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총리-정동영 장관의 고리보다 선후배간 역전이라 할 수 있는 이해찬 총리-김근태 장관의 내용에 세인의 관심이 더 집중되고 있다. 일단 이해찬 지명자는 정동영 전 의장과 서울대 문리대 72학번 동기로 동기모임인 ‘마당’ 등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으며, 김근태 전 대표는 정계에 입문하기 전인 74년 민청학련 사건 때부터 이 지명자의 재야활동의 선배로 알려져 있다.이해찬 총리 지명 이후 정동영, 김근태 입각과 관련해 당내외는 물론 청와대 등에서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여당과 청와대 관계자는 대체로 거리낄 것이 없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문희상 의원은 CBS와의 인터뷰에서 “정 전 의장과 김 전 대표의 입각에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 전제하면서 “그 분들의 입각 이유에 대해 이미 대통령과 두 분 사이의 합의가 있었을 것”이라 덧붙였다. 문 의원의 설명대로 두 사람간 사전 논의가 있었다면 ‘대권수업과 행정실무 경험’이 주요한 내용이란 게 정설이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의 입각은 기정사실로 보인다. 즉 입각의 배경으로 ‘대의를 위해 작은 관계는 합리적으로 풀어나감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만약 정 전 의장과 김 전 대표가 입각을 거부할 경우는 실상 그들이 대권 주자로서의 경쟁에서 탈락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어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즉 실질적으로 노심의 눈밖에 나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하지만 이미 이해찬-정동영-김근태의 역학관계를 따지게 되는 것만으로도 노무현 대통령의 ‘견제와 균형’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즉 ‘리틀 노무현’으로 주목받던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의 퇴장 이후 4·15총선까지 당내에서 성장한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전 대표의 입지가 이해찬 카드 하나로 인해 그 비중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실질적으로 두 사람이 당직을 떠났고 경력 등을 감안하면 입각 자체가 자존심을 구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신기남 의장-천정대 대표의 젊은 파워로 당권은 이양됐고 천 대표와의 경선에서 패배한 이해찬 의원의 총리후보 지명은 적어도 외면적으로는 격식을 완전 파괴한 인사조치이다. 따라서 다분히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에 의해 이해찬-정동영-김근태 구도가 정리되고 있다.결과적으로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혀온 정-김 두 사람의 정치구도 속에서 이해찬 총리와 입각 문제가 얽힘으로써, 이들이 일종의 정치적 시험대에 오르게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즉 이들의 지도력과 국가 경영능력에 관한 정치적 검증이 비로소 본격화되고 있다고 풀이된다.또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전 원내대표간 벌어졌던 자리다툼과 총리 인선과정에서 불거졌던 ‘김혁규 카드’를 둘러싼 당내·당청간 갈등이 노심의 눈밖에 나 이러한 결과를 낳은 것으로도 이해된다. 비록 정-김의 지도부가 새로운 당청관계 구축을 요구하면서 문희상 전 정무특보를 주저앉히는데는 성공했지만, 이후의 총리 인선과정에서는 끝까지 소외된 점도 두 사람의 대권가도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점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또 이해찬 총리 지명으로 김근태 전 원내대표는 입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한때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김 전 대표는 후배 밑에서 각료로서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에 대해 ‘그런 문제는 지엽적이며 결정요인은 아니라’며 여러 가지 가능성을 내비쳤다. 뿐만 아니라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둘러싼 혼선과 이라크 파병에 관한 당내 일부 소신 의견 등은 청와대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최근 김근태 전 대표가 분양원가 공개 및 한·미 관계 등 각종 현안에 대해 독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지만, 예전과 상황이 다름은 분명하다. 하지만 김근태 전 대표의 다른 목소리 내기는 우선 노무현 대통령이 ‘시장 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우리당의 공약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내보인 데 대해 차기 주자로서의 차별화된 정책 제안자로 다른 위상을 정립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으론 입각을 고려하지 않고 당내에 남기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도 있다.한편 노 대통령의 총리 지명과정에서 유시민 의원이 모종의 역할을 했으리란 관측이 심심찮게 나온 만큼 이의 진위여부를 떠나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전 대표 견제 세력이 당내 개혁파를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가능하다. 또 개각과 관련해 지난 9일 노 대통령이 정통부 장관 유임 가능성을 내비쳐 이들 두 사람의 자리마저도 불확실한 상황이다.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의 이해찬 카드는 그간 당권파로서 차기 대권 주자로 부상하기 시작한 정동영, 김근태 두 사람을 견제하는 측면이 강하다. 즉 특정인이 너무 부각되길 바라지 않는 노심으로서 이해찬 의원 지명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이해찬 국무총리 후보 지명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오는 24일과 25일로 예정돼 있는 가운데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전 대표의 정치적 능력 검증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 또 대권경쟁이 어떻게 진행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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