켰고, 절차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압수물을 남동생이 임의로 제출한 것처럼 압수조서를 허위로 작성했다.
 
또 다른 경찰관이 압수수색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허위로 조서까지 작성했다.
 
김 씨가 공범을 말하겠다고 진술했다는 경위서도 경찰에 의해 허위로 작성된 것이었다.
 
김 씨의 남동생을 조사하는 과정에서는, 김 씨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자백하지 않았는데도 남동생에게 누나인 김 씨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하도록 유도했다.
 
현장검증 당시에도 경찰은 김 씨가 범행을 부인하며 재연을 거부하는데도 법원의 영장도 없이 강제로 사건 현장에 동행시켜 불리한 진술을 하도록 강요했다.
 
법원은 당시 경찰의 수사가 잘못됐다고 보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허위공문서작성, 허위작성공문서행사죄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당시 경찰 수사의 잘못을 일부 인정했지만, 김 씨가 제출한 증거와 당시 경찰의 수사보고서 등의 증거가 허위로 작성됐다는 김 씨의 주장 등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광주지법 관계자는 당시 경찰 수사가 일부 잘못됐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만들어진 증거 등은 재검토가 필요하다면서도 재심이 결정됐어도 김 씨의 무죄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재판 과정에서 유·무죄는 다시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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