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지난 11월30일 조남풍 재향군인회 회장(77)이 배임수재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1952년 창설된 전역군인 조직으로 현 회장이 취임 7개월 만에 개인 비리 혐의로 구속되기는 초유의 일이다. 향군은 13개시군구(도회 제외) 231개 읍면동회를 거느리고 회원수만 38만 명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조직이다. 일반 회원수는 1100만 명. 규모도 연간 4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400억 원 국가보조금을 지원받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적인 호국·안보 단체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이뿐만 아니다. 최근 본지가 입수한 고소장에 따르면 경남·울산 재향군인회에서는 일선 사무국장의 월급을 ‘삥땅’해 검찰에 고소당하는 사건이 터졌다. 이에 향군 내에서는 조 회장의 구속과 함께 지부까지 향군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곪을 대로 곪은 게 아니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 “열악한 일선 사무국장  급여를 떼먹다니…”
- 사무국장단 “향군 전체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2015년 10월12일 창원지검에 고소장이 접수됐다. 경남.울산 재향군인회 24개시군구 사무국장들이 경남·울산 향군(이하 본회) 박중판 회장과 유모 사무총장을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사건이다. 고소인들은 중앙회에서 급여 및 운영비를 시군구 지회에 내려보내면 본회에서 월급을 지급하고 잔여금에 대해 상여금·4대보험·격려금·복지증진 등으로 집행해야 하는데 이를 어기고 월급의 일부분을 피고소인이 횡령했다고 고소했다.

경남·울산 향군 2억 원 월급 미지급

구체적으로 고소인 시군구회 사무국장(24명)들은 2011년도부터 2015년 현재까지 약 2억 원가량 월급을 미지급했다며 환급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금액에는 퇴직금 2년치 8천만 원도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본지>와 4일 통화한 고소인 A씨는 “본회 직원들은 자신들의 월급은 통상 임금에 75% 더 받고 매년 200% 상여금을 챙기면서 일선 사무국장의 월급은 80%정도만 지급해왔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 인사는 “중앙에서는 공문을 통해 봉급을 준 나머지 금액 역시 연말에 상여금으로 지급하라고 적시돼 있는데 지급하지 않고 임의로 횡령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현재 사무국장의 연봉은 1년차가 2000만 원이고 12년차라고 해도 2300만 원 수준으로 열악하다. 반면 본회 사무처장 3300만 원, 조직부장 3000만 원, 행정부장 2700만 원, 안보부장 2400만 원대로 급여차가 심하다.

이뿐만 아니라 A씨는 “4대 보험의 경우 본회에서 50% 지급하고 사무국장이 50% 지급해야 하는데 본회의 몫을 시군구에서 떠맡고 있다”며 “본회는 1원도 안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향군 임대 수익의 용처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인사는 “본회 향군 임대료는 월 1800만 원으로 1년에 2억 정도가 임대료 수익인데 이중 4600만 원의 용처가 불분명하다“며 본회 간부들의 비자금으로 쓰이는 게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한편 고소인 중 2명의 이모 사무국장은 이번 소송건으로 11월12일자 해임됐다. 고소인들은 인사권을 갖고 있는 본회 회장의 요청으로 징계처리를 당해 재향군인회 중앙에 항고를 내 재심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경남.울산 재향군인회 안 사무처장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같은 날 <본지>와 통화에서 안 사무처장은 월급 미지급 관련 “돈을 안 줬다고 하는데 지급한 영수증과 입금된 통장내역까지 다 검찰에 제출했다”며 “문제가 된 퇴직금은 다 적립돼 있다”고 해명했다. 또한 4대 보험료 관련해서도 “사무국장 월급체계가 기본급여와 부가급여를 나누는데 부가급여의 경우에는 시군구에서 집행하고 결산도 시군구에서 해 본회가 아닌 시군구가 50% 내는 것은 13개 시군구 향군 다 똑같은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향군 임대수익이 본회 간부들의 비자금으로 사용되는 게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도 “중앙에서 매년 1월마다 임대 수익에 대해서 결산을 하는데 비자금으로 사용했다면 결산을 통과할 수 없다”며 “그리고 일부 임대수익이 본회 부장들의 수당과 월급을 지급하는 것은 도회장 집행권한이라며 그 부분에 대해서도 지출결의서를 다 첨부해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경남·울산 향군 “사실이 아닌데…왜 고소했나”

한편 고소인들에 대한 해임관련해 안 사무처장은 “도 회장이 인사권을 갖고 있어 상관에 대한 명예훼손과 폭언으로 징계를 요청한 것은 사실”이라며 “현재 중앙에서 재심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고소건에 대해 “만나서 설명도 다하고 본부 특별감사에서도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왜 고소를 했는지 모르겠다”며 “경찰도 황당해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소인들의 월급 미지급 사건은 경남·울산 향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사안의 심각성이 크다고 밝혔다. 고소인 A씨는 “향군이 전국적으로 13개시군구에 지방본부가 있고 전국적으로 222개 시군구 사무국장들이 근무하고 있다”며 “이번 고소건으로 경기도와 강원도를 제외한 11개 시군구에서도 금액 수준만 다를 뿐 비슷한 월급 미지급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고소인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전 경남·울산 재향군인회 회장 정모씨도 동일한 방법으로 사무국장 급여를 미지급해 회장직을 사퇴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2014년 경기도 재향군인회 역시 사무국장 30명의 급여 미지급 관련 고소 및 탄원서를 작성, 검찰 및 국가권익위에 자료를 제출하려고 하자 2015년 취임한 회장이 사실을 인정하고 미지급 전액 환급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에 11개 시군구지회에서 경남.울산 재향군인회 소송건의 처리결과에 따라 전국적으로 소송이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고소인 측 주장이다.

고소인과 피고소인 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지만 향군 내 소송 사건은 후폭풍이 거셀 수밖에 없다. 현 조 회장이 긴급 구속된 상황에서 만약 경남·울산 고소건이 검찰 조사결과 사실로 밝혀질 경우 향군 전체의 위상에 치명타를 줄 수 있다.

현재 조 회장은 감독기관인 국가보훈처의 자진사퇴 요구에도 끝까지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현행 향군법상 1심 판결 전에는 사퇴를 강제할 규정이 없다. 이사회 역시 조 회장 측근들로 구성돼 개최 자체가 불투명하다. 이에 전국 대의원 390명은 조 회장 강제해임을 위한 임시총회를 소집하기 위해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회장부터 손발까지 다 썩어 환부 도려내야”

마지막으로 고소인 A씨는 “조 회장이 개인비리로 구속된 마당에 향군 전체에 대해 개혁의 칼을 들어 부패한 환부는 다 도려내야 한다”며 “부패한 시도회 회장들 역시 이참에 전부 물러나야 중앙본부, 13개 시군구 향군이 호국·안보 단체로서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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